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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34

순살 아파트를 아십니까

by 능선오름

건축이 말을 거네 34


순살 아파트를 아십니까


요즘 들어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용어가 순살 아파트다.

순살 아파트라니.

뉴스화면에 나오는 초고층 초대형 아파트가 공사 중에 무너진 상태라거나,

시공 중인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너져내린 상태를 보면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어 보인다.

설계·감리.시공의 총체적인 부실이라며 전문가들이 나서서 핏대를 세우고,

행정가들은 티브이에 나와서 엄정한 수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소위 ‘건설’ 회사에서 짓는 건물이 무너진다.

신축 아파트 주차장에 물이 펑펑 솟는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 벽에 곰팡이가 가득하고 정체 모를 벌레들이 바글거린다..

바야흐로 입주자들의 수난 시대이며 건축쟁이들의 수난 시대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이미 시스템적으로 예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의 건축술은 과거라면 꿈도 못 꿀 정도였을 높이와 규모와 형태를 만들어낼 정도로 높게 발전되어 있다.

즉 기술의 부족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건축의 변방에서 작은 일을 하는 처지에서 크게 나서서 말할 처지는 아니나, 그래도 전공자로서 이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가슴 한편이 쓰리다.

그 원인이 익히 짐작 가는 바가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

결국은 ‘돈’의 문제라는걸.


기원전 로마제국의 시대에 이미 아파트와 주상복합이 있었고, 건축법과 소방법, 도시계획법이 존재했었다.

그런 법규가 고대에 존재했다는 것은 그만큼 당대에 부실시공과 건축에 관한 사건·사고가 잦았었다는 이야기다.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슬픈 현실이다.

고대에도 그런 부실시공의 문제는 결국은 ‘돈’ 이었다.

적은 비용을 들여서 이익을 보려는 건축주가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문제가 발생했었다.

그런 자본주의 프로세스는 현대에도 그대로 통용이 된다.


욕심이 지나친 건설사도 문제지만,

구조적으로 선분양을 해야 하고 몇 년 전에 약정된 공사금액으로 무조건 완공을 해야 하는 문제도 부실의 원인으로 적지 않다.

과거 정부 주도의 이십만 호 건설 때도 그러했고,

건축의 기본이 되는 철근이나 시멘트의 파동 때도 항상 그러했다.

정해진 공사 기간, 그 기간 안에 완공이 안 될 때 물어내야 할 페널티.

매일 바뀌는 현장 작업자.

자재뿐 아니라 인력이 파동 날 때도 많아서, 어제 일했던 인부가 갑자기 웃돈을 주는 다른 현장으로 말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대단위 공사를 할 때 건축주인 조합이나 시행사는 어떻게든 건축비용을 줄이려고 애쓴다.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할 일이고 과정이긴 하지만,

그게 기술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충분한 검토라기보다는 막무가내식 우기기가 많다.

국가에서 지정한 공사계약서의 일반조건에도 보면 자재나 인건비가 일정 퍼센티지를 넘게 상승하면 갑을 사이에 조율할 수 있다는 항목이 존재한다.

그러나 민간공사에 있어서는 그 항목은 ‘안 할 수도 있다’ 와 같이 해석된다.

이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거나, 치열한 법적 다툼이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대부분은 ‘갑’ 인 시행 측에 의해 예전의 가격으로 관철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 시공사는 당연한 수순으로 그들의 하청업체들에게 출혈을 강요하게 된다.

대형 시공사로서는 하청업체들을 압박할 카드가 있으니까.


심할 때는 이번 현장에서 손실이 나게 되면 어쩔 수 없고, 대신 다음 발생하는 현장에서 좋은 단가로 메워주겠다는 식의 무책임한 약속 아닌 협박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다.

속된 말로 ‘너네 말고 하겠다는 업체 많아’ 가 된다.

이때 생각해야 할 것은 사실은 아주 단순하다.

어떤 업체든 자신들이 받아야 할 최소한의 이익을 갖지 못하면 다른 무엇으로든 그 공백을 메울 거라는 것이다.

하청업체간 경쟁에서도 비현실적인 단가를 감수하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있다면 분명 다른 무엇인가가 빠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 ‘집 장사’들의 전성시대 때를 겪은 세대들은 건축 쟁이들은 다 도둑놈이고,

엄청나게 남겨 먹는다고 공공연히 말이 떠돌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돈을 단기간에 벌어들인 ‘업자’들이 있었고 그때의 영향으로 건축이 엄청 많이 남긴다는 오명을 현재까지도 받고 있다.

해외의, 국내의 여러 상황변화로 인해 자잿값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등하고,

인건비가 크게 상승하고, 역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과거와 비교하면 대폭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대형 시행사나 시공사들은 과거의 공사 기간과 공사비용을 근거자료 삼아서 현실을 과거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문제에 관한 결과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된다.


그리고 ‘순살 아파트’처럼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모두 조용히 지나간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사회적인 인식의 차이 때문도 있겠고,

우리나라 부동산 특유의 균형이 맞지 않는 분양정책과 가격폭등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며,

건설산업의 종사자들이 지속성이 낮고 처우가 낮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출근하여 빛과 바람과 비에 온전히 노출된 상태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고도의 집중력과 기능에 대한 자부심을 요구하려면 당연히 그에 맞는 비용이 소요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충분한 기간도 필요하다.


이따금 티브이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리모델링 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즐겨 보곤 하는데,

그들의 공사 기간은 거의 우리나라 기준 두세 배에 달한다.

그리고 그런 기간을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하절기에 이 삼 일에 한 층씩 콘크리트를 부어가며 올리는 건물들을 본다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돈. 기간. 기다림. 사람에 대한 존중.

이 모든 것이 더해져서 수십 수백 년 건물이 완성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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