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emento Mori

Memento Mori 1

그녀의 사정

by 능선오름

Memento Mori


이기자!


왜 하필이면 아버지께서 자신의 이름을 ‘기자’라고 지었는지 이기자 당사자는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왜 아버지에게 내 이름을 하필 ‘기자’라고 지었는지에 대해 따져 묻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곤 해서,

이따금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고 초등학교에서 돌아온 날이면 아버지에게 씩씩대며 시비를 걸려다가도 멈칫하곤 이내 돌아서고 마는 것이다.

애꿎은 어머니에게 물어봐야 일자무식인 어머니는 ‘그게 왜?’라는 대답이 돌아올 게 빤하고, 거기에 더불어 그럴 정신이 있으면 동생 똥 기저귀나 빨라는 일감이 더불어 돌아올 것이 너무도 빤해서 기자 씨는 억울한 마음을 홀로 삭이곤 했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7남매 중에 여섯째로 기자 씨가 또 딸로 태어나자, 아버지는 아이를 엎어서 죽이자는 식으로 성질을 부려서 어머니는 출산의 후유증이 심각했음에도 그저 아기에게 혹여라도 술에 취한 아버지가 무슨 사달이라도 일으킬까 봐 잠 한숨 못 주무시고 오롯이 밤을 지새우곤 했다고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출생 신고를 제때 해야 했지만, 아버지가 그깟 딸이라고 하며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태어나 일 년이 지나고서야 까막눈 어머니가 고등학생이던 외삼촌을 대동하고 몰래 면사무소에 가서 출생 신고를 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일 년이라는 인생을 무적자로 살았던 이기자 씨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당 대의 대부분 사람이 그렇게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당당하게 두 번째 마누라를 얻어 정말 당당하게 막내아들을 낳았고,

또 너무나 당당하게 호적에 아들 이름을 올렸으니 그 배다른 막내의 이름은 ‘귀동’ 이었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세 살 나이에 엇비슷한 또래의 남동생이 생긴 기자 씨는 한편으론 함께 놀 동생이 생겨 좋았지만,

자신 자체도 돌보기 어려운 어린 나이에 아기의 똥 기저귀를 찬물로 빨아야 하는 심부름은 정말 진저리치게 싫었다.

나중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지만, 어머니라고 내리 여섯 명의 딸을 낳고 싶었을까.

어머니의 배는 이기자씨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늘 불러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젊은 날이 간혹 희미하게 남겨진 낡은 흑백 사진 속 어머니의 모습은 늘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있는 모습으로 남았다.


게다가 어머니는 딸만 낳은 며느리로 구박을 받는 동안,

당당하게 두 번째 마누라를 얻은 아버지가 강보에 싸인 사내아이를 고이 안고 문을 들어서며

‘ 우리 집안을 이어갈 막낼세. 잘 키워봐. ’라며 자못 근엄하게 명령을 내리는 꼴을 감내해야 했으니 그 아기를 위해 기저귀를 빨고 미음을 끓이는 일 따위는 당연히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을 이기자 씨에게 전부 떠넘기고 말았다.

약간의 터울이 있던 다섯 명의 언니들은 이미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고,

저마다 자기 먹고 살기에 바빠서 어린 이기자 씨의 분투쯤은 모른 채 지나갈 정도로 굳건했다.

나라가 해방이 된 지도 그리 오래지 않았고, 큰 전쟁으로 온 세상이 궁핍하던 시절이었다.

비록 할아버지가 나름 부농이었고, 그 재산을 독자로 홀로 물려받았던 아버지의 좋은 운 덕택에 배를 곯지는 않고,

동네에서는 ‘이 부자 댁’ 이라 불리며 큰소리를 치며 살긴 했지만,

도박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는 부잣집 며느리라는 허울 좋은 호칭과는 무관한 늘 빈곤한 삶을 살아왔다.


기저귀를 빨고, 늘 밥을 지을 때면 밥 지을 쌀 위에 종지를 올려 끓어오른 밥물을 따로 받아서 식혀 거기에 찹쌀과 귀한 소고기를 갈아 넣은 미음을 끓여서 동생에게 미음을 먹이고 나서야,

간신히 언니들이 먹고 남긴 반찬과 누룽지 죽을 먹어야 했던 기자 씨는 왜 자신이 이렇게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는 몰랐다. 몰랐지만 어딘가 억울했다.

