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야식당

심야식당 32

LA의 갈비

by 능선오름

LA의 갈비


갈비를 해동하는데 왜 콜라를 붓느냐고?

음…. 그냥 찬물로 해동해도 상관은 없어.

일단 해동을 냉장실에서 하는 것도 괜찮지만 냉동했던 고기가 해동되면서 누린내가 날 수도 있고,

보통 LA갈비 같은 종류의 부위는 전체적으로 냉동된 큰 덩어리를 뼈째로 기계톱으로 썰어내기 때문에 뼛가루가 많아.

그래서 물이든 뭐든 많이 씻어줘야 하는데, 게다가 냉동한 부위니까 핏물을 빼주지 않으면 누린내가 심해서 조리가 어려워.

그런데 거기 콜라를 쓰면 콜라 성분 중 ‘인산’이 단백질을 분해해줘서 육질이 부드러워지거든.

설탕도 들어있으니 이 또한 연육 작용에 도움을 주지.


고기가 녹는 동안 갈비를 재울 준비를 하는 거야.

이럴 때는 또 한 번 냉장고 대청소를 하는 거지.

시든 사과, 말라버려 쪼글해진 키위. 요리에 쓰다 만 파인애플 통조림. 아니면 먹다 남은 배.

진물이 나오기 직전의 양파들. 냉동실에서 미라가 되어가는 대파. 생강.

이 모든 걸 다 믹서기에 넣고 진간장과 설탕과 매실액을 몽땅 넣어주는 거야.

그렇게 왕창 돌려버리면 고기를 재울 준비가 끝.

간단하잖아?


좀 더 지나면 버려야 했을 과일과 채소들도 재활용하고,

게다가 그게 또 맛을 잘 살려준단 말이야.

보통 좀 더 정성을 쏟을 때는 이 모든 재료를 면포에 걸러서 순수하게 액체만으로 갈비를 재우면 깔끔하고 좋긴 해.

근데 뭐 대충 섞어 재워서 구워도 대충 맛나더라고.

여기서 팁이 하나 있는데, 콜라 안에서 해동된 갈비는 냉수로 서너 번 더 씻어 줘야 해.

어쨌거나 녹으면서 나온 뼛가루와 피를 씻어내야 하니까.

그러고서 고기의 갈비뼈 부분에 바깥쪽을 살살 긁어내면 근막이 분리되어 나와.

이 근막이 남은 상태로 조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게 꽤 질겨서 식감을 나쁘게 하거든.

손톱으로 벗겨서 주욱 당기면 무슨 테이프처럼 벗겨져 나온다고..

요걸 제거하고 양념에 재워야 아주 부드러운 갈비가 되는 거지.


양념을 보관 통에 붓고 갈비를 척척 쌓아주고, 그렇게 12시간 이상을 재우면 끝.

고기를 해동시킬 보울 한 개.

믹서기. 양념을 넣어 재우는 용기 한 개.

정말 간단하잖아?

무튼 고기를 밀폐 용기에 넣어 냉장고에 넣어 숙성만 하면 그만이야.


다음날 새벽. 어제의 그 청년이 쭈뼛대며 들어왔어.

난 반갑게 맞았지.


- 아, 안녕하세요…. 혹시...어제 말씀드린….


- 아, 물론이죠. LA갈비 재워놨습니다. 하하. 안 그래도 안 오시면 어쩌나 했는데.


청년은 기대에 가득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았어.

이런, 이게 뭐 그럴만한 요리가 아닌데.

나는 미리 냉기를 빼려고 밖에 내놓았던 밀폐 용기를 열고,

프라이팬을 달궜어.

그리고 고기를 올렸지.

치익 소리가 나며 달착지근한 양념 냄새가 가게에 가득 퍼졌어.

다른 걸 먹고 있던 손님들도 뭔가 맛있는 냄새가 번지자 힐끔대며 주방을 기웃거렸어.

갈비가 치익 거리며 표면이 익기 시작하면 불을 좀 낮춰야 해.

냉장되어있던 갈비라 달궈진 팬에 올라가면 팬 온도가 떨어지지만,

고기 표면이 익기 시작하면 그 온도에서는 다 타버릴 수 있거든. 양념 때문에.

그래서 적당히 중간 불로 줄여서 고기 표면을 ‘캐러멜라이징’ 해야 해.


진갈색으로 캐러멜라이징이 되면 이제 고기가 익은 거야.

그러면 다시 불을 높이고 새 고기를 올린 다음에 양념장 조금 끼얹어주고.

요걸 반복하면 되는 거지.

청년은 잘 구워진 LA갈비를 연신 손으로 잡아 뜯어먹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어.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청년은 묻지도 않은 걸 얘기하더군.


- 사실 집에 손님이 오시거나 명절이 되면 어머니가 꼭 LA갈비를 하셨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엄마의 음식인데….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말끝을 흐리던 청년이 고개를 숙였어.

그러더니 갑자기 식탁에 눈물이 툭 떨어지는 거야.


아니 이게 무슨 일 이래 싶어 당황하는데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어.

-올해 초에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이제 어머니가 해주시던 LA갈비를 먹을 일이 없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해주시던 갈비 맛과 같은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

이거 참.

음식은 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슬픈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지.

어려워.

냉장고에 유효기간이 다 되어가는 재료들을 재활용한 게 미안해지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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