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떼는 말이야 35

친구가 생겼네

by 능선오름

친구가 생겼네


딸아.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와 상관없이 네가 사귄 반 친구를 만나서 집에 초대해서 함께 놀았지.

축하해.

네가 성장해서 어른이 된 이후로도 그 친구와 계속 연결이 된다면 좋을 테지만 그건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이니 지금 말할 것은 아니겠지.

아빠는 그래도 네가 대견하고,

너와 함께 낯선 집에 와서 잘 놀고 간 친구가 고마워.


딸.

세상을 살아가면서 친구는 참 중요한 존재인 것 같아.

함께 많은 것을 공유하고, 함께 놀고, 함께 슬퍼해 주고,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아.

더구나 네 친구가 초등 3학년 치고, 너도 혼자인데 자기도 형제자매 없이 혼자라서 너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는 깜찍한 말을 하는 걸 듣고는 더 그런 생각이 들었지.

역설적으로 아빠와 돌아가신 엄마의 친구 관계들은 그다지 좋은 모범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아서 그 또한 너에게 미안하구나.


아빠도 초중고 친구들이 있었지.

집에도 잘 놀러도 오고 놀러도 가고.

그런데 그 친구들 지금 다 뭐 하고 있는지 잘 몰라.

일부 알고 있어도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이기도 하고.

굳이 변명을 네게 한다면,

보통의 어릴 적 동창들이 자주 만나고 성인으로서의 우정을 쌓아갈 시기에 아빠는 머나먼 전방부대에만 있었던 것이 이유이기도 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다들 이미 안정적인 직업 생활에 익숙해져 있을 친구들과 달리 아빠는 나이 들어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늘 쫓겨 다니다 보니 어울릴 틈이 늘 적었어.

성인들은 그런 게 있단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직업이 생기고 벌이가 생기고 가정이 생기면 비슷비슷한 무리끼리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공통분모가 없으니 길게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어.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몇 년 만에 만난 초중고 동창 녀석이 뜬금없이 ‘ 몇 평대에 사느냐, 연봉이 어느 정도냐, 골프 치냐’ 이런 질문들로 은근히 내 삶의 등급을 가늠하려 하는 경우를 겪으면 회의가 들지.

사정이 몹시 어려워진 친구가 보여서 다른 패거리들에게 우리가 조금씩 모아서 일부라도 도와주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을 때 모두 정말 남의 일처럼 심드렁한 반응들을 보였을 때는 더 마음이 착잡했었어.

그 패거리들 모두 서로의 부모님도 알고- 물론 어릴 때 이야기지만 – 나름 함께 한 시간들이 꽤 되었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아빠는 어설픈 친구들에 대해 기대하지도 않고 멀어진 것 같아.


그런데 정반대로 네 엄마는 친구 –그게 친구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 들이 꽤 많았었지.

거의 매일 돌아가며 만날 정도로 말이야.

엄마가 하던 미술 작업에 관련된 사람들, 혹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

학교 동료, 그 외에도 우연으로 만난 사람들과도 네 엄마는 아주 쉽게 교류를 했었고 그들과 많은 시간들을 보냈었지.

그런데 그 수많던 사람들이, 작년에 엄마가 느닷없이 사망하고 나니 정말 꿈처럼 모조리 사라진 것을 보고 아빠는 충격을 또 받았었어.


물론 그들도 스스로 괴로움을 다시 곱씹고 싶지 않다거나,

뒤에 남은 아빠와 너에 대해 쉽게 어떤 말을 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은 해.

그러나 일 년이 넘어가도록 너에 대한 염려의 문자조차도 없는 걸 보면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

그토록 엄마와 자주 어울리고 집에도 와서 자기도 하고 여행도 함께했던 그 많던 사람들이, 너를 잘 알고 너도 이모 이모 따르던 그 사람들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모두 일시에 사라졌다는 건 네 엄마의 교유관계에 문제가 있었거나 사람을 택하는 안목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지.


물론 이 세상에는 안 그런 사람들도 많아.

큰 인연도 아닌데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뭐라도 도와주려고 애쓰는 네 천안 고모의 친구들도 그렇고.

아빠가 너보다 앞서 많은 시간을 살아왔다만,

친구와 어떤 관계가 되는 게 좋은지는 거들어줄 말이 없네.


그런데 딸.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아.

친구란 서로가 같은 높이에서 함께 멀리 있는 길을 걸어가는 존재라고 생각해.

둘 중 누군가에 치우쳐지지 않고 나란히 걸어가는.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

친구란 나의 고통을 기꺼이 함께 짊어져 주는 사람이라고.

아빠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해.


딸.

너는 친구들과 그런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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