이따금 언니들이 읽던 책을 슬쩍슬쩍 훔쳐 읽어보면 ‘홍당무’ ‘빨강머리 앤’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들이 마음을 훔치곤 했다.

마치 자신이 그런 동화들의 주인공들처럼 핍박을 받고 있고, 언젠가는 그 주인공들처럼 찬란하게 세상에 우뚝 서리라는 옹골진 마음이 곳간에 쌓이는 가을걷이 나락처럼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여갔다.

한창 나라 전체가 전쟁의 참화를 복구하는 피폐한 상태였지만 타고 난 재산이 있던 아버지는 그 재산들을 조금씩 팔아가면서도 나름 당신 하고픈 대로의 삶을 살았다.

막내의 어머니가 되는 둘째 부인을 아이들은 ‘작은 엄마’라고 불러야 했었는데,

언니들은 기자 씨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그 여자를 작은 엄마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면 늘 기자 씨의 머리통을 세게 쥐어박곤 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쏙 나온 기자 씨가 왜 때리냐고 하면 언니들은 늘

‘넌 배알도 없냐. 멍청한 건 엄마 닮고 배알도 없는 건 꼭 아부지 닮은 년’이라고 매몰차게 몰아세우곤 빠른 걸음으로 신작로를 달리듯 걸어갔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등에는 제 몸집만 한 남동생을 업은 기자 씨는 종종걸음으로 눈물을 훔치며 언니들을 쫓아가려 했지만, 언니들은 이내 신작로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기자 씨는 해가 저무는 길을 바투 걸어 돌아올 수밖에 없곤 했다.

그럴 때면 등 뒤에서 쉰내를 풍기는 남동생이 극렬하게 미웠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이제 말이 막 트인 동생이 아버지에게 고자질이라도 하면 보나 마나 홍두깨로 매타작을 당하고 곳간에 갇힐 게 빤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기자 씨가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리는 이름의 발음 그대로 이 세상에서 ‘이기겠다’라고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은.

어린 기자 씨에게 세상은 태어난 직후부터 오직 적자생존과 투쟁의 무대였으니까.

자신이 살려면 어리지만, 더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고, 그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바라는 자신의 역할이었다.

말하자면 자신은 어린 유모요 동생의 보모이기도 하고, 동생이 잘 되는 길로 가도록 해야 자신도 거기서 운신할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덤으로 태어난 언니들을 집안에서도 말 안 듣는 데다 밥만 축내는 그런 존재였고, 언니들 또한 많은 형제 사이에서 제 몫을 찾아 먹으려면 하다못해 추석날 송편이라도 더 먹으려면 몰래몰래 숨겨놓고 몰래몰래 멀쩡한 냄비라도 고물상 아저씨에게 팔아야 달콤한 엿가락 하나라도 먹어볼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생존본능으로 실천해 오고 있었으니까.

기자 씨가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막내의 공부를 위해서 선생님을 모셔오자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차피 언니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늦둥이 막내의 양육에는 손을 내밀지 않았고,

어머니는 더욱더 그랬다.

아무리 어머니가 그 당시 어머니들이 대개 그러했듯 소학교도 제대로 못 나와 간신히 언문이나 읽을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졌고,

술에 취하면 아들도 못 낳는 년이라고 아버지에게 이따금 주먹질을 받거나,

거의 안방을 독차지한 홀시어머니의 온갖 구박을 받아내며 살아왔긴 하지만,

차마 남편이 밖에서 낳아 들여온 사내아이를 고깝지않게 볼 리는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겐 집안의 대를 이을 유일한 아들이며,

어쨌거나 모든 재산을 물려줘야 할 가문의 대표이기도 한 아들에게만큼은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도

‘ 아이고. 우리 귀동이. 우리 집 보물단지여’ 하며 호주머니에서 귀한 십 환짜리 지폐를 턱턱 내주곤 했었다.

돈에 대해 개념이 없던 막둥이는 늘 개인 수행비서처럼 붙어 있던 막내 누나에게 그 돈을 건넸고, 덕분에 기자 씨는 일찌감치 ‘비자금’ 주머니를 찰 수 있었다.

어찌어찌 기자 씨가 은근히 ‘부자’라는 것을 눈치챈 언니들은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다.

