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의 추억
단골로 드나드는 중노인이 한 분 계셨어.
이게 참 묘한 게, 요새는 ‘노인’이라 부르기가 참 뭣한 사람들이 많아.
주민등록상 나이로는 노인으로 분류되는 게 맞긴 할 텐데 겉으로 봐서는 노인이라 부르기가 면구스러운 분들이 많거든.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퇴직연령이 되어 정년퇴직을 한 건데 도무지 일 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나이는 또 아니거든.
그런데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렵다곤 하니 어떤 각도에서는 구세대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경험이 풍부한 나이 든 경력자들을 그렇게 거리로 내모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지.
돈 주고도 못 구할 수많은 경험과 지식들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잖아.
물론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분야는 당연히 최신 지식을 배운 사람들이 효율적이라곤 하지만,
첨단기술만으로 유지되는 게 회사조직은 아니니 말이야.
어쨌든 그 아저씨는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곤 본인의 전문성과는 좀 다른 단순한 일을 하는 직장에 재취업 한 모양이었어.
시대가 만들어낸 씁쓸한 인생살이지. 퇴직금과 연금만으로 살아가기에는 살 날이 길어져서 말이야.
가끔 가게에 들러 소주 한 병에 간단한 안줏거리로 시간을 보내다 가곤 했는데 주변에 손님들도 없던 시간이라 어쩌다 보니 내가 말동무가 된 거야.
- 요즘엔 유명한 스테이크집도 많고 유명하다는 프랑스요릿집도 많은데 난 그런 곳에는 좀 정이 안 가요.
- 왜요? 요즘 젊은이들에겐 그런 곳이 유행이고 인증사진 찍고 그런 게 또 일상이라던데요.
내 판에 박힌 답에 아저씨는 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어.
- 글쎄요. 난 아무래도 구세대니까. 내가 젊은 시절에는 경양식집이 가장 고급스러운 양식집이었죠.
아무래도.
- 그래요? 그런데 경양식 집이라는 게 좀 촌스럽지 않았나요?
위치도 대체로 지하라서 냄새도 쿰쿰하고....
게다가 실내흡연이 되던 시기라 제 기억에는 경양식 집 입구에 들어서면 음식 냄새보다 담배 냄새가 더 강했던 거 같은데요.
내 답을 들은 아저씨는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았어.
그 얼굴에 요즘 유행하는 짤로 ‘개아련’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라 있었지.
- 그래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청춘이었으니까요.
당시에 대학에 입학하면 선배들이나 부모님이 꼭 데려가던 장소이기도 했어요.
중, 고등학교 때 어른의 식당을 경험하는 게 중국집이었다면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하면 당연한 듯 통과의례처럼 가는 곳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돈가스에 양배추 사라다에 뭉근한 오뚜기 수프 같은 게 기본이고,
좀 고급진 걸 택한다면 함박스테이크고 그랬었는데.... 후식으론 인스턴트커피가 나오고 말이죠.
아저씨의 말을 듣다 보니 나도 문득 그 시절의 양식이라기에도 뭐 한 양식이 가끔 생각나던 기억이 났어.
- 그러면 함박스테이크 한 번 만들어드릴까요? 딱 경양식 스타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 아, 그게 가능해요?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일단 먼저 양파를 잘게 썰어서 버터를 녹인 팬에 넣고 갈색이 될 때까지 볶는 거야.
양파가 글레이즈드 될 정도로 볶아서 식히고 식는 사이에 소고기 간 것과 돼지고기 간 것을 반반 섞어서 준비하지. 키친타월에 감싸서 핏물을 빼주는 거야. 안 그러면 약간 누린내가 날 수 있어.
간 고기들과 볶은 양파, 빵가루와 계란을 넣고 치대 주는 거지.
간은 우스터소스를 쓰면 좋지만 없으니 간장과 설탕을 넣고 쉐킷쉐킷.
많이 치댈수록 좋아.
그래야 고기들이 잘 뭉쳐져서 반죽처럼 변하니까.
동그랗게 빚으면 되는데 반드시 가운데를 눌러서 좀 오목하게 만들어줘야 해.
그렇게 해야 나중에 고기가 구워질 때 부풀어 올라서 함박이 평평하게 구워지거든.
센 불이 아니라 중간불에 뚜껑을 닫고 구우면 고루고루 잘 익어.
고기가 익는 동안에 소스를 만들 거야.
소스라야 벌거 없어.
양파 다진 것과 양송이버섯 다진 것을 버터에 볶다가 케첩과 설탕, 간장, 후추를 적당히 뿌려서 익혀주다가 물 반컵 부어주면 끝이야.
그리고 과거 경양식 느낌이 나게 계란프라이를 하나 튀기듯 구워 고기 위에 척 올려주는 거지.
이때 계란 노른자는 덜 익힌 상태로 하는 게 포인트야.
뒤집지 않는 거지. 이걸 외국애들은 써니 사이드업이라고 부른다네.
암튼.... 외국애들은 별거 아닌 것을 있어 보이게 하는 건 재주야.
소스를 만든 팬에 냉장고에 남아있던 주키니 호박과 당근을 달달 볶아서 사이드로 올려줘.
아저씨는 급조된 함박스테이크를 한 입 입에 넣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하니 올렸어.
이게 뭐 대단한 음식도 아니고.
아저씨는 사실 함박스테이크 자체 보다도 자신의 기억 속 청춘을 음미하는 것 같았어.
아마도 첫 미팅의 추억이랄지, 첫 데이트의 설렘 이랄지,
양식이라기도 뭣한 것을 격식을 차린답시고 오른손 나이프 왼손 포크라는 어색한 도구의 조합에 앞에 놓인 흰 면수건을 목에 걸어야 할지 허벅지 위에 아슬아슬 올려야 하는지 버벅 대면서 당황하던 시절의 추억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