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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15. 2024

딸아 라때는 말이야 42

너의 계급

42 

너의 계급

     

딸아.

네가 가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다고 말할 때가 있지.

왜냐고 물으면 너는 우리나라는 ‘ 그래도 전쟁을 하고 있지도 않고, 먹고사는 것도 괜찮고, 너무 덥거나 너무 춥지도 않고’라고 말을 하지.

아마도 네가 티브이를 통해서 본 어렵고 힘든 나라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방송 사이에 나타나곤 하는 세이브 더칠드런 같은 어려운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자는 광고 방송을 유심히 바라본 결과가 아닐까 하네.

물론 아빠 역시도 어릴 적 경험에 비교한다면 그래도 세상이 뒤집혔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바뀌고 발전했다는 생각은 해.     

그런데, 아빠가 현재에 흡족하며 안심하는 네게 가슴이 뜨끔 하는 경우들이 많아.

네가 자랄수록 너는 우리나라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사회가 존재하는 한 아마도 바뀌기 힘들 구조적인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우린 어릴 적부터 너무 막연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은연중에 교육을 받지.

뭐 저렇게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더라도 대부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설명할 때 결론적으로 나오게 되는 이야기야.

이를테면 네가 현재 어떤 상황에서 살고 있건 네 노력 여하에 따라 앞으로 성인이 되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나 경제력이 달라진다고 요약할 수 있는 말이지.     

그게 대충은 맞는 이야기 기는 한데, 실은 각자의 출발선이 아주 다르다는 명제는 쏙 빼놓은 이야기이기도 해.

소위 강남·서초구 등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의 학생들이 국내 최고대학이라는 sky 대학 진학률이 제일 높다는 것은 이젠 소문도 아닌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야.

어릴 적부터 치밀한 사교육 커리큘럼을 짜서 교육받고,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방학이면 해외 캠프를 가고, 모자란 과목은 높은 비용의 전문 교사를 통해 지도받고, 당연히 좋은 조건에서 시작하니 결과가 더 잘 나올 확률이 높지.

오죽하면 SKY Castle 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다 나왔을까.

물론 그 드라마를 정작 Castle에 나오는 대상들은 안 봤을 테지만.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지.

열심히 해서 sky 대학을 간다고 해도 거기에서도 소득 수준에 따라 대학을 다니는 과정이 달라지는 게 현실이야.

배우고 싶거나 유학하고 싶거나 방학 중에도 해외 어학연수 같은 프로그램을 서슴없이 선택하고,

해외에 가서도 거기서 만난 외국 친구들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도 가고 경험도 쌓고 우정도 쌓는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거지.

즉 경제적 “급‘에 따라 경험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야.     

누구는 해외에서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어학도 연수하며 지내는 동안 누군가는 무더운 주방에서 치킨을 튀기던가 빗속을 뚫고 라이더를 해야 하니까.

결코 '공평' 과는 아주 거리가 멀지.

세상은 고대부터 피라미드 구조이고, 현대도 별로 다르지 않아.

정치가 바뀌고 인권이 어쩌고 해도 실제의 구조는 바뀌기가 불가능해.

왜냐하면, 어디든 제한된 땅과 한정된 자원과 생산물이 있고 그 한정된 소득을 누가 더 차지하느냐의 문제잖아. 이데올로기 혹은 종교 어쩌고 해도 결국은 누가 많이 차지하느냐, 갑 과 을의 관계가 누구냐가 본질이지.

서구권 회사들이 한국의 거래처에게 늘 동반자, 친구라고 표현해. 

하지만 실제 그들이 요구하는 사항이나 내용을 보면 정작 유럽연합권 내의 기업에 요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이미 경제적인 식민지 감독관에게 지시하듯 한단다.

씁쓸한데 현실이 그래.

K POP STAR 몇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아.


이런 구조적인 구조는 우리나라뿐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하고,

사회계층의 사다리가 대물림되는 순환은 다르지 않아.

그게 아니라면 소위 선진국이라는 곳에 값비싸며 규율도 엄격한 사립학교들이 존재하지 않겠지.

이걸 깨닫게 되면 굉장히 허무하기도 하고,

열심히 죽도록 노력해도 계층 간 사다리를 한 칸 올라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체감하면서 맥이 풀릴 거야.

그게 뭐라고, 하며 용기 있게 이겨내려고 한다면 좋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지.


아빠 역시 좀 더 젊을 때, 터무니없이 용기만 가득한 시절에는 그런 만용? 도 앞세워 뭔가 이뤄보려고 애를 썼었지만,

이미 다 가진 자들에게는 얼마나 가소로워 보였을지를 뒤늦게 깨달았었어.

어쩌겠냐.

태어나는 건 내 마음이 아니잖아.

이미 태어나고 보니 내가 속한 사회적 계층이 어느 정도에 있더라,라는 건 우리들의 의지와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물론 그중에 아주 극소수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과 끈기를 통해 사회계층의 사다리를 후다닥 올라간 사람들도 있긴 해.

하지만 그건 정말 ’ 극소수’라는 거지.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드문 확률을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힘겹게 사력을 다해 층간 사다리를 올랐다고 해도,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흘깃 쳐다볼 뿐 그들만의 '리그'에 끼워주지 않아.

그래서 아빠는 네게 늘 미안한 거야.

더 좋은 환경과 더 좋은 상황들로 네가 정말 노력만 하면 하고 싶은 것, 도달하고 싶은 곳에 보낼 수 있는 조건들을 아빠가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하지만 이마저도 아빠가 그간 살아오며 쌓아온 미미한 조건임은 알아주기 바란다.


아빠의 조건은 사실 더더욱 나빴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게 핑곗거리가 될 수 없음은 알아.     

어쨌든 원하지 않았던 조건에 아빠도 태어나서 살았고,

너 또한 아빠의 그리 좋지 않던 조건보다 크게 나을 게 없는 조건을 물려받았으니 이 또한 선택의 여지없는 ’ 운‘이었다는 걸 아빠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 운‘ 안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얻는 길은 사실 좁고 험난하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


결국, 모자란 조건 안에서 뭔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려면 좋은 조건에서 너와 같은 길을 바라는 사람들에 비해서 너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너와 비교할 수 없고,

너는 너대로 어떤 것이든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바라.

안 그러면 세상을 살면서 회의감과 함께 일찌감치 체념하는 것들이 많이 생길 거니까.

아빠는 네가 정말 도리없이 체념할 것들,

이를테면 타고난 조건에 대하여는 일찌감치 체념하고 그것들에 연연하는 마음은 버리고 네가 원하는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단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친 운명론자가 될 수밖에 없고,

지나친 운명론은 네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라는 것을 아니까.   

  

너는 네가 생각하는 너의 사회적 계층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찾기를 바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은 아빠도 잘 몰라.

정말 막연하게 네가 가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무력한 응원밖에 할 수 없구나.

그런데도 아빠가 이런 무력하고 맥 빠지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야.

내가 현재 어떤 계층, 어떤 조건에 있는지를 먼저 명확히 인식해야 그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지.


아빤, 네가 아빠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일 거로 생각하고 네가 아빠보다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어.

믿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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