아들에겐 후하지만, 딸들에게는 구두쇠보다 더 인색한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받는 일이란 거의 드물었었다.

이따금 명절에 친지들에게 세배를 한다거나 하는 정도로 조금씩 받는 용돈으로 한창 예쁜 거 좋아하고 갖고 싶은 것 많은 사춘기 소녀들은 늘 빈곤했다.

‘이 부잣집 딸들’이라는 동네의 명성과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궁핍에 시달리곤 했지만, 자존심 때문에라도 돈이 없다는 소리는 못 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들에게 구박 덩이 막내딸이 딴 주머니를 차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그녀들은 동생을 몰아세워 그 주머니를 빼앗지는 않았다.

그녀들은 이미 가족 내에 형성된 힘의 역학관계를 눈치챌 정도로 영민했고,

구박 덩이 막내의 자금원이 바로 막내가 전담으로 돌보는 배다른 막내의 힘이라는 거쯤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들은 영악하게도 기자 씨에게 돈을 빌리는 것으로 하고,

이따금 생기는 용돈으로 대신 이자를 갚았다.


이때 기자 씨는 비로소 ‘돈의 위력’을 몸소 실감했다.

이자를 내지 않는 언니에게서는 새로 얻은 옷을 빼앗는다거나,

자신의 할 일들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원했던 건 아니지만 막내는 거의 유모이자 보모였던 기자 씨만 졸졸 따라다녔고 기자 씨의 말이라면 뭐든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막내를 슬쩍 부추기면 알아서 막내가 술 취한 아버지를 졸라 여분의 용돈들을 받아냈고, 기자 씨는 그 돈의 일부로 막내에게 군것질거리를 사 줌으로써 막내가 더 자신에게 의존할 수 있게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한학을 배운 아버지의 권유로 막내가 소학교를 가기 전에 동네 서당을 다니게 되었는데, 막내를 데리고 오가야 하는 건 당연히 기자 씨의 몫이었고 그 일은 기자 씨에게 늘 목마르던 지적 갈망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때야 기자 씨는 자신의 이름 한자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서당 선생은 기자 씨가 뜻도 모르고 배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쓰자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기자 씨 이름의 ‘기’ 자는 ‘耭’ 였고 ‘자’ 자는 ‘子’ 였다.

훈장님의 해석에 의하면 아들을 위해 밭을 간다는 뜻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기자 씨가 자신의 이름 석 자의 본뜻을 알자 충격이 컸다.

자신은 단순히 ‘이겨나가라’ 정도의 의미로 직설적인 해석을 했던 이름은 결국 막내를 얻기 위한 아버지의 소망이 반영된 이름이었다.

당시 엇비슷하게 아들을 원하던 딸부잣집 아이들의 막내 이름이 ‘끝순’ 이거나 ‘종말’ 같은 것과 다를 게 없던 것이다.

어슴푸레 자아를 깨닫는 시기가 되었던 기자 씨는 이제야 부모·형제들에게 그 어떤 미안함이나 가책이 없이 자신이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삶의 방식을 갖추게 된 계기였다.

어차피 ‘덤’으로 태어나 ‘덤’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이라면,

나중에 어머니처럼 구박 덩이로 살아남지 않으려면,

좀 더 필사적으로 돈을 모으고 좀 더 사력을 다해 ‘힘’을 얻어야만 했다.


어린 기자 씨의 눈에 ‘힘’이란 바로 직업이었다.

주변의 아이들보다 공부를 월등하게 잘하고, 그렇게 해서 좋은 직업을 가져야 돈을 잘 벌고, 그렇게 돈이 있고 지위가 있으면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기자 씨가 본 어른의 세상이었다.

또래들보다 더 빠르게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기자 씨는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막내 귀동을 돌보았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귀동이를 부추겨서 결국 그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에게 배우게 되었고, 유모이자 보모인 기자 씨는 더불어서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기자 씨와 초중고 시절을 함께 다녔던 동창들은 사실 기자 씨의 존재를 잘 기억했다.

기자 씨가 늘 학교에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말이다.

늘 어른스럽고, 시험을 보면 늘 상위권에 하교 때면 늘 저학년 반을 찾아가서 동생의 가방까지 챙겨 메고 집으로 꼬박꼬박 돌아가는 게 아이들 눈에는 특이해 보였으니까.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에도 늘 동생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자신을 흠뻑 젖은 상태로 신작로를 걸어가는 기자 씨를 동창들은 동생에게 정말 헌신적이고 좋은 누나로 기억한다..

