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식당 31

LA의 갈비

by 능선오름

LA의 갈비


매일 새벽이면 여기저기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하러 출근하는 모습이 가게 유리창 밖으로 보여.

어스름한 새벽에 연신 하품을 하거나 간밤의 술이 덜 깬 듯 휘청이며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활기찬 도시의 시작 같기도 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아.

어쨌거나 먹고 산다는 게 뭔지,

다들 지금 시간에 도심으로 들어온다는 건 그들이 훨씬 이른 시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고 전철을 타건 버스를 타건 자가용을 운전하건 아무튼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거잖아.

그걸 바라보면 아직은 그리 넉넉한 사회가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

내겐 거꾸로 이제 장사를 접고 퇴근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거지만 말이야.


모르지.

그들이 봤을 때는 나 역시 그렇게 측은하게 보일지도.

가끔 거의 장사를 접을 시간이 되어서야 오는 손님들이 몇 있어.

그중에 꽤 젊은, 젊다기에도 뭣한 어려 보이는 남자 손님이 하나 있었어.

오늘도 거의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그 손님이 들어왔어.

평소에도 그 손님은 딱히 새로운 것을 주문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그날의 정식 정도로 그저 주어진 밥을 먹고 돌아가곤 했는데, 술에 취하거나 그런 게 아닌 지쳐 보이는 표정으로 봐서 근처 어디에서 야근을 주로 하는 직업인 모양이야.

뭐 하는 분이냐고 묻지 않는 건 그건 심야식당의 ‘룰’ 이거든.

상대방 직업을 묻는 것 자체가 그래.

더구나 심야에 식당으로 오는 손님들은 다 제각기 사연이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오늘은 내가 좀 감상적으로 되었는지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그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걸었지.

드문 일이지만 말이야.


- 손님·입맛에 맞으세요?

혹시 특별히 드시고 싶은 반찬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자주 오시니까 준비해 놓을게요.


늘 무뚝뚝이 가깝던 식당 주인의 제안에 조금 당황했나.

그 손님은 어, 예 라며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지.


- 반찬들 다 맛있습니다. 여기오면 집밥을 먹는 기분이 들어서 퇴근 때 가끔 들러요.


의외로 순순히 말을 하는 그 젊은 손님은 뭔가 대화가 궁했는지 술술 이야기를 이어갔어.


- 저 길 건너 편의점에서 야간 파트로 일을 하는데요.

고시원에서 낮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가끔….


- 아 그래요? 편의점 근무하시면 보통 교대시간에 유효기간 지난 도시락이나 김밥 같은 거 공짜로 먹지 않아요?


내 물음에 청년은 약간 미간을 찌푸렸어.

- 그렇긴 하죠. 근데 그거야 정말 때우는 식사고요…….

사실 전자레인지로 돌려서 먹는 밥이 좀 신물이 납니다.

집밥 먹어본 지도 꽤 오래되었고요.

편의점 간편식이 편하긴 한데 먹고 나면 좀…. 간이 센지 짜고요.


하긴.

아무래도 직접 요리한 게 아닌 한번 요리한 음식으로, 그것도 대량으로 대다수의 입맛에 맞춘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면 좀 그렇긴 하지.

더구나 다수의 사람 입맛에 맞춘 음식들은 대체로 짜지.

이상하게 사람들은 짠맛이 강하면 그걸 맛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니까.

그리고 그런 짠맛에 길들다 보면 점점 더 짠 걸 찾게 되고 말이야.


- 아, 그렇기도 하겠네요.

혹시 집에서 먹던 반찬 중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봐요.

내 물음에 청년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음…. LA 갈비요? 라고 말을 하네.

LA 갈비라.

이것 참.

뭐 그리 어려운 요리라고 할 수도 없고, 시중에 양념이 다 되어서 그냥 굽기만 해도 괜찮은 제품들이 제법 많은데 왜 굳이.

한편으로 그렇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어.

대개 밀키트 혹은 마트에서 양념이 되어 나오는 LA갈비란 대체로 좀 짜거든.

요즘엔 어쩌다 보니 맛이 있다는 기준이 ‘짭짤’ ‘매콤’ 이런 게 되어서 온통 맵짠게 맛의 기준이 되어버렸거든.

그래서 심심하거나 적당히 간을 넣으면 사람들이 대체로 ‘맛이 없다’라고 표현을 해.

그리고는 그런 음식들을 먹고 밤새 물을 들이켜곤 하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청년에게 말을 했어.

- 어, 그게 지금 막 만들어서 먹을 순 있지만 일단 그러면 맛이 좀 없고,

게다가 당장 LA갈비가 있지도 않으니 내일 오시면 어때요?

내 말에 청년은 반가운 얼굴을 하며 그러겠다고 했어.

LA갈비라.

일단 LA에서 만들어진 것 같긴 한데 그게 아니라는 말도 있고.

어쨌거나 그 이름의 어원이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LA갈비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제는 보통명사에 가까운 말 아닌가?


일단 근처 정육점에 가서 냉동 LA갈비를 사 오고, 콜라를 페트병으로 사 왔어.

큰 보울에 냉동 갈비를 넣고 콜라를 콸콸 부어서 해동을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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