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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Dec 02. 2022

청음초 22

결말

22.     

독자층도 뜸한 싸구려 주간지에 사내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실린 것은, 

기자가 형사 친구를 만나고 며칠이 지난 뒤였다.     

"ㅇㅇ 빌라의 금지된 사랑"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ㅇ ㅇ 빌라에서 의문의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를 자살사건으로 보고 있으나 사건의 정황상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보인다. 

같은 층에 나란히 붙은 두 개의 집에서 하루 차이로 자살이 일어났다. 

먼저 죽은 건 게이였고 나중에 죽은 건 보통 남자였다. 

기사에서는 이 ‘게이’를 ‘여자’라고 칭하겠다.

여자는 이태원 게이클럽의 쇼걸이었으며 남자는 신용불량자로, 

경제력이 몹시 쪼들리는 형편으로 보였다. 

두 사람은 하루 차이로 목을 매달았으며 의문의 유서 비슷한 것을 남겼다. 

여자는  ' 사내놈 들은 다 똑같아'라고 했고, 

남자는 '청음초 임무 실패'라는 희한한 유서를 남긴 것이다. 

이런 여러 정황들을 근거로 기자는 사건이 벌어진 정황들을 유추해보았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사귀는 연인관계였으며, 

남자가 여자의 기둥서방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로 남자는 고가의 도청장치를 설치하여 여자의 동태를 도청하고 있었다. 

남자의 방은 완벽한 방음시설이 되어 도청에 필요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남자의 방엔 일체 가재도구가 없었고 먹을 것도 전혀 없는 걸로 봐서, 

주로 여자 방에서 함께 살면서 여자가 손님을 받는 날에는, 

남자는 자기 방에서 정사하는 소리를 듣는 변태적인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주로 여자에게 의지하고 살던 둘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났고, 

남자가 어떤 방법으로 여자가 목매는 걸 방조, 또는 조장했다고 보인다. 

그 증거로 소리를 안 들리게 하려고 방에 음악을 틀어놓았으며 현관문도 열려 있었다. 

여자의 유서로 보이는 건 그냥 평소에 써놓은 글로 보인다. 

남자는 하루 뒤에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는 걸 두려워해서 자살을 하였고, 

사건의 본질을 혼동을 주기 위해 엉뚱한 유서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엽기적인 사건의 뒤에는 변태적인, 이 시대의 터부시 되던 사랑이 숨겨져 있었다.     


싸구려지만 양주씩이나 먹인 공들인 기사에 대해 편집장은 딱 한 마디 논평을 했다.

" 특이하긴 한데, 뭐 식상하네. "

몇 안될 독자들 또한 잠시 안줏거리 삼아 기사를 입에 올렸고, 

이내 그 기사는 다양한 다른 사건들에 파묻혀 온라인 뉴스에서 조차 사라졌다.


빌라 303호와 302호 주인이 서로 얼굴을 보게 된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온 두 노인은 어색한 표정으로 경찰서 앞 흡연 장소에 나란히 서서, 

약속한 듯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날이 점점 따듯해져 가는 봄날이었다. 

노인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 아. 이거 집값 떨어지겠네요. 어쩐대……. 진짜 재수 없으려니까 정말"  


또 다른 노인이 맞장구를 쳤다. 


" 그러게 말여요. 아, 참 집세 놔먹기 힘들어서. 

어디서 변태 새끼들이 처죽으려면 나가서 뒈지든지. 뭔 남 피곤하게 하고 그랴. 

둬 달치 월세는 공쳤구먼. 근데 그 짝집은 아예 연고가 없대요?" 


" 글쎄요. 게인지 뭔지. 그래서 그런지 아무 연고가 없다나봐여?" 


사내 방의 집주인은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 좋것네요. 그래두 거긴 보증금 남은 건 남겨먹어두 되니까. 

난 그 변태자식이 어디서 누이라고 나타나서 방 보증금 빼 달라고 온 나리를 얼마나 치든지. 원. 

동생 새끼 죽은 건 신경도 안 쓰고 돈만 챙기드라니까. 니미럴."  


갈 곳이 어딘지도 모를 악담을 퍼부으며 두 집주인은 나란히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값은 보증금이 고스란히 남은 303호 주인이 내기로 했다.     


시외버스 속에서 머리를  자글자글 볶아 낸 중년 여자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앉은 머리가 거의 벗어진 사내가 여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근데, 그 동생이 언제부터 동성연애자였데?" 


여자가 눈을 흘기며 남자에게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그놈 연락 끊고 산 게 몇 년인데. 

여직 그러고 신불자로 살더니 미친놈이 어디서. 어휴 정말 창피해서." 


여자는 벌게진 눈시울을 훔치며 휴지를 꺼내어 팽 소리를 내며 코를 풀었다.

대머리 사내는 조심스럽게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물었다. 


" 근데 동생이 남긴 월세 보증금은 어째, 남편은 알고 있는 거여? “ 


여자가 다시 눈을 홉뜨며 대머리 사내를 흘겼다.


“ 그 화상이 어떻게 알아. 얘기하면 홀랑 고스톱 판에 다 쓸어 넣을게 뻔한데.”


대머리 사내가 슬그머니 여자 가슴을 주무르며 느끼한 어투로 말했다.


“ 그럼 우리, 그 돈으로 동남아 여행 이라두 다녀오는 거 어때?”

“ 아이참. 버스 안에서……. 뭐래.” 하며 여자는 사내의 손등을 꼬집었지만 싫지만은 않은 듯 벌게졌던 눈가가 손톱 달처럼 이지러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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