소소한 프러포즈
프라이팬에 포도씨유를 두르고 가열을 해.
올리브유도 좋고.
그리고 적당히 온도가 올랐을 때 가염버터를 넣으면 순식간에 자글자글 녹아내리지.
그 위에 스테이크를 올려서 약간 바삭하게 익을 때쯤 뒤집으면 끝.
간단해 보이지만 타이밍이 중요해.
일단 고기는 굽기 전 한두 시간 전에 밖에 놔둬야 낮던 고기의 온도가 좀 식어.
그렇지 않으면 고기 내부의 차가운 온도 때문에 겉은 타도 속은 냉랭한 상황이 될 수 있거든.
그리고 많이 뒤집지 않고 표면이 어느 정도 익었을 때 한 번에 탁.
그래야 육즙이 흘러나오지 않고 고깃덩이 속에 가둬지거든.
무튼 굽는 온도와 뒤집기 타이밍이야.
너무 낮은 온도에서 구우면 표면이 익기도 전에 육즙이 줄줄 다 나와버려.
고깃덩이의 가운데가 약간 핑크색 정도 날 만큼만 익히는 게 좋아.
안 그러면 너무 딱딱해져서 먹기가 불편할 수 도 있거든.
미디엄 레어라고 하잖아?
고기가 구워지면 바로 서빙하는 건 아니야.
요걸 꺼내서 뚜껑을 덮고 5~7분 정도 놔두면 살짝 표면이 식게 되는데 이걸 레스팅이라고 해.
육즙을 확실하게 가두는 과정이지.
스테이크는 뭐니 뭐니 해도 육즙에서 시작해서 육즙으로 끝나.
폼 나게 하려면 고기를 올리는 접시를 달군 주물접시를 쓰기도 하지만 난 반대 야.
그렇게 하면 폼도 나고 따뜻하게 먹을 수는 있지만,
계속 고기가 익으니 점점 딱딱해 지거든.
모양만 그럴싸하면 뭐 하나. 고기는 점점 굳어가는데.
익은 고기를 접시에 올리지.
물론 이때 접시는 미리 따뜻하게 데워 놓아야 해.
안 그러면 고기가 너무 빨리 식어 버리니까.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익힌 채소들을 곁들이고 그 위에 소스를 뿌리면 끝.
진상 커플이 들어와서 자리에 앉고,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 스테이크 요리가 나오자 그 아가씨는 좀 감격한 눈치였어.
어떻든 이런 후줄 구레 한 식당에서 스테이크 요리를 먹을 줄은 몰랐겠지.
수프를 마시고, 스테이크를 먹고, 사내가 미리 가져다준 와인까지 서비스를 하니 아가씨는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어.
늦은 밤이라 몇 되지 않는 손님들이 호기심을 보였어.
스테이크가 다 되냐고.
그리고선 내게 스테이크 주문이 되냐고 하는 거야.
물론 그 정도로 여유 있게 준비되었을 턱이 있나.
다들 좀 실망하는 표정을 짓기에 잠시 기다리라고 했어.
그냥 가게 냉장고에 있는 소고기 안심 등심을 다 꺼내서 깍둑썰기를 하고,
스테이크를 만들고 남은 채소류와 피망을 썰어서 버터를 두른 팬에 달달 볶았지.
그리곤 흔히 쓰는 A1 소스를 후루룩 뿌려서 접시에 올려 내주었어.
일명 찹스테이크 같은 거지.
사실 이런 유의 고기요리는 그야말로 소스의 맛이지만 의외로 잘 먹혀.
보통 손님들이란 MSG에 길든 입맛을 추억의 맛으로 기억하거든.
드디어 식사를 마친 진상 커플의 이벤트가 시작되었어.
약간 와인에 취해 몽롱해 보이는 아가씨한테 진상남이 뭔가를 건넸어.
그건 반지였는데 그 사내는 반지를 건네면서 아가씨한테 나와 결혼해 줄래 어쩌고 한 것 같아.
서로 뭐라고 꿍얼거리는 걸 얼핏 들었는데, 분위기가 별로였어.
그러더니 아가씨가 화를 내며 가게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거야.
이런 젠장. 이건 또 무슨 일 이람.
아가씨를 쫓아 나갔던 진상남이 다시 가게로 돌아온 건 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어.
사내는 다시 들어와서 소주를 시켜선 먹다 남은 스테이크를 안주삼아 벌컥 거리며 마시더군.
그 진상커플을 잘 알진 못해도 얼굴이 익어서 대강 아는 주변 손님들이 힐끗 거리며,
사내의 눈치를 살피기도 하고, 내 얼굴을 살피기도 하고 그랬지.
난 넌지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어.
- 아니, 왜 그래요? 뭐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합니까?
사내 녀석이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어.
- 난 내 나름 준비를 엄청 한 건데..... 무슨 결혼 프러포즈를 식당에서 하냐고 화를 내더군요.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고 두루두루 그게 더 의미 있지 않냐고 했더니,
그래도 그렇지 최소한 레스토랑 도 아니고 식당에서 그런 걸 누가 하냐고.....
그 말이 다 들렸는지 주변 단골들이 킥킥 대며 소리를 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난 좀 어이가 없어서 그 녀석에게 쏴 붙였다.
- 아니, 그러니까. 결혼 프러포즈를 왜 굳이 우리 가게에서 해.
내가 그러니까 레스토랑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잖소. 여자 입장 이란 것도 있는데.
- 그게요, 자긴 겉치레 이런 거 싫다고 해왔거든요. 그동안.
그래서 데이트도 주로 이곳에서 하고 따로 레스토랑 은커녕 카페도 잘 안 갔었다고요.
그런데 이렇게 나올 줄 몰랐죠.
- 아 그래도 그렇지. 분위기가 없잖아. 분위기 가.
은은하게 촛불이라도 좀 켜진 곳도 아니고.
시끌벅적하게 술 먹고 밥 먹는 곳에서 일생일대의 프러포즈를 하냔 말이야.
- 아 글쎄 사장님. 그런 거 싫다고 해왔었다니까요. 저 억울해요.
이 난리 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단골 중 골목 모퉁이에서 조그만 양주 바를 운영하고 있는 마담이 한마디 거들었다.
- 이봐요. 총각.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자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에요.
아마 평소에 그 아가씨 손에 물도 안 묻히게 해 주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해왔겠지. 아니요?
- 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게 뭐 가능합니까. 월급쟁이 신세에.
- 그러니까. 그 아가씨도 그걸 몰라서 그 말 믿고 사귀었겠느냐고요.
그럴 정도로 아껴주겠다는 말을 믿는다는 거 아이유.
그러니.... 최소한 프러포즈 정도는 좀 기억에 남게 해 달라 뭐 이런 뜻이겠지.
아, 프러포즈 받아들인다면 평생 기억은 하겠네,
거참. 여자 마음은 정말 알 도리가 없긴 해.
그나저나 이 비싸게 만든 스테이크는 대체 얼마를 받아야 하느냐고. 젠장.
이미지 네이버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