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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04. 2024

딸아 라때는 말이야 39

책을 좋아하니

 39     

책을 좋아하니     


딸아

아빠는 예전 사람이야.

그러다 보니 한창 자랄 때 무심결에 어른들에게 들었거나 혹은 책에서 읽은 것들이 세상의 진리이고 전부라는 착각을 하며 자랐어.

사람들은 타인이 하는 말은 조금 의심하면서 듣는 데 반해서 그 말이 문자화되어 어딘가에 실리면 그 내용이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오해를 하거든.

그래서 아빠도 막연하게 만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희한한 목표를 가졌던 것 같아.

만약 그 시절이 요즘처럼 볼 것이 많아서 넘치는 세상이었다면 아마 아빠도 그렇게 책을 읽진 않았을 거 같네.

아무튼, 아빠는 당시에 내가 읽을 수 있는 건 다 읽었던 거 같아.

부모님께서 넉넉지 않은 형편에 사줄 수 있던 책은 제한적이라,

나이 차이가 있는 누나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나 누나들이 사서 읽던 책들까지 몽땅 다 읽어본 것 같아.

그 내용을 알고 모르고 상관없이 그랬었지.

그래서 초등학교 때 세로 쓰기로 인쇄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데미안’ 이런 책들도 무조건 읽었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한 건 아니었지.

삼국지도 수호지도 그런 식으로 읽었었어.     


조금 자라서 중고등학교 때는 저렴하게 나온 온갖 문고집 책들을 사서 읽고,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의 중고책방들을 꽤 돌아다니며 별의별 책들을 사서 읽었었지.

군대에서도 수많은 시간들을 온갖 책들을 읽으며 지냈어.

그러고 보니 사실 책에 대한 방향성이나 이런 것도 없이 뭐든 다 읽은 셈이야.

당시 불온서적이라고 리스트에 올라와서 부대 내에서 병사들에게 압수되었던 책들은 상황실 내 금고에 보관이 되어 있었는데,

그때 보안 접근 허가가 있는 상태라서 야간에 근무를 서야 하는 날들은 그 책들도 거침없이 모조리 읽었었지.

지금은 우스운 이야기지만 당시에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같은 책들도 불온서적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보니, 그렇게 읽었던 천 권은 됨직한 책들에 대해 조금 회의가 생기더라.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도 아니고,

그 책을 통해 뭔가 진지한 인생의 이정표 같은 걸 배운 것도 아니었던 것 같거든.

그저 재미로 읽고 쉽게 넘어가기만 했었던 것 같아.

물론 책이라는 것이 교과서가 아닌 다음에야 반드시 배움의 장은 아니고,

그냥 읽은 소설책 같은 거라도 거기서 새로운 단어와 문장을 배우고 글의 흐름을 읽는 법, 세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배워진 거니 나쁜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일정한 나이가 되면 (최소 고등학생 정도라면) 그때부터는 나에게 도움이 될법한 책들을 찾아 읽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에 관한 책도 읽을 필요가 있을 것이고,

흔히 인문학책이라 분류되는 책이라던가 사회와 경제, 세상에 관해 알려주는 책들을 찾아서 읽을 필요가 있지.

나이를 먹도록 오직 소설과 같이 흥미를 끄는 책 위주로만 책을 읽는다면 그건 그냥 흥미로운 동영상만 보는 유튜브 활동과 다를 게 없어 보이거든.


창작소설이라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

때로 머리를 식히고 ‘재미’ ‘흥미’ 이런 쪽으로 책을 읽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오직 그쪽으로 몰두한다면 내게 주어진 많은 시간들을 그저 재미로 흘려보내는 것에 불과하니,

여러 가지 인생의 측면에서는 좀 불리한 상황이 되는 것 같아.

우리가 바보상자라고 부르던 티브이에서 매일 뻔한 결과가 반복되는 드라마에 집중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야.     

책은 어떤 책이든 좋은 거다.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

상대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삶에 비할 때는 그렇지.


하지만 분명히 책도 ‘양서’라는 게 있고, 정말 세상에 완전히 불필요한 책도 많다는 게 현재 내 생각이야.

정확하지도 않고 근거도 불분명한 내용의 영상이 난무하는 인터넷 지식처럼,

무작위로 불필요한 정보를 공급받고 그걸 믿으면서 또 다른 헛소문을 퍼뜨리는 시간 낭비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지.

세상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여유시간이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어.

그 여유시간에 운동하건 유튜브를 시청하건 책을 읽건 그건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별로 도움도 안 되고 두뇌의 양식도 되지 않을 읽을거리로 시간을 버리고 마는 것은 인생의 낭비라고 이제 느껴진단다.     


물론 타인들보다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시간에 노력하고 치달려서 어느 정도 인생의 궤도에 안착한 사람에겐 그게 보상일 수 있어.

그동안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그 노력만큼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야 설사 세상에 아무 쓸모없을 타인의 상상에 기대어 머릿속에 휴식을 주는 것이 나쁘진 않지.

그런데 정작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힘을 다해야 할 시간에,

그저 시간 때우기 용 책을 읽으며 희희낙락하면서 가상의 세상에서 노닌다는 것은 피시방에서 며칠 밤을 새워가며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사람과 그리 다르지는 않다는 게 아빠의 생각이야.


시간이 흘러서 타인들이 맨날 티브이나 유튜브 영상이나 보고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던 시간에 나는 책을 읽었다고 자부할만한 그런 게 아니라는 이야기야.

형태만 다를 뿐 너에게 미치는 영향은 별반 다르지 않아.     

책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에 불과해.

그 정보가 너에게 득이 되는지 독이 되는지는 네가 스스로 구분해야 한다는 거지.

단지 물리적 형태의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는 네게 주어진 시간들을 낭비하였다는 결과밖에 안 될 거야.


‘독서’는 현재도 무척이나 중요한 자기 성장의 밑거름인 게 맞아.

하지만 일정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이것저것 잡다한 방면의 책만 읽는다는 것은 그저 환상의 세계에 머문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러니 딸아.

너는 현명한 독서의 길을 찾기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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