물론 그들이 왜 기자 씨가 그토록 동생에게, 그것도 소문에 듣기로 배다른 동생에게 그토록 헌신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식으로 기자 씨는 동생을 앞세워 사립중학교와 사립고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계집애가 무슨 대학이냐, 좋은데 시집가면 그만이지라는 아버지의 교육철학과는 별도로 서울에, 그것도 하숙집을 얻어 기자 씨를 대학까지 보낸 것은 어머니와 언니들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기자 씨는 이미 아버지의 속셈을 잘 알고 있었다.

귀동이가 기자 씨를 무척이나 따르기도 했었지만, 결국 기자 씨에 의해 귀동이가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알고 있던 게 아버지였다.

그러니까 기자 씨의 분에 넘치는 서울유학은,

바로 앞으로 귀동이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유학을 시키기 위해 귀동의 고등학교를 서울로 옮길 것이니 앞서 밭을 갈라는 의미임을 아버지와 기자 씨는 내심 알고 있었다.

기자 씨는 그게 서운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밭은 갈지만, 그래도 거기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소작농’ 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만의 힘으로 대학의 학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면 기자 씨는 일찌감치 유모이자 보모의 역할을 때려치웠을 것이다.

그럴 능력이 없었기에 아직은 귀동을 돌보며 식모처럼 막내를 떠받들어 가며 대학 생활을 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설 수 있다면 당연히 그만둘 일이었다.

기자 씨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당시 사회는 아픈 사람도 많고, 아픈 사람들에게 있어서 의사란 거의 신적인 존재였기에 그랬다.

판사 검사도 물론 힘이 막강하지만, 그러면 뭐할까 싶었다.

아프고 병들면 그들도 도리없이 의사에게 매달리지 않는가.

하지만 동생을 수발들며 하는 공부량의 한계였을까.

기자 씨는 의대에 낙방하고 한의대학으로 간신히 턱걸이했다.

경기도 내 고교에서는 꽤 뛰어난 성적이었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애초부터 의대 법대를 목표로 과외를 받아가며 시험을 본 아이들과 기자 씨는 애초 체급이 달랐다.


동생 귀동이는 그나마 통제가 있던 집을 떠나 서울에서 누나와 지내게 되자 본격적으로 고삐가 풀렸다.

이미 사춘기에 들어서 자신의 유모이자 보모인 누나가 실은 배다른 누나이며,

어차피 아버지의 재산은 자신이 홀로 독식할 거라는 것도 희미하게 알고 있던 녀석은 언젠가부터는 늘 매달리던 누나가 아닌, 자신을 당연히 돌봐야 하는 보모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숙제도 대신 해줘야 하고, 걸핏하면 학교도 빠진 채 딴짓을 일삼았지만,

상황이 바뀐 걸 알고 있는 기자 씨는 동생의 문제를 아버지께 이야기할 수 없었다.

당장 다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네가 동생 하나 제대로 못 가르칠 거면 뭐하러 서울에 유학을 보내고 그 많은 돈을 수업료로 내겠냐고 다그칠 것이 뻔했다.

재수에 삼수를 거쳐 귀동이 그나마 좀 낮지만, 서울권의 법대에 진학하게 되는 사이에 늘 기자 씨는 조마조마했다.

방학 때 고향에 돌아가면 아버지는 조금씩 늙어 있었음에도 항상 동생을 제대로 못 가르쳐서 ‘계집애’가 지 공부만 한다고, 동생 앞길을 막는다고 호되게 야단을 쳤기 때문이다.

동생이 재수하는 기간이면 방학 때 내려간 집안에서 늘 아버지의 회초리 공세를 피할 수 없었지만,

기자 씨는 죄송해요. 죄송해요. 비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럴 때도 귀동이 놈은 피식거리며 어머니가 가져다 놓은 곶감이나 강정 따위를 우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삼수가 시작되었을 때에서야 아버지는 귀동에게도 엄한 야단을 쳤다.

- 이제 마지막이다.

늬 누나가 열심히 가르친다 해도 네가 매일 술이나 퍼마시고, 매일 친구들과 놀러 다니면 다 쓰잘데 없는 짓 이여. 이제 아비도 늙어서 언제까지 니 뒤를 봐 주것냐.

