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때는 말이야 37

BTS

by 능선오름

딸.

올해 들어 부쩍 '방탄'을 좋아하는 너를 보며 크긴 컸구나 싶어.

당연히 요즘 아이들이 아닌, 과거의 아이들? 도 가수들을 좋아하고 그랬지.

상상도 안 되겠지만 할머니가 다된 네 고모도 한때는 한대수. 레이프 개릿 Leif Garrett, 클리프 리처드 Cliff Richard 같은 가수들을 엄청 좋아해서 카세트테이프도 정규발매를 살 형편은 못되니 리어카에서 파는 해적판 테이프를 사서 듣고, 영어가 안되니 한글로 연습장에 가사를 음차 해서 베끼고 그랬어.

이제 환갑 넘은. 나이에도 임영웅 앨범을 구입하고 말이지. 널 돌봐주고 있는 오촌고모도 나이가 들어서도 BTS와 임영웅에 눈을 반짝이는 걸 보면..... 뭐.


아빠에겐 그런 시절이 없었냐고?

글쎄다. 당연히 아빠도 젊은 날이 있었고, 당연히 좋아하는 음악도 있었지.

아빠가 아주 음치는 아니니 말이다.

아빠는 종종 잠자리에서 너에게 말했듯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모두 돌아보아도 흔히 말하는 '모범생'은 될지 몰라도 엇나간 기억은 없구나.

돌이켜보면 그때의 아빠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늘 집에서 밖에 나가 놀지도 않았고,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논다거나 하굣길에 학교 앞에 벌어진 좌판의 간식들 - 떡볶이, 어묵, 소라(다슬기), 번데기, 쭐쭐 이 - 같은 것들에 눈을 돌린 적이 없었었단다.

집에 티브이도 없었으니 가수니 뭐니, 몰랐지.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뒤늦은 사춘기가 왔지만, 그걸 어려운 상황인걸 빤히 아는 집안 내부에 발산할 순 없었지.

제아무리 사춘기라 해도 그 정도 분별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집 밖에서는 초중 시절과 달리 거의 '미친개'에 가까웠다고 회상한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끓어오르는 주체 못 할 호르몬을 발산할 곳이 외부 밖에 없었고 누구와 상의할 여지도 없었으니까.

지금으로 치면 소위 ' 일진'이라 불릴만한 아이들과 어울린 건 아니었으나, 담배 물고 음악다방에 들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그런 부류의 일원이자 때론 주동자 이기도 했었어.

거의 유흥가의 새끼 늑대들이었지.

당시 음악다방에서 대학생 여자 DJ를 불러다 앉히고 희희낙락할 정도로 그랬었다.

되지도 않는 하드락, 헤비메탈 그룹의 곡들을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말이야.

진짜 개판이었지.


그게 뭐 딸에게 자랑할 일도 아니고 오히려 숨기는 게 차라리 나을 과거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이 글을 네가 읽을 시점이면 최소한 성인에 가까워진 나이라고 상정하며 아빠가 글을 쓰는 것이니 이해하라는 뜻이야.

네가 알고 있는, 참을성 많고 일상의 사건사고에 지극히 무덤덤하며 너에겐 가끔 엄하지만 네가 무엇을 해도 모두 받아들여주는 그런 아빠도, 과거 성장기에는 '개판'인 과정을 겪었다는 걸 여과 없이 알려주는 이유다.

때로 사고를 쳐도, 그것으로 집안에 폐를 끼친 적은 없었다.

한 번은 일요일인데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읽다가 - 그때 공부는 손을 놨었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 그때는 무슨 암이건 암에 걸리면 십중팔구 시한부였던 시절이다 - 어차피 대학진학은 물 건너갔다는 게 좋은 이유였지. 그래도 책은 여전히 좋아해서 도서관의 빈약한 장서들을 열심히 읽다가, 이따금 애들하고 도서관 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곤 했었다. 물론 교복을 입은 상태인데 말이지.

그러다가 당직 중이던 교련선생님에게 딱 걸린 거야.

나와 함께 담배를 피우던 녀석은 공교롭게도 담배를 이미 피우고 치운 상태였고, 아빠가 연기를 후 내뿜다가 걸려버린 거지.

심증은 있지만 현장증거가 없어서였을까. 하필 평소에도 '윤대위'라고 별명으로 애들에게 몰래 불리며 몹시도 군대식으로 우리를 괴롭히던 교련선생이라니. 운이 나빴지.

교련선생님은 우리에게 알밤을 먹이고, 반과 번호를 묻더니 수첩에 적고 월요일에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거였지.

자, 이제 큰일이 난 거야.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그게 뭐 그리 큰일이냐 싶지만 그때 아빠의 나이 고작 열일곱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기 바라.

도서관으로 돌아갈 생각도 않고 두 까까머리가 좋지도 않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 고민했어.

그 녀석 사정은 모르지만, 나는 도저히 병에 걸린 아버지와 그로 인해 피폐한 삶을 붙잡고 사력을 다하는 어머니께 차마 그런 일로 학교에 오시라 말씀드릴 양심이 없었어.

생각 끝에, 투덜대는 친구 녀석을 데리고 교련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윤대위'를 찾아갔지.


- 뭐야? 이 새끼들.

- 충성! 선생님. 부모님은 못 모셔오겠습니다. 차라리 빠따를 때려주십셔!


당돌한 내 큰소리에 잠시 윤대위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스쳐 지났어.

그러더니 이내 입을 열었지.


- 그래? 그럼 어디 맞아봐! 엎드려!


우린 둘 다 반사적으로 교련실 바닥에 옆 드렸고, 이내 교련실 한쪽 벽에 늘 기대어있던 야구 방망이 만한 몽둥이가 두 까까머리의 엉덩이 위에서 불을 뿜었지.

친구 녀석은 좀 오버다 싶을 정도로 '아이고' '으악' 소리를 내며 나뒹굴곤 했어.

하지만 나는 윤대위 마음이 바뀔까 싶어서 이를 악물고 버텼지.

몇 대를 맞았을까.

'윤대위' 선생님도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며 일어서! 하고 구령을 붙이고, 우리는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발딱 일어섰지.

친구 녀석은 엉덩이를 부여잡고 인상을 쓰며 신음 소리를 냈고, 아빤 그 와중에도 마치 군인처럼 정면을 바라보며 부동자세로 '차렷' 했지.

우리를 노려보던 윤대위가 입을 열었어.


- 좋아. 오늘 빠따 맞은 것으로 용서해 주지. 다음에 또 걸리면 그땐 국물도 없어!

- 넵!


교련실에서 얼얼해진 엉덩이로 나서는 운동장은 기울어진 해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우리 둘은 약속한 듯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곤 씩 웃었어.

교련실을 나설 때 윤대위 선생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보였거든.


아빠의 그리 자랑스럽지도 않고, 졸렬했던 어린 날 기억을 네게 말해주는 이유는 간단해.

방탄과 빠따는 아무 연관이 없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저 성장의 과정일 뿐이라는 말이야.

물론 그 당시 그 나잇대에 그걸 깨닫지는 못하지.


영원할 것 같았던 클리프 리처드 도, 레드 제플린 도, 딥 퍼플의 하이웨이 스타 도.

모두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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