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주 오래전에 중구 광희문 근처에 지금은 없어진 고가도로가 있었어.
한양공고 앞에서 퇴계로 쪽으로 넘어가는 도로였는데,
그때 당시에 버스를 타고 명동이나 서울역 쪽으로 가려다 보면 반드시 넘어가는 고가도로였지.
그 고가 초입에 들어서서 고가 밑 건물들을 내려다보면 오른편 고가 아래에 훤히 드러난 단무지 공장 – 당시는 다꾸앙 (沢庵、たくあん) 공장이라 불리던 – 이 보이곤 했어.
공장치곤 문을 닫는 경우도 없이 입구 인지 벽이 트인 것인지 몰라도,
제법 큰 건물의 일층 한쪽 벽면이 늘 열려 있어서 고가에 버스가 올라 잠시 정체 중 일 때는 공장 내부가 훤하게 드러나 보이곤 했지.
공장은 희한하게도 당시의 목욕탕처럼 연하늘색 타일로 뒤덮인 거대한 욕조 같은 것 만 보였어.
짐작건대 가로세로 십 미터가 넘는 폭에 깊이도 거의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규모였으니 정말 거대한 욕조 같은 모양이었고 그곳에는 늘 샛노란 개나리색 단무지가 담겨 있었지.
작업자들이 검정 고무장화를 신고 그 위를 오가며 단무지를 붉은색 ‘대야’에 옮겨 담는 모양이 보였었고, 멀리 고가에 있는 버스 창까지 고약한 단무지 절임 냄새가 풍겨오곤 했어.
단무지의 유래는 우리나라 다 일본이다 말이 많지만 일단, 지금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단무지의 원형은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것이 맞아.
하지만 우리나라의 단무지는 일본 현지에서 전래하는 다꾸앙과는 모양도 맛도 많이 달라.
말하자면 현대 한국의 단무지는 일본식 다꾸앙과는 완전 다른 채소절임이라 볼 수 있다는 거지.
근데 재밌는 것이 다꾸앙 (沢庵 택암)이란 단어에는 무 라던지 절임 같은 뜻이 없잖아.
그런데 왜 다꾸앙이라 부르냐면 일본 전국시대의 임제종 선승인 다꾸앙 스님의 이름에서 유래 된 것이라고 해.
소설 ‘대망’ 이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미야모토 무사시’ 만화 ‘베가본드’ 같은 책에서 이따금 거론되는 유명한 승려지.
그 양반이 전란에 끌려다니며 맨 주먹밥만 먹는 백성들이 불쌍해서 발명했다는 설도 있고,
당시 간사이 지방의 채소 절임을 다꾸앙 스님이 간토 지방으로 전파 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래서 그 공을 높이 산 당시의 쇼군이 ‘다꾸앙’ 이란 이름으로 통용시켰다는 이야기 도.
암튼, 딱히 절임 채소 나 밑반찬이 떨어졌을 때 긴급 투입하기에는 단무지 만한 게 없어.
그런데 시중에서 파는 단무지는 좀 짜기만 하지 맛이 별로잖아.
반면에 중국집이나 만둣집 같은 곳에서 나오는 단무지는 약간 새콤달콤 한 게 맛이 있지.
집에서 그 맛을 내 보려고 단무지에 물을 붓고 식초와 설탕을 듬뿍 넣어 재워 놓으면?
유감스럽게도 절대 그 식당에서 먹곤 하던 단무지 맛이 나지 않아.
그야 당연한 것이, 식당에서 쓰는 방법은 대개 빙초산과 인공감미료를 넣어 재운 것이거든.
강력한 인공 초산과 쓸 정도로 단맛이 강한 아스파탐이 들어간 맛을 천연재료로 어떻게 당해 내?
물론 맛은 강하고, 모든 성분은 그야말로 화학 시간에 등장할 공식으로 만든 것이니 뭐.
단무지를 하루 정도 설탕과 일반 식초에 재워 놓아도 맛이 그냥저냥 그렇다면,
물기를 꼭 짠 후에 식용 식초와 올리고 당과 참기름을 넣어서 오물 쪼물 무쳐주면 맛이 좋아져.
식성에 따라 고춧가루를 넣고 함께 무쳐줘도 좋고.
빙초산, 먹어도 죽지 않아.
인공감미료, 먹어도 죽지 않아.
다만 천연 양조 식초와 천연 설탕은 나름의 사과산, 포도산 같은 영양분이 있고 열량도 있어서 몸에 해독작용을 돕기도 하는데 인공화합물은 그런 게 전혀 없이 단지 맛만 내는 거야.
빙초산의 원료는 석유야. 거기서 원료인 초산을 분리해 내는 거지.
뭐 먹어도 당장 죽진 않는다 해도 단지 맛을 위해 뭔가 화공 약품 같은 걸 먹는 건 좀 그렇잖아?
일단 반찬류가 다 떨어졌어.
빙초산과 아스파탐에 절여 두었던 단무지를 좀 꺼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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