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딸아.
요즘에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한다고 하더라.
유행이라고는 하는데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생긴 움직임은 아닌 것 같으니 유행의 한 줄기 정도로 이해한다만.
일단은 살아가며 쌓아가는 물건들을 줄이고, 소비도 줄이고,
일상을 가급적이면 단순하게 정하고 살자는 운동이겠지.
어떤 면에서 아빠도 거기에 크게 공감은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사들이고 쌓고 또 거기에 더하고.
한정된 삶에서 그런 것이 자꾸 쌓이다 보면 나중에는 치우기도 어렵거니와,
쌓인 것을 버리는데도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니까.
과거에는 버리지 않는 운동이 전국민적으로 일어난 적도 있었다.
아껴 쓰고 최대한 안 버리고 살자는 그런 이유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이른바 ‘잘살기 운동’이라는 국가주도 사업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다가 산업이 커지면서 소득이 늘어나고 생산도 늘어나니 그때는 또 소비를 장려하는 정책과 운동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이제 돌아보니 그런 분위기나 정책과는 별개로,
인간은 원래 뭔가를 계속 쌓는 게 본능인 것도 같다.
과거를 돌아보아도 능력 있고 권위가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무덤에 어마어마한 물건들을 쌓아두고 죽었지.
그 덕택? 에 후손들은 오래전 죽은 조상들의 무덤을 관광사업 삼아 먹고살기도 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신의 삶의 흔적을 꼭 남기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어차피 유전자를 남기면서도 그 후손들이 사진과 기록과 재산과 무엇으로든 자신을 기억하기를 원하지.
그건 어쩌면 미지의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그 후에도 뭔가 이어질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지구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이루어진 행성에서 온갖 자원을 채굴하고 그 자원으로 뭔가를 만들고 쓰다가 버리고... 그런 게 인간이다.
이제는 단지 물건이 아닌 온라인상의 온갖 흔적들과 온라인에 쌓는 개인기록들조차 사후에도 오래도록 저장용량을 차지하며 유산 비슷하게 남긴다.
한정된 서버는 계속 용량을 늘려갈 것이고 그러기 위해 또 더 많은 기계들을 만들 거고 더더더 많은 전력이 들어가겠지.
‘산 자’가 아닌 ‘죽은 자’의 용량으로 말이다.
이건 정말 후손을 남기는 선대의 입장에서 커다란 문제다.
자원을 덜 쓰고 쓰레기를 덜 남겨야 후손들이 그나마 살아갈 건데.
마치 무한대의 화수분이라도 되는 듯 자원을 쓰고 버리고를 반복해서,
이미 아빠의 어린 시절에 비해 기후가 달라질 정도이고 자연을 바꾸는 것도 많으니 후손에게 미안할 뿐이지.
아빠도 남들에 비해 적지 않게 뭔가 쓸데없는 예쁜 쓰레기들을 꽤 모아 온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아직도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하긴, 그 시절엔 자원 재활용도 없었으니 갖다 버려도 그냥 허공에 태우고 말았겠지만.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이런 거 모아두면 나중에 네가 물려받는다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물건들도 생각해보면 그게 네게 필요한 것이기보다는 그저 내 욕심일 뿐,
네겐 아무 의미 없는 예쁜데 쓸모없는 쓰레기로 남아서 처치곤란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
어차피 네가 좋아할 것, 네가 살아가며 필요한 것은 따로 있을 텐데.
그래서 아빠는 생각했다.
새해에는 필요 없을 것들을 다 버리고,
누구에게 주거나 싸게 팔고,
서재에 가득한 책들도 네게 필요한 게 아닐 책들은 다 치우기로.
그래서 너는 네 삶의 그릇에 맞는 걸 찾아가게 하는 게 네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내가 네게 물려줄 건 네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이 아니라면 쓸모가 없을 거니 말이다.
조금은 극단이 아닌가 싶지만,
결론은 대체로 보통의 사람들이 남기는 대개의 ‘유산’은 후손에겐 불필요한 게 아닐까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