너 이번에 대학 떨어지면 그냥 내려와서 내 농사일이나 도와. 그게 났것어.


그 야단을 칠 때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다.

이미 고생을 지나칠 정도로 해서 아버지보다 폭삭 늙어버린 어머니는 옆에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사춘기를 훌쩍 넘을 때부터 귀동이는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도 않았으니까.

고향 집은 이전과 다르게 적요했다.

그럭저럭 부농의 딸이라는 계급은 고향에서는 꽤 좋은 직업이나 재산이 많은 집의 며느릿감으로 손색이 없어서 언니들을 제각기 결혼을 다 해버렸었으니까.

오직 기자 씨와 귀동만이 넓은 집에서 뒤늦은 비상을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귀동이가 법대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기자 씨와 귀동이를 고향으로 다시 불렀다.

- 인자 귀동이도 법대에 들어갔으니 판검사 될 것이고, 기자도 한의사가 될 거 같으니 이참에 내려와서 좋은 자리로 시집을 가라.

- 네? 아버지. 저도 이제 귀동이 가르치느라 못했던 한의사 자격시험을 봐야 하는데요.

- 뭐여? 또 공부를 한다고? 계집애가? 너 미쳤냐?


결국,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앞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는 귀둥이에게만 줄 것이라 선언하고,

기자 씨는 새벽차로 서울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한의사 시험 준비가 안 된 기자 씨에게 선택권은 별로 없었다.

과외 선생 같은 것을 하며 돈을 벌면서 대학원을 가서 한의사 시험 준비를 하거나,

그간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한약방에 취업하는 것.

너무나 아까운 일이었지만 기자 씨는 후자를 선택했다.

어릴 적부터 동생을 업어 키우기는 했지만,

원치 않던 딸이라고 젖도 제대로 못 얻어먹어 병약했던 기자 씨가 생판 모를 집에서 숙식해가며 과외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어릴 적부터 몰래 따로 챙겨놓은 비밀금고 덕분에 서울에 어찌어찌 월셋집을 얻을 정도는 되었다.

가뜩이나 지겹고 억울하고 힘들었던 어린 날 기억으로 가득한 고향에 가서,

얼굴도 모를 남자를 만나 이 부잣집 딸이라는 타이틀로 일생을 의탁한다는 것은 기자 씨의 자존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난 이 기자야. 다 이겨낼 거야. 그게 내 인생길이야.

기자 씨는 미련 없이 한약방에 취직했다.

한의대 출신 직원을 한약방에서도 환영했다.

과거에는 그저 어릴 때부터 한약방 직원으로 취직해서 일을 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당시의 한약방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급변하면서 서양식 병원으로는 병을 고치러 가고,

한약방은 몸을 보신한다는 의미로 살아남는 과정이었기에 나름 전문적인 한의대 출신 한의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주인은 흡족해했다.

한약재라는 것이 꽤 원재료가 무겁고,

탕약을 만드는 과정도 꽤 힘이 필요한 일이어서 무척 힘들었지만 기자 씨는 악착같이 버텼다.


살아남기 위해 주인 몰래 인삼과 녹용 등속을 달여서 집에서 늘 먹기도 했다.

어쨌든 여기서 나가면 결국 늙은 아버지의 계획에 의해 어느 알지도 못하는 시골 부잣집 아들에게 팔려갈 게 너무나 뻔한 일이었으니까.

이제 남동생 귀동이는 거의 남남처럼 지내게 되었다.

함께 아버지를 보러 가서 최후통첩 아닌 통첩을 들은 날부터 귀동이는 그간 보모처럼 유모처럼 보살핀 기자 씨를 생판 남처럼 대했다.

어차피, 자신이 아버지 유산을 독점할 때 누나들이란 존재는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라는 논리였다.

진솔한 애정으로 동생을 키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키운 정이라는 게 있고,

그동안 엄청난 희생을 해서 제때 한의사 시험공부를 마치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동생의 배신에,

기자 씨는 더더욱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반드시, 내가 성공해서 보란 듯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한 방 먹이겠어.라고.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판잣집 단칸방은 늘 냉기가 감돌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간신히 탕약과 누룽지 죽을 들이키다시피 먹곤 다시 침침한 알전구 밑에서 한의사 자격시험 공부를 하다 지쳐 잠드는 게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사계절을 거의 한 개의 낡은 코트로 지내던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었다.

