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도시적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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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말의 주인공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다.
이것이 로마에서 라틴어로 번역이 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동물이라는 단어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이 말의 원뜻이 인간=정치라는 의미일까.
오히려 로마의 번역이 더 옳지 않을까 한다.
고대 그리스의 사회란 폴리스라는 도시국가의 형태였기에 그렇다.
사람이 모여서 서로 필요한 것을 공유하고 거래하며 소통하는 것이 도시국가이고,
이 도시국가는 원시적 형태의 정치활동이 일어나는 곳이었으니까.
인간이 필요에 의해 모여 살고, 모여 살다 보니 필요에 의해서 도시가 만들어졌고, 그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체제로 정치가 등장했다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도시적 동물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원시에 가까운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인간들은 현대에도 도시국가의 형태를 만들지 않고 씨족, 부족 국가에 가까운 형태로 살아간다.
농경이라는 것이 발명된 이후부터 도시라는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면 농경은 왜 만들어진 것인가.
수렵 채집의 형태는 아무래도 늘 자원이 부족하고, 일정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사냥감의 이동, 자연식물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는 생활이 기본이며 그런 상황에서는 도시를 형성할 수 없다.
현대에도 유목을 주업으로 하는 종족은 이동이 편한 움막 형태의 주거를 선호하고,
그런 움막은 늘 이동하기 때문에 도시화가 불가능하다.
농경은 한 지역에 자리 잡아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하고,
그렇게 생산된 물자를 기본으로 경제라는 단위가 생기며 경제를 공유하고 거래하기 위해서는 모여사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축적된 산물을 지켜내기 위해서 군대가 필요해진 것이다.
도시가 생기면서 방어를 위해 성이 필요했고 성 안의 구획이 정해진다.
각자 전문분야가 나뉘면서 목적에 의해 구획이 정해지고, 사람이 주거로 이용할 공간들도 필요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서 필요에 의해 도시화가 되는 것이다.
적대적인 세력이 적은 지역은 성곽이 필요하지 않고 도시의 확장이 가능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도시 간 거래도 늘어나고 그런 거래를 위해 도로가 발달한다.
해상무역을 위해 해안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일어나기도 했으니 근대 유럽과 지중해 연안이 모두 해당한다.
전 지구적으로 농경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도 늘어났다.
고대에 번성하던 도시들이 어떤 이유로 몰락하거나 황폐해졌던 것들은 전쟁만이 아니라 교역로나 교역의 물자가 바뀌거나 새롭고 더 편한 교역로가 등장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즉 모든 도시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버려졌었다.
인간이 모인 집단이 커지면 정치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그 정치적인 행위에는 종교에도 사용되었다.
원래 원시 사회에서 두려움이라는 것을 이용해 지배수단으로 이용되던 종교는 도시화가 일어나면서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그 과정에 종교적인 건축들이 이용되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고대사회에서 건축이란 보통의 대중에게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는 국가적 행위이자 권력이었으니까.
인간은 도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각자가 자급자족을 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세분화되어서 더 그렇다.
수렵채집이나 개별 영농을 통해 자급자족을 한다 해도 옷, 집, 기타 모든 문명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차피 도시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도시를 어떻게 인간에게 이로운 구조로 만들 수 있는지가 건축쟁이들에게는 최대의 과제다.
이젠 거기 더해서 도시를 존속시키기 위해 환경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도시는 인간이 만든 거대구조물로 가득한데,
도시로부터 나오는 온갖 폐기물과 자원에 대한 재활용 문제부터 늘거나 줄어드는 인구에 대한 대책까지 광범위한 것들과 싸워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인구의 수가 더 늘지도 줄지도 않는 평균인원을 유지하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도시의 확장도 멈춰야 하지 않을까.
기존에 만들어진 자원들을 잘 활용해서 현존 인구의 수요들을 맞추는 게 진정한 친환경 아닐까.
모든 도시를 확장하고 심지어 우주공간까지 확장을 해야 한다면 그건 이 한정된 지구라는 땅덩이에 지나친 낭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