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 식당 25

오뎅잡채

by 능선오름


새벽 한참 영업이 바쁘던 시간이 지나고 조금 한가한 틈이 생겼어.

못 보던 젊은 친구가 가게를 들어서더니 좀 머뭇거리더군.

일단 앉으라 했어.


사람을 탐색한다는 건 좋은 버릇은 아니지만 난 모르는 손님은 좀 살펴보곤 해.

일단 손님이 어떤 부류인지 알아야 그에 걸맞게 대접을 하잖아.

사람을 봐가면서 차별한다는 뜻은 아니야.

단지, 때에 따라 친절이 불편함이 되는 때도 없지 않고,

때로는 나름대로 시크함이 건방으로 느껴질 수도 있잖아.

밤 장사에 가능한 마찰은 줄여야지.


그 젊은 손님은 직장인처럼 보이진 않았어.

좀 부스스해 보인다고 할까.

노무자 같진 않은 창백한 얼굴인데 머리도 제멋대로에 옷차림도 유행과는 거리가 멀었지.

어찌 보아도 우리 같은 가게에 늦술 한 잔 걸치고 오는 부류와는 매우 달랐어.

뭘 드시고 싶냐 물었더니 혹시 잡채가 가능한지 묻는 거야.


아뿔싸. 이 손님은 잡채에 들어가는 재료가 얼마나 많은지 알긴 하는 걸까.

물론 한식집도 아닌 우리 가게에 잡채 재료는 없어.

재료가 없다니 무척이나 실망한 표정을 짓는 거야.


술 마시러 온 것도 아니고, 실은 이제 마지막이 되어 버린 사시생 마지막 세대라더군.

이제 고시 기회도 더는 없어져서 몇 번을 문턱에서 떨어지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일념으로 버텨왔는데,

이젠 그 길도 막히고 없는 돈에 나이는 들어 버렸는데 법학전문대학원 갈 능력은 안 되니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한탄을 해.


혹시나 해 이곳 근처 법무사 개업을 한 선배를 만나 취업 부탁을 하려 했다 퇴짜를 맞곤 새벽에 귀향하려고 기다리는 중이라기에 좀 맘이 짠했어.

아들 성공 바라다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잡채를 문득 먹고 싶었다고 하니까.

그래서 꼭 정통 잡채 아니어도 괜찮다면 비슷한 것을 해 주겠다고 했지.


어제 오뎅볶음을 만들어 놓고 남은 오뎅이 좀 있었어.

그 오뎅을 얇게 채를 썰고 파프리카와 피망, 팽이버섯을 얇게 채 썰기를 하는 거지.

그리고 게맛살을 죽죽 찢어서 준비해.

먼저 파프리카와 피망, 팽이버섯을 중간 불로 달군 중화 팬에 넣고 기름을 둘러서 살살 볶아 주는 거야.


오뎅은 끓는 물에 데쳐서 기름기 빼주고 거름망에 올려서 물기를 제거해서 앞의 볶은 재료에 넣는 거지.

양념장은 진간장에 설탕을 넣어 짜지 않게 뿌리면 돼.

화룡점 청.

마지막으로 숙주나물을 고루 섞어주고 참기름과 통깨를 뿌린 후 살짝 숙주나물이 숨 죽을 정도에서 접시에 담는 거야.

당면을 쓴 정통 잡채는 아니지만, 또 이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다니까.


고시생 청년은 맛나게 오뎅잡채 한 접시를 비우곤 새벽 기차를 타러 간다며 어둠을 나섰어.

저 청년은 몇 년간 의 청춘을 걸었던 사법고시가 없어진 것이 불행인 걸까, 아니면 다행인 건가.

알 수 없어.

어찌 알겠나. 인생 이란 게 끝날 때까진 장담할 무엇도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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