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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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주거지의 스카이라인은 두 가지로 나뉜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직사각형의 건물들이 빽빽하게 밀집하여 먼 산의 윤곽도 잘 안 보이는 타입.
그리고 고층건물에서 내려다보이는 개인주택과 저층 다세대, 다가구 주택의 밀집.
간혹 평창동이나 일부 고급주택가의 마당이 있고 널찍한 주택들이 있는 것은 극소수 이므로 제외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은 서울은 한강을 경계로 강북 강남으로 확연하게 나뉜다.
남북을 종단하는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이전의 대도시들,
대전, 대구, 광주 같은 도시들은 조금씩 형태가 다르지만 고속도로의 시작이 경부선이었던 이유로 경부선을 중심으로 좀 더 밀집한 대도시가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단위면적당 밀집도는 2021년을 기준 전 세계 인구대비 인구수는 28위이며 밀집도는 23위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구밀집도는 그렇고, 도시 밀집도는 13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는 도시면적을 어디에 기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절대적이지 않고,
통계를 낸 기관에 따라 순위는 달라진다.
어쨌든 우리가 체감하는 대로 한국의 수도권은 밀집도가 무척 빽빽한 게 사실이다.
현재 수도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인구들 중 과거 단층주택에서 살았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중장년층 이상이고,
그 아래는 어떤 형태로든 집합주택에서 성장한 기억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중장년층 대부분은 여유만 있다면 근거리의 전원주택을 꿈꾼다.
상자갑 같은 공동주택에 모여사는 것이 부동산의 재산적인 의미로도 필요하긴 하지만,
어지간히 좋은 아파트가 아니라면 불편하다고 느낀다.
그것은 과거 살아온 기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개인주택의 자유로움, 사생활 보호, 그리고 보다 넓은 공간감 때문에라도 언젠가는 개인주택으로 돌아가고 싶은 로망이 있다.
그런 이유로 펜션이나 별장형 휴가지가 인기가 있게 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도시에 집중된 형태를 쉽게 바꿀 수 있을까.
수도권 인구밀집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위성도시로 신도시 개발을 하고,
중앙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행정 신도시를 만들고,
인구분산을 위한 정책적인 노력은 계속되어 왔는데 왜 그게 안될까.
우리나라는 지형적으로 종단이 횡단보다 긴 형태를 가진 반도 국가다.
형태만 그런 게 아니라 동쪽으로 긴 산맥이 자리하고 있어서 지리적으로 더욱 좁은 종단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산이 많은 지형은 피치 못하게 지역을 나눌 수밖에 없다.
나뉘어진 지역을 현대의 기술로 연결하는 것은 고속도로와 터널, 교량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터널이나 교량이 만들어지면 도시 간 이동속도는 빨라지지만 그 거대한 구조물로 인해 인공적인 산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고속도로가 지나는 주변과 터널이 지나는 주변은 농지 외에는 새로운 도시로 만들어지기 나쁜 형태가 되는 것이다.
소음이나 기타 주거에 불리한 조건들이 함께 생기는 것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도시의 밀집화가 이뤄진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좁은 땅에서 자꾸 확장을 하다 보면 도시가 차지하는 면적이 국토의 큰 부분을 차지하므로 국토 이용의 효율이 떨어진다.
자원의 활용 측면에서도 그렇다.
공동주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물, 전기 등 에너지는 각개의 단독주택으로 나뉘게 된다면 그 몇 배가 필요하다.
개인의 쾌적함을 위해 몇 배가 넘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속도로망이 발달하고, 빠른 교통수단이 등장할수록 수도권의 인구 집중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조금의 시간만 희생한다면 굳이 지방에서 살 이유가 없어지게 되니 말이다.
수도권에 필요한 인프라가 모여있고 서비스 품질이 좋은데,
굳이 지역에서 해결을 하려고 안 한다는 이야기다.
그게 악순환이 되어 좋은 인프라는 모두 수도권으로 모여들게 되고 인프라를 이용하기 위해 지방 거주자들도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수도권 인프라를 사용한다.
결국 그런 이유들로 수도권에 각종 인프라와 산업 상업 시설들이 밀집된다는 말이다.
사람이 편안함을 추구하는 방식은 갈수록 더 치밀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걸어서 이삼십 분 거리에 원하는 상점이 있다면 그게 자신이 거주하는 건물 1층에 위치한다면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하고 살려고 한다.
역세권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 그렇다.
오분만에 걸어서 전철역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게 더 편한 것이다.
굳이 삼십 여분을 걸어서 전철역을 가는 것보다는 상대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
그래서 역세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런 이유에 급 접하려면 저층부는 상업시설로 만들고 고층부는 거주시설로 만드는 주상복합화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단지에서의 삶이 쾌적하도록 그 안에 인공호수와 숲길을 만드는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 도시에서는 비효율적이다.
차라리 아파트의 거주밀도를 높이고 도시의 중간중간에 공원을 만드는 것이 공공의 삶을 위해서 더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목적지를 향해 걸을 때 그 걷는 길이 산책로가 될 수 있는 길이라면 사람은 걷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걷다가 목이 마를 때 들를 카페가 지근거리에 있다면 더욱더 그러하다.
하지만 집에서 나와 목적지인 전철역을 가려면 몇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우중충한 슬럼 골목을 지나고, 취객들과 충돌을 피해야 한다면 점점 삶의 질이 낮아질 것이다.
밀집도시를 만들되 쾌적한 지상공간을 만드는 것.
이게 앞으로 도시를 만들어갈 우리나라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