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때는 말이야 36

선생님이 된다는 것

by 능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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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된다는 것


딸아.

아직 어린 네가 뭔가를 혼란스러워할까 싶어서 티브이를 돌리다 뉴스가 나오면 확 채널을 바꾸곤 하는 요즘이다.

물론 자라면서 장래희망이란 많이 바뀌는 법이지.

네가 장래 어른이 되어 하고 싶다는 직업들.

성우. 상담사. 초등학교교사.

아마도 선생님이었던 네 엄마의 영향이겠지만.

너에게 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냐고 했을 때 밝은 얼굴로 예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도 선생님을 존경하니까 라고 말을 했었지.

아빠는 솔직히 그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었어.

앞으로 시간이 있고, 네가 자라면서 현실적인 시각으로 직업을 바라보게 되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아빠가 보기에 선생님이란 직업은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 또한 유전자의 힘이겠지만, 아빠도 어릴 적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좋아 보이긴 했었지만, 이제는 아니야.

안타깝고, 앞으로는 어쩌면, 정말 어쩌면 달라질 수도 있을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그리 밝은 미래가 보이지는 않아.

많은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자리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입장이니 정말 좋은 마음과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옛날 옛적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제자들을 위한 ‘헌신’을 당연한 거로 생각하곤 해.

그러나 선생님이라는 위치도 사실 직업이고,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그만한 처우를 받지도 못하고 되려 아이들을 앞세워 막무가내로 구는 학부모들이 너무 많아졌거든.

라때는 말이야,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거나 벌을 받았다고 집에 가서 말하는 아이는 없었어.

그래 봐야 네가 잘못했으니까 그랬을 거라고 오히려 부모님께 혼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턱도 없는 소리지.

물론 라때에 비해 학급구성도 달라지고 교육계도 많이 변했고 학생 숫자도 줄어들었고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세상이 된 건 맞아.

게다가 선생님 중에도 간혹 정말 몹쓸 선생님들이 있는 것도 맞아.

그런데 그건 어떤 직업 집단을 가도 다르지 않아.

선의와 엄격한 도덕을 부르짖는 종교들의 지도자들도 그런 예가 있지.

우리가 흔히 어떤 특정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적 기준보다도 높은 기대치를 갖곤 하지.

하지만 그건 그저 ‘기대’야.

우리가 갖는 어떤 직업에 대한, 혹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기대감이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지 인간 본질을 파악해서 만들어진 절대기준이 아니라는 거야.

이걸 인정해야 하고, 그들에게 그들이 일해서 받는 대가 이상의 어떤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야.

아빠 생각은 그래.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선생님의 모습.

그리고 그 이상적인 선생님이 되기 위해 주변의 사회구조와 인식이 적절하다면 아빠는 말리지 않을 거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좀 괴리감이 있지.

네 엄마가 담임을 맡아서 교직에 있던 시절, 너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절인데 당시 네 엄마가 학부모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참 궁금했었어.

별것도 아닌 일로 밤 11시가 넘어서 담임에게 전화하는 학부모.

아침 6시도 되기 전에 전화해서 아이에 대해 상담을 하는 학부모.

심지어 초등학생도 아닌 고등학생 자녀들인데 말이야.

대체 그 사람들에게 담임교사란 무슨 의미이며 어떤 무게감이었는지 말야.


교육의 본질이 뭘까.

아이들이 사회시스템에 잘 적응하고, 어느 정도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가며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과정이라고 아빠는 생각하는데.

그리고 고학년과정이 될수록 ‘세상을 사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적어도 현재에 살고 있는 다수의 학부모는 시스템이나 사회화와 무관하게 세상을 갑과 을로 나눠서 사는 것 같거든.

학교에 대하여는 본인이 갑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어려워.

아빠는 적어도 지금의 사회구조에서는 네가 선생님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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