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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21. 2023

무간도

2

무간도 2     


아비초열지옥 이란 아비지옥(阿鼻地獄), 혹은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도 불리며, 

형벌은 옥졸이 가죽을 벗기고 쇠꼬챙이로 산적을 만든 뒤 이걸 불 수레에 싣고가서 

활활 타는 불구덩이에 던져넣고 또한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든지 

쇠매(鐵凝)가 죄인의 눈을 파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을 괴로움 받는 일을 

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는 (무간) 지옥이라는 뜻이다.     


사내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눈을 떴다.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프고 온몸의 기운이 다 주저앉은 상태였다.

게다가 콧구멍 깊숙이 스멀거리는 비린내들.

정신이 혼탁하였지만 이런 불쾌감을 뛰어넘는 고통은 일찍이 처음 이었다.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떤 상태인지는 몰랐다.

그저 가쁘게 쉬어지는 숨이 죽은 게 아니란 사실을 극명하게 일깨운다..

사내의 헝클어진 의식 사이사이로 어렴풋한 기억이 돌아왔다.


뻘밭을 걸었다.

첫걸음부터 개펄 흙은 진득하게 사내의 구두를 물어뜯었다.

몇 걸음 사이 사내의 신발과 양말은 고스란히 뻘밭 어딘가에 삼켜졌다.

개의치 않았다.

지독한 냉기가 사내의 맨발과 종아리를 스멀거리며 타올랐지만 참았다.

아니 참지 않을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반쯤 넘어지며 기어가며 트렌치코트 자락으로 질질 뻘밭을 지나 간신히 파묻힌 닻에 육신을 기대었을 때 사내는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잠시 숨을 돌린 사내는 허리띠를 풀어 거대한 닻의 어딘가에 자신의 허리를 묶었다.

그리곤 차디찬 갯바닥에 주저앉았다.

밀물이 몰려오는 속도는 제법 빨랐다.


사내가 머릿속으로 주저주저하는 사이 물은 사내의 목울대까지 차올랐다.

차가운 물에 감각을 잃어가는 사지는 본능적으로 버둥댔지만 스스로 옥죈 허리띠는 물을 먹어 더 단단하게 사내의 허리춤을 붙들었다.

그렇게 버둥거리며 입까지 차오른 바닷물을 보자 공포가 와락 밀려왔다.

그러나 입을 열 수 없었다. 물이 쏟아져 들어 올 테니까.

홉뜬 눈으로 어떻게든 몸을 올려 보려 했으나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더는 숨을 참기 어려워지자 자신도 모르게 사내는 입을 열었다.

순식간이었다.

바다 전체가 입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산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엄청난 물소리 끝에 아우성을 친 것 같았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짧아도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리곤 정신을 잃은 것이다.

끝.



다시 정신이 돌아온 것을 보니 죽지 않은 모양이다.

사내는 간간이 끊기고 연결되는 의식들 속에서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사람의 눈꺼풀이 이리도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두웠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몹시 추웠다.

와들와들 떨리는 몸뚱이는 사내의 의지와 무관했다.

그러나 뭔가 따스한 무엇에 몸이 감싸져 있었다.

의식이 돌아올 때 느낀 지독한 냄새들이 여전히 느껴졌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 사내는 그것이 자신의 속으로부터 치미는 냄새 외에도 더 있다는 걸 알았다.

몸은 천근 같아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둠 속 희미한 불빛 아래로 무언가가 희끗희끗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 어둠의 공간은 어딘지 몰라도 몹시 남루했다.

드문드문 작은 불빛들이 보였지만 그건 먼 풍경 같았다.

그리고 파도 소리와 비린내가 진동했다.

차가운 바람이 드문드문 사내의 꺼칠한 표피를 훑어댄다..

입을 열고 싶었으나 목이 아팠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다.

슬퍼서도 뭣도 아닌 생리작용이다.


사내의 감각들이 서서히 팔다리로 돌아오면서, 자신이 벌거벗은 상태라는 걸 알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사내를 구하고 뭔가 조치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던 불빛이 점점 사내 쪽으로 다가왔다.     

사내는 어쩌면 이것이 바로 사후세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빛이 자신을 다른 곳으로 인도할 그 무엇이 아닐까 하고.

그러나 곧 그렇기엔 너무 생생한 비린내와 파도 소리가 이곳이 자신이 들어간 포구 근처 어디라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그게 더 현실적이니까.


반딧불 수준의 희미한 불빛이 가까이 다가오고 그 뒤 어둠에 뭔가 웅크린 검은 덩어리가 느껴졌다.

그 덩어리가 다가오자 뭔가 썩은 듯한, 엄청난 비린내가 훅하니 느껴진다.

제 기능을 다 찾지 못한 사내의 후각으로도 당장 구역질이 당길 만큼 강렬한 악취.

그리고 그 시커먼 윤곽 어딘가에 한 쌍의 번쩍이는 눈이 보인다.

짐승?

생각이 든 순간 사내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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