한약방에 약재를 공급하는 회사의 직원이었는데,

나름 헌칠하고 얼굴은 귀티가 나는 데다 늘 싹싹하고 예의 바르게 말을 잘하는 사내.

한약방 주인이 다른 직원과 나누는 이야기를 저도 모르게 곁 동냥으로 듣는 기자 씨였다.


- 그 친구. 군대도 장교로 다녀왔더라고. 게다가 대학도 꽤 좋은데 나오고.

- 아, 저도 들었습니다. 승용차도 꽤 좋은 거 몰고 다니던데요?

- 그래. 그 할아버지가 구한말 참판인지 뭔지 꽤 지위가 높았다고 하던데?

그래서 아버지도 일제때 무슨 신문사도 하고 떵떵거리며 살았던 모양이야.

- 그렇군요. 애초에 집안이 나름 명문이네요. 그런데 왜 한약재 회사를?

- 그건 그 한약재 회사가 꽤 크게 일을 벌이고 있는데 그 친구를 후계자 비슷하게 키운다지 아마?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명문대 출신을 거기에서 왜 뽑았겠어.


그런 이야기를 듣자 기자 씨의 마음에 약간 떨림이 생겼다.

자신도 굳이 따진다면 경기도의 부농 딸이라곤 하지만, 애초에 ‘권문세가’와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구한말이라고는 하지만 정승 판서를 지낸 집안들의 후손이 나라를 잃은 이후에도 떵떵거리며 물려받은 땅과 재산으로 아직도 조상의 덕을 보면 살고 있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대학을 다닐 때도 늘 풍족하고 여유로워 보이던 동창들은 다 그랬다.

할아버지가 조선 시대 누구누구. 아버지가 일제때 누구누구. 전쟁일 땐 뭘 했던 누구누구.

얼핏 그녀의 상식으로는 그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흔히 ‘친일파’로 불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다.

자신도 전쟁의 끄트머리에서 태어나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리고 학교에서는 역사교육에서 항상 독립운동이 어쩌고 36년간 식민지가 어쩌고 하긴 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시 일제와 관련 있던 사람들이 현재도 풍족하게 살지 않은가?

어차피 나라를 팔아먹은 건 마지막 왕일 거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후손들을 위해서 재산을 늘리고 지켜내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누리던 풍족과 지위를 자손들에게 물려준 조상들은 훌륭한 것이라는 게 그녀의 논리였다.

만약에 그 과정에서 소위 ‘친일파’ 또는 ‘부역자’로 몰리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에 전부 벌을 받거나 재산을 몰수당했다거나 그 자손들이 대대손손 조상의 죄업으로 지리멸렬했고,

이른바 ’독립투사‘ 라거나 ’임시정부‘의 요인이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해방 후 엄청난 대접을 받고 고위직에 오르고 자손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존감과 재산으로 승승장구한 역사가 있었다면 그녀의 생각도 달라졌을 게다.

하지만 자신이 희미하게 기억하는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까지 따지고 보면 그 일제 강점기 이전의 직책과 영향력을 이어받아 현재까지 그럭저럭 살고 있는 거 아닌가.

비록 후대에서 이래저래 딴짓으로 많이 까먹긴 했지만 그래도 온 국민이 궁핍하던 그 시절에 적어도 자신도 보릿고개를 넘기려고 애쓰던 기억은 없었다.

게다가 36년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나.

그들에겐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일본의 천황이 바로 그들을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였을 따름인데.

그렇게 이미 만들어진 한 세대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성공의 길을 걸으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적어도 그녀의 생각은 그랬다.

그 때문에 가끔 한약방에 들르는 그 약재 공급회사의 직원에게 다소나마 그녀답지 않은 호감이 생기게 된 것은 당연했다.

평소보다 조금은 머리도 다듬고 옷도 갈아입기를 하는 그녀를 보고 한약방 주인은 누구 사귀냐고 물을 정도였다.

늘 한약방에 납품차 들르던 그 남자는 항상 반듯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늘 흰 셔츠에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신사‘였기에 그녀도 그녀답지 않은 매무새를 가다듬게 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사내도 그동안은 한약방 주인과만 대화를 나누더니 언제부터인지 그녀에게 살갑게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짓고 하는 것이다.

