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때는 말이야 34

개근 안 해도 괜찮아

by 능선오름

34


딸.

예전에 아빠가 무려 12년이라는 교육과정을 마치곤 자랑스러워하는 게 하나 있었어.

12년을 개근했다는 사실이지.

주변에 초중고 12년을 풀 개근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더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어.

무엇보다 ‘근면 성실’이라는 말이 교실마다 붙어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야.

그건 어딘가에서 면접을 볼 때도 꽤나 가슴을 펴게 하는 당당한? 이력이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게 꼭 자랑스럽지는 않은 일이더라고.

12년을 개근하고 12년 내내 우등상을 받았다면 몰라도,

결과적으로 우등상을 받기도 못 받기도 하면서 지낸 시간들이었으니까 말이야.

달리 보면 학교는 ‘열심히’ 다녔지만 그만한 성과는 아니었다고 할까.


아프지 않은 한 누구나 할 수 있는 등교를 그토록 열심히 한 게 뭐 그리 대단한가 싶어.

반대로 누군가는 몸이 좀 안 좋으면, 혹은 일부러 농땡이를 부려서라도 이따금 결석도 하고 지각도 하고 하면서도 우등상을 놓치지 않았다면 그쪽이 훨씬 효율적이고 가성비 좋은 행동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때의 아빠는 일종의 맹목적인 신앙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다 좋아질 거라는 맹목적인 신념 같은 것에.

대개 학교 교과과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러했고,

주변의 어른들도 늘 하는 말들이 그러했으니 그게 옳다고 믿었지.


그런데 아빠도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 되면서 보니까 세상에 열심히만 다닌 사람이 꼭 뭐가 잘되고 그러는 건 아니더라고.

물론 확률적으로 봤을 때 수시로 농땡이를 부리고 눈치껏 노는 아이들이 공부성과가 좋을 확률은 드문 게 맞아.

하지만 반대로 학교를 안 빼먹고 무작정 열심히 다닌 아이들이 꼭 결과가 좋은 것만도 아니지.


그건 회사조직 같은 데서도 나타나는 게,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회생활에서 출퇴근만 열심히 하고 결과가 그럭저럭인 사람은 언젠가 밀려나게 되어있거든.

세상은 과정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결과가 별로인 과정을 높이 사지는 않으니까.

때때로 요령껏 출퇴근을 하면서 학원을 다니거나 다른 공부를 해서 자기 자신의 값어치를 높이는 직원들을 보면 과정에서는 좀 얌체 같다고 욕을 먹을지라도 결과에서는 그 사람이 가치가 높아져서 승진을 하기도 하거든.

어쩌면 주어진 환경에서 출퇴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수동적인 성향일 수도 있어.

꼭 회사에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 계발도 중요한 부분이니까 말이야.


학교기관에서 배워온 윤리, 사회 교육에 맞춘다면 정말 열심히 하루하루 걸어가는 거북이가 승리를 거머 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

그렇게 열심히 근면성실을 종교 삼아 살아오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자신의 근면성실이 그리 값어치 있는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이면 자괴감이 들 수도 있어.

아빠가 좋은 예야.

학교도 직장도 사업도 열심히는 했으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세월이 걸린 셈이야.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빤 근면 성실함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그건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야.

근면도 성실도 없이 뭔가 큰 한 방을 노리는 거라면 그건 도박사에 불과하니까.

아빠는 그것만으로는 원하는 바에 이르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 거야.


근면 성실은 분명히 개인에게 시간을 요구해.

그런 물리적인 시간은 누구나 똑같기 때문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이냐를 말하는 거야.

계획을 가지고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근면성실하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확률이 높아지지.

그런데 구체적인 도달점이 없이 그저 막연하게 근면 성실하게 시간을 메우는 사람은 물리적인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과 같아.

근면 성실하게 등교해서 종일 몽상에 젖어 시간을 보내고 근면 성실하게 하교를 한다면 그건 절대 근면도 성실도 아니야.

차라리 그 시간에 본인이 집중할 수 있는 학원을 가는 게 나을 수 있어.


사람에겐 일생동안 공평하게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가성비를 높이냐는 개개인에 따라서 달라져.

주어진 시간이 풍족하다 느끼며 나이를 먹어도 그저 수치에 불과한 날짜만 꼬박꼬박 찍어가며 별생각 없이 산다면 그다지 여유로운 시간이 아닌 거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쓸 거냐.

그건 철저하게 개인의 선택이야.


그러니 딸.

막연하게 뭔가를 채워가는 시간이 네게 값어치가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않는 게 좋을 거야.

아주 막연하게 그저 열심히 등하교를 하고, 열심히 출퇴근을 하면 언젠가 잘 될 거고 인정받으리라는 건 정말 막연하고도 책임감 없는 기대일 뿐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루를 지내. 그렇다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좀 무리야.

안타깝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안정된 삶이란 늘 한정적이고 가는 길이 좁아.

어떤 사람이 회사에 입사해서 한 달에 백만 원을 받는다고 치자.

그러니 백만 원에 맞는 일만 하면 할 바를 다하는 것이라고 자부한다고 쳐.

그 사람은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들고 좀 더 직위가 올랐을 때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대부분 그런 마인드로 회사에 다니면 도태되곤 해.

사업주란 결코 자기 월급값만 하고 마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거든.


네가 어디서든 진정으로 오르고 싶은 자리가 있고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그에 걸맞게 너를 키워나가야 해.

맹목적인 출퇴근이 너의 미래를 보장해주진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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