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 식당 22

by 능선오름


식재료가 거의 다 떨어져 갈 늦은 새벽 즈음 처음 보는 여자가 들어섰어.

손님도 거의 발길을 끊은 곧 문을 닫을 시간.

어딘가 모르게 보통의 중년여성들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여자가 관심을 끌었지.


딱히 뭐 다르다기보다는 옷차림새라던가 들어올 때부터 약간 쭈뼛거린다던가.

뭔가 보통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들과는 분위기가 달랐어.


여자는 자리 모퉁이에 조심스럽게 앉아서 신기한 듯 가게를 두리번거렸지.

나는 손님에게 주문을 강요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녀가 이것저것 살펴보는 동안 가게를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

어차피 식재료 들도 거의 끝나가는 상태라서 달리 내놓을게 마땅치 않기도 했고.


- 저, 뭐든지 가능하면 만들어 주신다고요?

- 네. 그렇긴 한데 가게 파장 시간이라 재료가 그다지 없어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드시고 싶은 게 있나요?

- 아, 네. 좀 생소하실지 모르겠는데 바지락 술찜을.....

- 저런. 바지락은 없고요. 모시조개는 있습니다. 그거라도 괜찮으시면.

- 네,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갯벌 조개를 이용한 음식은 꼬막 무침 말고야 대부분 그냥 조개탕이지.

아니면 조개구이 라거나.

그것만으로도 맛이 훌륭하니 딱히 뭐 요리랄 것까지도 없는 게 조개탕 같은 거지.

그렇지만 그것도 사실 재료에서는 긴 시간 기다림이 필요해.


더구나 손님이 말한 술찜이라는 건 사실 우리나라 방식은 아니고, 일본 음식 스타일이지.

조개탕은 맞지만, 거기에 버터와 청주가 들어가는 점이 그냥 조개탕과는 좀 달라.

조개를 해감해서 파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그래도 해감이 부족한 부분이 많지.


맛나게 조개를 홀짝홀짝 까먹다가 갑자기 펄이라도 물컹 씹거나,

잔돌을 와그작 깨물면 그동안 먹은 맛이 다 확 달아나잖아.

그래서 나는 조개 해감에 많은 시간을 들이곤 하지.

바지락이건 모시조개이건 마찬 가지야.


일단 큰 통에 구멍이 성성한 체를 넣은 후 그 속에 조개를 넣고 물을 붓고,

굵은소금을 휘휘 뿌려 넣고 십 원짜리 동전이나 쇠못을 담가 놓는 거야.

그리곤 쟁반 같은 그것으로 뚜껑을 덮어 어둡게 하는 거지.

그러면 이 조개들이 밤이고 바닷속이라 착각을 하게 되는 거야.

플랑크톤을 먹고사는 애들이니 물을 빨아들이고 뱃속에 든 것들을 내뱉지.

염분과 적당한 철분의 맛이 얘들을 헷갈리게 하는 속임수야.

그렇게 하루를 재워놓았다가 체를 들어 올리면 물속에 진펄들이 뽀얗게 내려앉아 있어.

체가 없이 그냥 믹싱볼 같은 데다가 위의 방법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권하지 않아.

체가 있어야 조개가 뱉어낸 펄들이 바닥에 가라앉는데,

체가 없이 조개들이 바닥에 그대로 붙어 있으면 뱉어낸 펄을 다시 흡입하거든.

그래서 가능한 바다와 같은 조건으로 속임수를 써서 조개들을 잘 속여야 해.


그러면 적당한 양을 비닐봉지에 넣어 그대로 냉장 보관시키는 거지.

그래 봐야 하루 이틀 이상은 안 돼. 상온에서 죽은 조개는 독극물 덩어리라고 봐야 하거든.

냉동보관하면 두고 쓸 순 있어.

신기한 게, 냉동하면 다 얼어 죽었다고 봐야 하잖아?

그런데 이걸 또 찬물에 오래 담가 해동을 하면 살아나서 뻐끔대는 애들도 있더라고.

음.. 그럴 땐 생명의 신비 보다 이걸 먹기가 좀 미안스러워져.


두꺼운 무쇠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편 썰기 한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넣고 약한 불로 달달 볶아.

팬이 적당히 달아오르면 모시조개와 가염버터 한 조각, 청주를 조금 붓고 끓여 주는 거야.

청주가 끓어오르면서 알코올성분이 다 날아가고, 조개들이 입을 딱딱 벌리기 시작하면 끝.


오래 끓이면 조갯살이 고무줄 식감을 줄 수 있어.

쪽파를 송송 썰어서 조개찜 위에 뿌려주면 모양새 괜찮아.

해감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정작 술찜은 십오 분이면 끝나버려.

느끼하지 않으냐고?

의외로 버터는 국물 맛을 진하게 만들어서 마치 크램차우더 수프처럼 만들고,

청주는 비린 맛을 다 날려줘서 감칠맛을 돋워 주지.


크램 차우더 수프 별 거 아니야.

지금 같은 순서로 하다가 썬 양파와 조갯살만 빼서 살짝 볶다가 생크림과 밀가루 약간을 넣고 휘휘 끓여주면 그게 크램차우더 수프 거든.


화이트 와인도 써 본 적 있는데 비추 야.

너무 달달해지는 문제가 있지.

미림이나 맛 술도 금지 야.

그것들은 술이라고 붙어 있고 성분에 주정이 있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식초에 가깝거든.

들큰 시큼한 술찜을 좋아한다면야 뭐.


술찜을 그 여인 앞에 내어주니 소주 한 잔을 시켜서 찜의 맛을 보더군.

국물도 수저로 떠서 마시고.

그러다가 눈망울에 눈물이 고이는 걸 보게 되었어.


아, 이 새벽에 우는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 건지.


그녀는 식당에 나만 있어서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하더군.

한국에서 간호조무사 생활을 하다가 전 국민을 힘겹게 했던 IMF 때 일본 야마가타현으로 농촌 총각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어.


아, 어쩐지 원하는 메뉴가 특이하다 싶었어.


그땐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많이 힘이 들었었고,

상대적으로 엔화는 가치가 높았었으니 그곳에서 일하며 지내다 보면 친정에 보탬도 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처음에 말이 통하지 않고 관습이 다른 데다가,

농촌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입장이라 많이 힘들었다고 하데.


그래도 일본인 신랑이 꽤 신경을 써줘서 힘이 들어하는 날 밤이면,

신랑이 바지락 술찜을 해서 와서 함께 사케를 마시며 타국에서의 설움을 다독여 주곤 했었다고 해.

그런데 작년에 신랑이 암으로 일찍 죽고,

애들도 성장해서 도시로 나가고 나니 그곳에 머물기가 정말 싫어져서 고국으로 돌아온 거라고 하더군.


변해버린 도시와 변해버린 인심들을 마주하며,

정작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일본 놈한테 팔려갔던 여자라고 마치 환향녀를 대하듯 하는 모습에,

자기 자신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하고 환영도 못 받는 입장이 되었다.

자조하듯 말을 하는 거였어.


그냥 식당 주인인 내가 뭘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겠어.

그 타인들이 당신의 인생을 제대로 알 수 없고,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는 기대를 품지 않는 게 낫다고 할 수밖에.

결국, 세상은 쌍둥이 아닌 이상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 것이니 말이야.


여인은 내 개똥철학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도 식당을 나갈 땐 얼굴이 많이 밝아져 있었어.

오늘도 피곤한 심야 식당의 하루가 지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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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네이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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