그녀 또한 평소의 무뚝뚝하던 태도완 다르게 사내의 인사를 받곤 했다.

두 사람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늘 오지랖이 넘치던 한양 방 주인이 어느 날 넌지시 퇴근길의 그녀를 잡았다.


- 이 양. 우리 가게 가끔 들르는 그 약재 회사 직원 알지?

그 친구가 이 양하고 식사를 한번 하고 싶다고 소개를 부탁하던데, 어때?


기자 씨의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게 설렘인지 아니면 당황인지 그도 아니면 무엇인지는 몰랐다.

고향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동생을 챙기느라 슬금슬금 뒤따라오는 여드름쟁이 남학생들을 거들떠본 적도 앖었다.

서울로 유학을 와서 대학을 다닐 때도 늘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흔한 만남이나 파티 따위 코웃음 치며 하숙집으로 바삐 가서 동생의 밥과 공부를 책임지던 그녀라,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어쩌면, 이게 바로 그녀의 지금까지의 척박하던 삶을 바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 저기…. 사장님. 그럼 날짜 한 번 잡아주세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가 긍정적인 대답을 한 게 의외였던지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몇 올 남지 않은 흰 머리칼을 쓱 손으로 넘겼다.


- 어? 어. 그렇지. 그럼 내가 그 친구하고 좋은 날을 한번 잡아 보겠네. 좋은 날 말이야. 허허…….


사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사이,

기자 씨의 머리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부를 꽤 잘하고 열심히 하긴 했지만, 남녀 관계의 일이란 젬병인 그녀였다.

게다가 단둘의 만남이라니.

그녀가 단정하지만 한편으론 냉정한 성격 때문에 주변에 이런 말을 나눌법한 동성 친구라곤 없었다.

그녀에게 같은 학급의 동료란 늘 성적으로 극복하거나 성격으로 이겨내야 할 경쟁상대에 불과했었으니 말이다..

극단적으로 세상을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경우는 무척이나 생소하고 어찌 대처할지 어려운 부분이었다.

늘 세상에 대한 지식을 책으로 풀어오던 그녀에게 이런 이성과의 사이에 대한 일은 일부러라도 알고 싶지 않은 지식 분야였다.

그녀는 늘 돈을 버는 방법과 저축과 자신에게 가혹할 정도로 청빈하게 사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청빈이라 부르고 주변의 동료들은 궁상이나 지독함이라 부르는 그것 말이다.


갑자기 생긴 맞선 아닌 맞선 자리에 관한 생각으로 심란한 그녀가 지친 몸을 이끌고 자취방에 돌아왔을 때 공교롭게도 그녀의 방 옆을 쓰는 여자가 툇마루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녀와는 평소 마주칠 때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본래 기자 씨의 성격상 자신과 일이나 다른 용무로 연결된 사람이 아니라면 철저히 외면하는 성향 탓도 있었지만,

그녀의 옆 방에 세 들어 사는 엇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여자도 기자 씨만큼이나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성격으로 보였다.

그런 그녀가 어찌한 일로 툇마루에 앉아 소주병을 놓고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기자 씨는 저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나름 보수적인 데다 도시에서 자라지 않은 그녀로서는,

여자가 술을 마시는 것도 꺼림칙한데 그것도 어둑해지는 자취방 앞에서 보란 듯이 그러고 있는 양이 마뜩잖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판잣집에는 그녀와 기자 씨 둘만 자취를 하고 있었으니 그녀가 눈치를 안 본 건지는 몰랐다.

어쨌거나 따지고 보면 산동네 자취방에서,

하나뿐인 마당의 수돗가에서 세수하거나 마당에 하나뿐인 재래식 변소를 함께 공유하는 사이이니 어찌 보면 가족 이상의 밀접함은 있을 것이나,

기자 씨의 본래 성품이 누군가 자신에게 실없이 구는 것을 무척 혐오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 저기, 한잔할래요?


평소처럼 고개를 까딱하곤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는 기자 씨의 뒷덜미를 붙잡은 그녀의 말이다..

대학 때 이후로, 한약방에서 이따금 사장이 회식하자고 해도 애써 거부하던 기자 씨였다.

