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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14. 2024

딸아 라때는 말이야 41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거야

41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거야     


딸아.     


아빠는 오늘 좀 무거운 이야기를 할까 해.

무겁다곤 하지만, 사실은 무거운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어.

나이가 든다는 건,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노인들을 무심코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연로하신 어머니를 자주 떠올리게 되는 그런 것 같아.

아빠가 그리 효자는 못되어도 어머니만큼은 어떻든 좀 잘 돌봐드리고 싶었고,

일생을 힘겹게 살아오신 어머니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었는데 그게 마음대로는 안되더구나.


어머니 육신에 힘이 있어서 여기저기 다니실 수 있을 때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이라도 갈만한 여유가 아빠에게 없었고,

정작 어느 정도 그런 정도의 여유는 생겼을 때는 어머니 운신이 힘들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구나.

돌이켜보면 경제적인 자유는 여전히 없는데 그때는 그게 최악이라고 생각했었으니,

사실은 마음을 어찌 먹느냐에 달린 것이었을 텐데.     


아빠는 조만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것을 작성하려고 해.

아빠가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을 때 억지로 산소호흡기 같은 장비에 의존해서 생명을 이어나가는 행위를 않겠다는 선택이야.

엄마를 불의에 잃고 나중에라도 네게 유일한 부모인 아빠가 어떻게든 살아나려고 애를 써야지 무책임하게 너를 두고 생명을 이어갈 의지조차 없다는 그런 뜻은 아니야.

그게 언제가 될지 아빠는 알 수 없지.

하지만 아빠는 아무 표현도 할 수 없는 상태 혹은 아무런 의식도 없는 상태가 되어서 네게 무한정의 책임만 둘 순 없다고 생각한단다.

아빠가 너에게 더 도움이 되진 못할망정,

너의 소중한 시간들을 기약도 없고 이미 끝은 어떨지가 빤히 보이는 연명치료에 매달리게 할 수는 없어.

만약 아빠가 의식은 있지만, 아무것도 표현할 수도 없는 상태라면,

그런 상태는 아빠에게 있어서 더 과장할 거 없는 생지옥 일 거야.


그래서 아빠가 이성이 있고 미래에 대해 대비할 수 있는 지금 미리 대비해놓으려고 한단다.     

이건 너로서는 남는 자식의 마음을 무시한 이기적인 처사라고 할지도 몰라.

그렇지만 아빠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순서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오는 공평한 것이야.

그런 길을 가는 건 자명한데, 가는 방법이 제각기 다를 뿐이지.


이미 노쇠하거나 병이 깊어서 도저히 현대의학으로는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기계의 힘에 의지해서 억지로 생명만 살려놓는다는 건 비극이야.

당사자도 남는 사람에게도 비극이지.

그러니 죽을 때는 존엄을 지키며 갈 수 있는 선택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아빠의 생각에는 연명치료 거부이고.


이 세상의 수십억 인구 중 많은 사람이 매일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

그렇게 인류의 삶은 이어져 내려온 거야.

그런 상황에 온갖 돈과 시간과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갉아대며 그저 껍질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아빠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야.     

그러니 언젠가 그런 날이 오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아빠가 간절히 바라는 건,

네가 성인으로 올바로 자라서 너의 행복을 찾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지.

그리고 그걸 건강한 상태로 내가 바라보다가 조용히 잠들 듯 죽는 것.

그게 아빠에겐 현재 가장 바라는 소원이야.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절대 바람대로 가지 않는다는 걸 알지.

너도 알고 아빠도 알아.

그러하니 아빠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 바란다….     

아빠와 함께한 좋은 기억들만 생각해.

네가 있어서 아빠도 행복했으니, 그걸로 만족한단다.


언젠가.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네가 성인이 되어 아빠가 남긴 이 글들을 읽을 수 있다면 이해해 주기 바라.

아빠는 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인생의 계획을 세워나갔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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