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식당 23

김치볶음 블루스

by 능선오름


우리 식당의 피크는 보통 자정 이후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식당을 여는 여덟 시경부터 자정까지는 식재료를 다듬고 그날의 영업준비를 하는 시간이야.

본격적으로 손님이 들어오는 시간은 자정부터 오전 여섯 시까지 지.

퇴근하고 앞서 술자리 들에서 하루를 푸는 사람들이 출출해질 무렵이 자정 이후이고,

야간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새벽 교대를 하는 시간이 대개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라서 그 시간대가 가장 붐비는 시간이야.


오늘은 밤 아홉 시도되기 전인데 어떤 여자 손님이 들어왔어.

그 손님에게 아직 준비가 다 되지 않아서 되는 음식이 별로 없다고 말을 건네니 고개를 끄덕했어.

기다릴 순 있는데, 별난 요리가 아닌 그냥 자극적이지 않은 심심한 음식을 원한다고 하더군.

딱히 심심한 음식이 뭐가 있나 싶어 쳐다보니,

어릴 때 엄마가 이따금 저녁준비가 덜 되었을 때 해주시던 맑은 계란국과 묵은지 볶음이 먹고 싶다고 해.


정말로 식당에서 내놓기 모호한 음식이긴 하지만 뭐 어때.

손님이 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면 되는 거지.


일단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내는데,

이 육수 내는 시간에 대해서는 워낙 개인별로 선호도가 달라서 딱히 규정하기가 좀 어려워.

다시마를 오래 우려내면 국물이 텁텁해진다는 파,

너무 빨리 우려내면 다시마와 멸치 맛이 너무 심심하다는 파.

멸치를 너무 오래 우리면 비린내가 난다는 파.


그래서 난 그냥 둘 다 십분 안에 팔팔 끓으면 빼버리지.

그냥 국물이 옅은 보리차 색 정도로 나오면 그만이야.

거기에 달걀을 풀은 물을 휘저으며 붓는 거야.

그러면 달걀 물이 뭉치지 않은 정도로 길게 풀어지니, 젓가락으로 휘저어 주는 거지.

양파를 얇게 저민 것과 청양고추 한두 개 정도를 송송 썰어 넣어주면 단맛과 매콤한 맛이 국물에 스며 나와.

그리고 간을 하는데,

조선간장을 한 숟가락 정도 넣는데 너무 많이 넣으면 국물이 맑지 않으니 조금만 넣고 맛을 봐서 소금으로 간하면 끝.


묵은 김치는 물에 잘 씻어서 꼭 짠 후,

중화요리용 팬 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살살 볶아서 마늘 기름을 낸 다음 묵은 김치를 넣는 거야.

김치가 노골노골 해 질 정도로 중간 불에서 타지 않도록 볶아 주는 거지.

김치가 불기운에 지쳐 노곤해진 것이 보이면 송송 썬 파와 참기름을 붓고 한번 화끈하게 휘저어 주면 돼.

그다음 볶아진 김치를 접시에 담고 통깨를 뿌려주면 끝.


여자 손님은 공깃밥에 계란국과 김치 볶음 만을 가지고 맛나게 밥을 먹었어.

그녀는 식사를 마친 후 입가심으로 내민 둥굴레 차를 마시면서 말을 하더군.

요즘 식당들의 요리들은 간이 너무 세서 뭐든지 먹고 나면 갈증이 난다고.

게다가 매운 요리 바람이 불다 보니,

보통의 고춧가루도 아닌 캡사이신 같은 것으로 간을 하곤 해서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음식들이 자극적이라 거부반응이 생긴다는 거였지

때로는 간도 좀, 약하고, 맛도 강하지 않은 음식들이 그립다는 거야.


하긴 그래.

인생도 늘 강렬한 사건들이 연속된다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줄이어 늘 강하고 자극적인 일로 일상이 가득하다면 점점 더 강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다가,

인생 자체가 지나친 과부하에 걸릴 것 같긴 해.

요즘 뉴스들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에 걸맞은 나라 같기도 하고.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세상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잖아.

물론 미디어라는 것이 좀 더 자극적인 것에 집중하기도 하고,

소수를 위해서 어떤 사건이라고 해도 파헤치는 것이 중요한 민주주의라 생각은 해.

하지만, 그렇게 매일 ‘죽일 놈들의 세상’을 듣다 보면 정말 세상에 환멸이 생기는 부작용도 있거든.

때로는 ‘즐겁고 행복한 뉴스’ 같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어.


심성 좋은 사람들이 꾸며가는 행복한 세상이라거나,

아무 이유 없이라도 약자를 도와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것들을 중심으로 알려주는 뉴스 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이 세상에 미치광이들이 적지 않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뉴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요즘 뉴스의 흐름만 보면서 자라난다면 이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섭겠어.

법을 지켜도 사고가 나는 세상,

그 법을 만들고 법 준수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또 그 법을 어기는 세상.

그러고도 멀쩡하게 잘 사는, 오히려 법을 잘 지키는 소시민들보다 더 잘 사는 세상.

이게 얼마나 아이들 눈에 괴상한 세상이겠느냐 말이야.


역설적으로 세상이 너무 엉망이다 보니,

때로 이렇듯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평온한 일상들도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이 좀 슬프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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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네이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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