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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31

대체 왜

by 능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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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우리나라의 근대건축 역사는 오래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와 비교하면 쌓인 결과물이 적진 않다.

국내도 그렇고 해외건설도 그렇고 꽤 굵직한 실적이 많다.

우리나라가 근대화, 산업화를 이루는데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만드는데 토목, 건축이 필수였고 당시 정치적으로도 지원이 컸던 덕분이기도 하다.

7, 80년대에는 외화벌이를 위해 중동에 투입된 건설사들이 많아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한국건축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대체 왜.

우리나라의 아파트에서는 아직도 층간소음이 끊이지 않고 문제가 될까.

왜 위층의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아래층까지 시끄럽게 들려서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걸까.

이건 현대 건축기술의 문제일까.

아직도 기술력이 모자라서일까.

대한민국 건축계의 아주 작은 모퉁이에서 일을 거드는 처지에서도 창피한 일이다.


단언컨대 이건 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법적 의지의 문제이자 업계 전반적인 인식의 문제이며 비용의 문제다.

그리고 그렇게 절감된 비용은 생각보다 크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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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군을 전역하고 인척 관계로 지방의 주택공사업체에서 잠시 일을 했었다.

당시만 해도 ’ 주택업자’란 대체로 ’ 건축 쟁이들은 다 도둑놈’이라는 오명의 대명사쯤 되던 시절이니 크게 자랑스럽진 않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오히려 대기업이 아니어서 뭔가 문제가 될법한 일들에 대해서는 좀 더 현장에서 신경을 써줄 수 있는 여지가 꽤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 업체에서 지은 집에서 몇 년 살게 되어 직접 지은 건물에서 몸소? 체험한 경험이 있으므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 업자‘들의 현장이란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었다.

공사하는 기술자들도 그렇고 업자는 건물을 지어 분양하거나 매매를 해야 하므로 이윤을 남기는 데만 급급했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정도의 다세대주택을 짓는데 조금만 비용을 들이고 신경을 써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던 경험이다.

각 방의 전열 콘센트를 이전에는 전기시공업체가 콘크리트 타설 전에 대충대충 콘센트 박스를 배치하고 끝이었다.

그럴 때 문제점은 세대 간 벽의 콘센트가 서로 마주 보게 설계가 되어있어서 자칫 옆집의 거실 소리가 바로 옆집의 거실에서 들리게도 된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벽이 있지만 서로 등을 맞댄 콘센트 박스는 얇은 철제 함에 불과하니까.

그건 전기업체가 시공 편의성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므로 서로 거리를 띄워서 벽체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나면 완전히 차단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작업이 귀찮다고 기존에는 맞대고 작업을 했고 현재도 그런 곳이 많다.

공동주택의 화장실 하수와 오수관은 대개 아랫집 천정을 통해 배관이 내려와 화장실 벽의 배관 통로를 통해 아래층으로 빠지게 된다..

이때 위층의 배관 구멍은 당연히 파이프와 파이프 주변의 시멘트로 마감이 되는데, 배관이 주철관으로 시공될 때는 괜찮은 편인데 집값이 낮은 경우 흔히 PVC 관이라 부르는 연질비닐관으로 연결된다..

그 관은 얇기도 하고 위층에서 물을 내릴 때 굽어진 배관에서 소음이 유발된다..

그런데 배관에 얇은 고무판을 감아두기만 해도 소음이 크게 감소한다.

물론 본 설계에 없는 재료와 인원이 투입되어 비용이 발생하지만 그게 크지 않다.

이런 방법으로 시공된 집의 중간층에서 살아보니 거의 화장실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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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대주택은 대개 시공의 편의성을 위해 벽식 구조 ( 벽체가 구조의 역할도 하므로 벽체와 바닥과 천장 슬래브가 일체화된 구조 ) 이므로 층간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슬래브 두께를 두껍게 하고, 벽 두께를 늘리면 당연히 소음이 줄어든다..

그리고 슬래브 바닥 판 위에 난방 코일을 깔기 전에 차음재를 넣게 되는데 법적 기준은 단지 두께만 명시가 되어있다.

여기에 당시 새로 개발된 층간 차음재를 넣고 시공하여 층간소음을 줄일 수 있었다.

대체로 약간의 디테일에만 신경을 써도, 비용만 조금 더 투입해도 층간소음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 내가 짓은 집에서 사람은 수십 년 이상을 산다 ‘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대형 건설사 사장들이 과연 자신들이 분양 용도로 지은 아파트에 살까.

아니다.

국토부에서 건설 관련 법안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런 층간소음 아파트에 살고 있을까.

부자들이 대개 개인 주택을 사용하거나 강남 일대의 고급빌라에 사는 이유가 있다.

사생활 보호도 그렇지만 고급빌라는 오히려 일반 공동주택보다 더 두껍게 더 견고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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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건축기술로 층간소음을 줄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비용의 문제일 뿐이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다.

최소 수억 원 이상의 분양가를 가진 아파트를 만들면서 돈 때문에 차음 공사가 부실해진다고.?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실제 분양가격은 시행사가 정하는 것이고, 시행사의 권한 아래에서 경쟁입찰로 공사를 수주한 시공사의 공사비에서 공사는 진행되는 것이니 아파트 공사를 통해 가장 이익을 크게 남기는 시행사 말고 시공사는 공사를 따내기 위해 낮춘 공사단가에 맞춰 최대한 실공사비를 쥐어짜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공사비를 낮추게 되고 층간소음과 같은 문제는 법정 한도만 지키는 형태로 만들어지게 된다.


자유경제 체제에서 국가가 건축공사에 개입하는 부분은 법적 부분뿐이다.

실제 공사비의 적정성에 대해서는 사기업에 대하여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렇다 해도 층간소음이 끊임없는 사회문제가 되는 상황인데 이 부분의 기준을 마련하는 건 국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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