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는 슬픈 음식이다
일전에 팟타이를 만들게 했던 태국 색시가 어느 날 밤 찾아왔어.
물론 남편인 채소배달 아저씨가 함께 온 거지.
태국 색시 옆에는 얼굴이 오목조목한 또 다른 아가씨가 함께 있었어.
아저씨가 귀띔하기로는, 아저씨 가게에서 채소를 다듬고 포장하는 일손이 부족해서 사람을 구한 것인데 한국말을 띄엄띄엄 하기는 하지만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하더군.
동남아 사람이라는 공통점뿐 아저씨 색시는 태국 사람이고 직원은 베트남 사람이라 어차피 그들끼리 대화가 가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어라고 했어.
그 베트남 여자는 흔하디 흔한 한국 농촌 총각 맞선을 주선하는 회사를 통해서 시집을 왔다고 해.
그런데 와서 보니, 남편은 늘 고주망태에다가 홀시어머니의 구박이 만만치 않았던 가봐.
게다가 부부생활보다는 거의 농사일 노예처럼 일만 죽도록 하고 생활비 한 푼 주는 일은 없었다고 했데.
아무튼, 견디다 못해 여자가 집을 뛰쳐나오고 보니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거지.
행여나 강제 출국을 당할까 싶어서 마땅한 공장 같은 곳에도 갈 수 없어서,
채소 아저씨 가게에서 일하게 된 상황인 거였어.
그러다 보니 그 흔한 쌀국수 가게 한번 맘 놓고 갈 형편이 아니라,
먹고는 싶지만, 딱히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게다가 우리나라 쌀국수 체인은 너무 비싸서 먹기가 어렵다더군.
하긴 그래.
쌀국수 재료가 그리 비싼 것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비싼 감이 있지.
아저씨는 배달하러 다녀야 하니, 태국 색시와 베트남 여자에게 쌀국수를 좀 먹여 달라는 거였어.
일단 오케이는 했지만, 우리 가게가 쌀국수 전문점은 아니니 재료는 좀 다를 거라고 했어.
쌀국수를 찬물에 담가서 삼십 분 정도 불려 줘야 해.
다음은 양파를 아주 얇게 저며서 식초와 설탕을 뿌려 재워두기로 해.
국수가 불어나는 동안 육수를 준비하는데, 구이를 하다 남은 차돌박이 나 양지 조각들을 중간 불에 달군 중화 팬에 넣고 달달 볶는 거야.
그러면 기름이 조금씩 배어 나오기 시작하지.
이때 송송 썬 파와 물을 두 컵 붓고 살짝 졸여주다가 라면 두 개 끓이는 정도 분량의 물을 다시 붓고 약한 불로 끓여 주면 고기 육수가 완성돼.
보통 베트남 쌀국숫집에 가면 해선 장과 피시 소스가 필수로 들어가는데,
뭐 우리 가게에 그런 건 없으니 국물에 멸치액젓을 한 숟가락 넣어주면 간이 맞아.
그 육수 속에 절인 양파와 숙주나물을 넣어 숨을 죽이고, 불린 쌀국수는 토렴 하듯 끓는 국물에 담갔다 빼서 부드럽게 만들어 주지.
다진 마늘과 다진 파와 건새우를 부숴서 함께 섞은 후 식용유에 살짝 볶아주면서,
홍고추 잘게 다진 것을 넣어 매콤한 맛을 내면 소스가 완성되는 거야.
완성된 야매? 쌀국수를 두 처자에게 내주니 꽤 맛나게 먹더라고.
평탄치 않은 타국살이를 하면서도 그 베트남 처자는 국수 한 그릇에 꽤 행복한 표정을 지었어.
원래 쌀국수의 유래를 보면 베트남의 아픈 역사와 연관이 있지.
오랜 기간 프랑스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지배자들의 집에서 잡일을 도와주곤 하던 하인들이 서양인들이 먹지 않고 버리던 소뼈들을 주워다가 집에 가져가서 푹 끓여서 쌀국수를 넣어 먹던 풍습이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해.
우리나라 부대찌개 같은 것이지.
버려지던 재료를 가지고 그들만의 독특한 음식을 만든 그 사람들의 지혜가 참 대단해.
게다가 퍽퍽하기 짝이 없는 안남미를 가지고 부드러운 국수로 바꾼 지혜도 대단하고.
현대에도 하루 한 끼는 무조건 쌀국수를 먹어야 진정한 베트남 사람이라고도 하더군.
이미지 네이버 펌
쌀국수 생각
명분도 없을 남의 나라 전쟁에 자원해서
알지도 못할 적도의 정글 깊은 밀림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고 죽고
대체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 한 전쟁인지
알 것도 없고 알 도리도 없던 가난의 시절
외화를 벌기 위해 목숨 팔이로 총을 든 병사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팔던 아오자이 처녀
이제는 그 원수의 땅에 가난을 벗기 위해
적도의 밀림 깊은 곳에서 날아온 월남 아가씨
머지않았던 과걸랑 깡그리 다 잊고
식민지 지배자처럼 군림하는 숱한 사람들
남편, 시어머니, 시아버지, 작업반장 들
그러지들 마세요
남의 일이 아니었잖소
국수 한 그릇 드시고 정신 차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