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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Dec 03. 2022

울트라 매니아 21

바쁜 하루

울트라매니아 21

  

스미스 요원 같은 복장의 사내들은 우부장을 말없이 둘러쌌다.

분명 몹시 놀란 표정이 분명한데도 절제된 동작과 매끄러운 포위, 

이런 것 들은 그들이 오랜 시간 온갖 경우에 대하여 훈련되어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불사의 몸 이긴 하지만 그 외에 아무런 물리력이 없는 우부장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멀거니,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무지막지했던 테스트로 인하여 늘 거의 헐벗고 지내기는 했지만, 

정장 차림의 훤칠한 사내들 사이에서 불룩 나온 배를 드러내고 멀거니 발가벗고 서 있는 것 은 여전히 불편했다.

대부분의 정보기관에서의 심문 방식, 

오래전 불법적 수사방식에 있어서 늘 피의자를 발가벗겨 놓고 심문을 시작하는 것 은 무의미한 관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수치심을 자극하여 항거할 수 있는 정신세계부터 무너뜨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으니까.


우부장은 엉거주춤 그들 사이에 서서, 

용광로로부터 탈출 한 흔적들이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던 것 들을 무심코 떼어내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음모, 발가락 사이 같은 곳에 엉겨 붙었다가 식어가고 있는 쇳물 방울 들.

그가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는 것 들은 요란한 쇠붙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직 온도가 덜 식은 쇳물 방울들이 푸시식 소리를 내며 식어가고 있었고, 

말없이 그 행동들을 지켜보던 사내들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장되는 것을 우부장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배불뚝이 중년의 사내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용광로에서 기어 나와 떨어지고,

그리곤 멀쩡하게 걸어 나와서 아직도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쇠 물들을 무슨 진흙이라도 묻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으로 손바닥으로 툭툭 떼어낸다.

온갖 훈련과 수많은 상황들을 겪어봤을 사내들로서도 처음 보는 기이한 현장이었다.

그동안의 훈련이 만만치 않아서 그들은 최대한의 무표정으로 묵묵히 서있었지만,

그들의 눈에 우 부장은 절대 '인간'같은 게 아니었다.

묵묵히 부동자세로 서있는 사내들의 눈동자에 언뜻 공포감이 어리는걸 우 부장은 보았다.

우부장은 슬슬 오기 같은 게 치밀어 올랐다.


“ 자, 이제 뭘 또 할 겁니까? 다 지겨우니, 뭘 하려거든 빨리 하시지요.”     


그들 중 제일선임으로 보이는 사내, 임묘한이 입을 열었다.


“ 아,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우 부장님. 

회사에서 테스트 한 자료 이미 확인 은 했었지만, 그래도 한 번은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요. 

뭐 더 이상은 필요 없겠네요. 이 이상 뭐가 더 있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


전혀 죄송해 보이지 않은 얼굴과 말투로 깍듯하게 고개까지 숙이는 임묘한을 보자, 

우부장은 더 성질이 슬슬 끓어올랐다. 

그래서 였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말투가 삐딱하게 나 온 것은.

“ 아니, 뭐 그렇다면 만에 하나, 그들이 좀 쇼를 한 거라면 어쩔 뻔했습니까? 

제가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당신들이 뭔지는 모르지만 막 그렇게 사람 죽여도 되나요?”


우부장이 높은 음성으로 항의를 하자, 임묘한의 눈동자가 가늘게 좁혀졌다.

그 인상이 마치, 악어의 눈처럼 보여서 우부장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 뭐,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사람 명쯤 죽인다고 별로 신경 쓸 사람들은 아니기도 하고, 

중요한 건 당신이 이렇게 멀쩡하다는 사실 이죠.”     


사내들은 우부장에게 뭔가 걸칠 것을 권유하지도 않고 말없이 세단으로 우부장을 밀었다.

차량 내부는 처음 우부장이 타고 와서 고철이 되었다가 용광로로 들어간 것과 똑같았다.

그리고 운전석에는 기이한 이, 조수석 에는 임묘한 이 똑같은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다만 이번 차는 선팅이 아니라 스틸 블라인드가 올라와서 뒷좌석에 탄 우부장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게다가 앞 좌석과의 사이에 있는 유리 칸막이도 검정 유리라서 완전한 밀실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유리 칸막이에 조그만 디스플레이가 붙어 있었고, 

그 화면에서는 비행기나 타면 나옴직한 ‘미스터 빈’ 아니면 ‘퍼니 티브이’ 같은 영상이 쉬지 않고 반복되고 있었다.

벌거벗은 채 시트에 앉아있는 우부장은 이렇게 원치 않는 영상을 보아가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문득, 아침부터 종일 하루가 길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출근길에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그를 배웅하던 가족들이 문득 떠올랐다.

이전에 만년 과장 일 때 그를 배웅하는 건 집에서 키우는 잡종개 한 마리뿐이었는데.

연봉이 느닷없이 오르고 직위가 올라 간 그에게 가족들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살가움을 표현하곤 했다.

단체로 현관에 나와서 배웅을 하고, 저녁에 들어가면 앞 다투어 달려 나와 인사를 하곤 했다.

물론 그 뒤에는 늘 갖고 싶은 물건이나, 하고 싶은 일 들이 뒤따라 언급되곤 하였었지만.

그래도 우부장은 그렇게라도 가족들이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된 현실이 나쁘지 않다 생각해왔다.

한참 여를 세단이 빠르게 나아가는 걸 느끼면서, 

우부장은 갑자기 속물처럼 느껴져 때로 얄밉기도 하던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우부장의 상념을 깨는 소리가 차 천장의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아마도 기이한의 목소리 같았다.


" 부장님? 우리가 갈 장소가 꽤 멉니다. 

그래서 말인데, 비행기를 타고 갈까 해요.

뭐 아시다시피 우리나라가 그리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굳이 빠른 교통수단을 두고 오래 차를 탈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곳에 우리 회사의 '현장' 이 있거든요.

부장님은 그곳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되실 거고. "


오리엔테이션이라는 단어에 우 부장은 순간 피식 실 웃음이 나왔다.

저들이 하는 말투.

하는 방식.

누가 봐도 '군바리' 물을 오래 먹은 티가 팍팍 나는데 굳이 '회사' 라니.

그토록 회사인 척을 하는 건지 좀 심술궂은 생각이 들었다.


" 그거 내가 싫으면 그냥 자동차로 가도 되나요? 

선택권을 주시는 겁니까? "


잠시 스피커에 침묵이 흐르더니 이번에 임묘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 물론 아니죠. 단지 매뉴얼상 기 대리가 그리 말씀드린 겁니다. 

선택권 같은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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