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 33
양배추김치
이따금 어릴 적에 먹어본 음식들이 생각나곤 하지.
그리고 그런 음식들은 대개 호화롭거나 거창한 음식들은 아니었어.
음식이라기보다 반찬인 흔한 두부조림이라던가 아니면 무생채 같은 것들이지.
나도 가끔 생각나는 반찬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양배추김치야.
그 시절 배추가격이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제일 흔한 게 배추김치였어.
점심에 도시락을 열면 너나 할 것 없이 김치 냄새가 온 반에 가득했으니까.
그 시절에 양배추가 비쌌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흔하지 않았으니 조금 더 가격이 나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어머니는 가끔 양배추김치를 해주셨거든.
원래도 익은 김치보다는 거의 날 것인 김치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아삭하고 달큼한 양배추김치는 정말 좋아했었어.
마침 냉장고에 보니 곧 맛이 갈 것 같은 양배추가 보여서 양배추김치를 담그려고 해.
양배추는 물에 잘 씻어서 써는데 손가락 굵기 정도로 썰었어.
중요한 것은 양배추의 뿌리에 해당하는 속 알맹이 부분이 워낙 단단하니 그 부분은 따로 도려내는 것이야.
그렇게 양배추를 썰어서 굵은 소금을 녹인 물에 두어 시간 넘게 절이는 거야.
절임의 정도를 확인하는 건 배추나 양배추나 똑같아.
굵은 부분을 구부려봐서 잘 구부려지면 잘 절인 거지.
양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김치 양념을 만드는 거야.
믹서기에 사과와 양파, 마늘, 생강을 넣고 곱게 갈아줘.
매실액을 넣어주면 갈 때 농도도 맞추고 좋지.
그렇게 갈린 내용물에 고춧가루와 소금, 멸치액젓과 설탕, 까나리액젓을 넣어주는 거야.
그리곤 미리 쒀서 식혀둔 밀가루 풀도 함께 섞어주지.
달콤짭조름 매콤한 양념 완성이야.
절인 양배추를 꺼내서 찬물에 두어 번 헹궈주고,
쪽파를 손가락 마디 정도 길이로 썰어서 섞고 양념과 함께 버무려주는 거야.
잘 버무려서 밀폐 용기에 넣어 하루 정도 익혀준 다음 냉장고에 넣으면 되지.
밖에서 하루, 냉장고에서 하루 후숙.
그러고 나면 아주 시원 달콤 매콤한 양배추김치가 완성이야.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김치, 김장 관련해서 이슈가 몇 번 있었지.
한 해는 태풍으로 인해서 고추 농사를 망친 적이 있었어.
당시 우리나라 서민들의 가장 핵심 반찬이 김치였는데 고추가 없이 김장을 하게 생겼으니 큰 문제였지.
그래서 정부에서 어찌어찌 외국산 고추들을 수입한 적이 있었지.
거의 처음 수입하는 거라 뭐가 뭔지도 모르고 무슨 베트남 고추, 파키스탄 고추 하면서 처음 보는 희한한 종류의 말린 고추들이 수입되었지.
그리고 그 여파로 그해의 김장은 집 대부분이 요샛말로 폭망 했었어.
김치는 예전처럼 붉게 물들지 않고 고춧가루가 겉돌았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맵기만 했어.
자연스럽게 익지 않은 상태로 무조건 짜고 매워서 먹을 수도 없는데 익혀지는 게 아니라 상하고 말았지.
그해 겨울,
수입 고춧가루로 김치를 담근 집들은 반찬이 없어서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나.
또 어떤 해는 이른 추위가 덮치는 바람에, 어떤 해에는 장마가 심해서 배추 농사를 망쳐서 배추가 금값되어서 김장을 담그지 못하는 해도 있었지.
그때부터 정부에서 배추를 비축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 같아.
아마도 세상에 배추를 정부 비축물자로 하는 나라가 있을까.
우리나라처럼 김치에 진심인 나라 말곤 아마도 없지 않을까.
그때 티브이에 나온 귀화 외국인이 하는 말이 참 재미있었어.
대충 내용이 이래.
자신은 한국 사람들이 금값이 되어버린 배추로 굳이 김치를 담그는 것을 이해 못 하겠다.
배춧값이 올랐으면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면 되는 거 아닌가.
비싼데도 굳이 배추로 김치를 담그니까 더 비싸지는 거 아닌가.
그 말을 듣고서 든 생각은,
그 외국인은 귀화는 했지만, 진정으로 한국인을 이해하지는 못하는구나 싶었어.
어떤 국민의 입맛을 바꾼다는 것은 그 국민이 수천 년 써온 언어를 바꾸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야.
인간은 본질적으로 생존 욕구를 위해서 뭔가를 먹는 게 맞아.
맛이 없고 입맛에는 안 맞더라도 살기 위해서는 뭐든 먹게끔 프로그램되어있지.
하지만 이미 어린 시절부터 길든 입맛을 잊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어떻든 간 과거의 입맛을 찾으려고 애쓰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지.
그런데도 내가 가끔 양배추김치를 해서 먹는 이유,
배춧값이 너무 비싸서도 아니고 뭔가 다른 방향성을 지향하는 선구자여서도 아니야.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양배추김치를 먹고 자랐기 때문이지.
이유는 단순해.
그 맛이 좋았고 지금도 기억이 나서 그럴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