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화법을 아시나요
딸아 라때는 말이야 38
인터넷 화법을 아시나요
딸. 오랜만에 딸에게 이야기를 나누네.
요새 너는 사춘기도 아니고 중2병도 아니지만 이제 네 친구들이 가장 중요하고, 아빠 생일은 몰라도 BTS 진의 전역일자는 외우고 다니는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 있지.
어제도 산책을 하다가 너의 대화 방식에 대해 아빠가 벌컥 한건 미안하지만, 그래도 너와 나의 나이차이만큼이나 ‘대화’ 혹은 ‘문장’을 만드는 방법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 아빠는 당황스러워.
네가 말했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보면 이래.
- 아빠, 진의(지니로 들림) 슈퍼참치가 말이야
- 슈퍼참치?
- 그래 지니슈퍼참치
- 그게 뭐야? 새로운 참치캔 이름이니?
- 아~ 답답. 지니슈퍼참치를 몰라?
- 모르는데? 그게 뭐야?
- 아 비티에스지니슈퍼참치 말이야!
- 그건 또 뭔데?
- 아~진짜. 비. 티. 에스! 방탄소년단 진 몰라?
-......
- 진의 솔로곡이라고. 그게 가사가 내 맘에 딱 와닿아서....
- 네 대화법은 좀 이상해.
- 내가? 뭐가?
- 네 말에는 주어가 빠져있어. 주어 라면 아빠가 그게 뭔지 알법한 단어를 써야지. 처음부터 비티에스 진의 노래 슈퍼참치라는 노래가 있는데.라고 했었으면 아빤 다 알아들었을 거야.
- 치. 비티에스 멤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 딸. 네가 아는 너의 세상에서는 그렇겠지.
하지만 아빠 생각에는 적어도 지구 인구의 2/3 이상은 BTS를 몰라. 아마도 실제로는 그것보다도 적을 거고.
네 나이에 네가 아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아빠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너와 네 친구들의 대화 방식을 보면 아빠는 좀 걱정이 돼.
네가 친구들을 불러 네 방에서 놀 때 잠깐 간식을 가져다주며 보면, 네 방에서도 너는 친구들과 각자 휴대폰을 켜놓고 서로 그 안의 게임 안에서 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게임을 하더라.
대체 그럴 거면 친구가 집에 와서 함께 논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어.
뭐 아빠가 모르는 게 그것뿐이겠냐만.
그리고 또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놀 때도 그래.
너나 네 친구들이나 각자의 책상에서 슬라임이건 아니면 어떤 장난감이건 혹은 ‘포카’ (연예인 포토카드)를 늘어놓으며 대화라기보다는 각자의 플렉스?를 늘어놓는데 그 방식 또한 너희들이 즐겨보는 유튜브에서 유투버라는 사람들이 자기 물건을 중심으로 보여주며 쉴 새 없이 떠드는 것과 비슷하지.
너희들 또한 서로 대화를 듣지도 않고 각자 할 말만 라이브방송 하듯 떠들고.
인터넷에서 톡과 문자를 주로 사용하는 관계가 실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보다 길고,
실 생활에서도 너희들은 인터넷 문장을 그대로 적용하여 대화를 하니 곁의 사람이 듣기에는 거의 외계어 수준이야. 아빠 시대에 쓰이던 문장들은 너희들에게는 또 다른 외계어가 되고.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문제라는 기사가 나오곤 하는데, 정작 그 문제를 내는 사람들도 아빠와는 시대차이가 있는 탓인지 아빠가 읽어봐도 시험의 지문을 이해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더라만.
뭐 아빠 입장에서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야.
어릴 때 좋아하던 만화 영화에 흠뻑 빠졌을 땐 장래 희망이 로봇 조종사도 아니고 ‘로봇’ 이 되는 거였으니까. 아빠도.
지금 생각하면 참 황당한 상상이지만 앞으로의 미래에 전혀 불가능한 상상은 또 아니게 되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이긴 해.
물론 아빠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 기술이 실현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게 등장한다면 아빠는 앞서서 할 거야.
인간적인 감각과 느낌을 잃고서라도 말이야.
이유는 딱 하나. 딸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독립적인 자유를 가질 때에서야 아빠가 맘 편히 갈 수 있을 테니까.
아빠가 네게 가끔 말을 하지만 검정 고무신에서 시작해서 이태리 명품 신발까지 신어본 사람이야. 물론 한 때 이야기고 깨달음?을 얻은 뒤로는 주로 알리와 쿠팡에서 신발을 사지만 말이야.
그것을 압축해서 한 문장으로 만들어 볼게.
‘ 인간은 과학의 발전을 따라잡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지 못한다 ’야.
어릴 적 동네 전화기를 50원 내고 사용하던 세상에서,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와 대화가 가능한 시대로 바뀌었지.
이런 건 그 시대에는 상상조차 못 하던 먼 미래의 시대야.
하지만 이렇게 바뀌는데 불과 40년도 안 걸렸단다.
사람들이 기계에 빠르게 적응하고, 그 편리함을 누리지.
하지만 그 기계들이 과연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었을까?
그런 최신의 생활편의 기계들을 사들이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하고, 생활편의 기계들은 아직 사용수명이 남았어도 더더더 좋은 기능이랍시고 광고를 내걸어서 팔아. 그리고 사람들은 또 하나의 신문명인 신용카드를 가지고 오래 시간 빚을 갚아가며 물건을 먼저 들여놓고, 그 할부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또 새로운 기계를 사야 하지.
즉 신용카드란 다른 의미에서 현대인 모두가 기업과 은행에 빚을 지워주는 발명품이야.
네가 인터넷에서 만나는 그 모든 유튜버들. 사용기 체험기를 올리며 내 돈 내산을 부르짖는 사람들.
그 모두는 돈을 벌기 위해 온갖 과장된 편집과 지극히 실리적인 목적으로 영상을 올린다는 걸 대부분 알고 있지만 신용카드의 뒷면처럼 알고도 속는 거지.
딸아.
아빠가 뒤늦게 깨달은 깨달음이지만, 너 역시도 네가 직접 겪어보고 스스로 깨달음이 오기 전에는 아마도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살 거야.
현대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말자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정작 나는 원한적 없고 그리 불편하지 않은 일들을 굳이 찾아서 권한다는 건 아빤... 별로야.
AI인지 빅 데이턴 지 뭔지가 온라인 안에서 나의 활동과 과거를 깡그리 뒤져서,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을 주르륵 토해내는 걸 보면 소름이 끼쳐.
아빠는 그래서 뭔가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아예 아빠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 계정을 만들어서 알아보는 편인데도, 그들은 전화번호나 메일 정보들을 깡그리 뒤져서 하나의 계정으로 인식해야 하니 손 들었다.
아빤, 네가 살아가야 할 미래가 참 두려워.
‘개인’은 없어지고 ‘기업’ ‘정부’ 이런 것들이 인간을 뒤에서 조종하고 조정하는 세상.
그게 아빠는 두렵단다.
기계가 모든 생산적인 활동을 대신하고 인간은 그저 평화롭고 노동이 없는 사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