그녀에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출세‘ ’돈’과 관련되지 않은 일들은 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훗날 회상하기에, 이때 자취방 앞에서 술을 홀로 마시던 그녀는 어쩌면 기자 씨의 처지에서는 큰 인연이자 악연이었다는 생각이다.

평소의 기자 씨라면 ’아뇨, 괜찮습니다. ‘라고 했을 것이지만,

그날따라 갑자기 생긴 맞선 자리로 인해 머리가 복잡하고 심란하던 차라,

기자 씨는 말 없이 옆방 처녀 –처녀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런 기자 씨를 보던 그녀가 자신이 마시던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이미 어둑해지는 가운데 길게 누운 황혼이 산동네 마당에 드리워져 소주잔에 담긴 소주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어울리진 않지만.


아마도 평소라면 당연히,

타인이 마시던 잔을 그대로 술을 따라 주는 것만으로도 질겁을 했을 기자 씨이지만 그날은 왠지 거침없이 잔을 받아 한 번에 들이켰다.

오히려 뭔가 도발하듯 술잔을 내밀었던 옆방 처녀가 흠칫 놀랄 정도로 기자 씨의 첫 잔은 호쾌했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늘 고주망태를 불사하던 아버지의 유전자 탓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횡포를 늘 묵묵히 견뎌내시며 부엌 구석에서 아버지가 남기 술병을 몰래 모아 남긴 술을 한 사발씩 단번에 들이키던 어머니의 탓인지 기자 씨는 알코올의 영향을 별로 받진 않았다.


- 어, 보기보다 화끈하네요. 내 이름은 조 진애 라고 해요. 그쪽은?

- 네. 제 이름은 이.기.자.입니다.


옆 방의 그녀.

진애 씨는 기자 씨가 또박또박 이름을 밝히자마자 깔깔대며 웃었다.

기자 씨가 이름으로 인해 학교에서 놀림을 받은 건 꽤 오래전의 일이다..

농담이나 조롱을 전혀 원치 않고, 공부도 꽤 잘하고 성격도 사나운 편인 그녀를 이름으로 놀릴 수 있는 건 언니들 몇 외엔 없었다.


- 왜요? 내 이름이 우스워요?

기자 씨가 정색하자 옆 방의 진애 씨는 기자 씨가 단숨에 술을 들이켤 때 이상으로 흠칫해 했다.


- 아뇨. 아뇨. 미안해요. 내 이름도 나쁜 이름은 아니지만, 성씨 때문에 늘 놀림을 받곤 했거든요.

아마 댁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것 같아서…. 근데 한 성질 하시네요.

그녀가 사과하자 기자씨는 오히려 좀 민망했다.

그녀는 안주 삼아 먹던 과자봉지를 기자 씨에게 내밀었다.

그러더니 기자 씨가 내려놓은 술잔을 가져가 다시 소주를 따라 훌쩍 들이켰다.

- 크……. 써.

그녀가 술을 마시곤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며 기자 씨는 술이 넘어가는 그녀의 하얀 목울대를 얼핏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무슨 흉터 같은 게 보였다.

그녀가 기자 씨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픽 웃었다.

- 날도 어두워지는데 눈치도 빠르시네. 그쪽은 몇 살이에요?


장난처럼 웃는 그녀의 눈매를 보고 문득 기자 씨는 진애라고 스스로 밝힌 이 여자가 제법 예쁜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늘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는 자신과는 달리, 입술에 화장도 했고 은은하게 꽃향기 같은 게 풍겨 온다는 것도.


- 아, 전…. 스물셋이요.

- 네에? 스물셋?? 한참 동생이네?


진애 씨는 정말 놀랍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난 스물여덟. 나이 알았으니까 말 좀 놓아도 되지? 내가 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기자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 씨도 속으로 놀랐다. 또래인 줄 알았는데.

둘째 언니와 동갑이었다. 화장을 많이 해서 그런가.


- 오래 세를 살았는데도 처음 이야기해보네? 기자 씨가 너무 냉정해 보여서 감히 말을 걸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늘 어려워 보이는 책을 끼고 다녀서. 하하.

기자 씨는 말 없이 고개를 주억대며 그녀가 내민 과자봉지 속 과자를 꺼내 우적거리며 씹었다.

그러고 보니 배가 좀 고팠다.

원래라면 들어가서 밥을 해 먹을 시간인데.

우연히도 진애 씨가 자기 집에 밥이 있으니 함께 먹겠느냐고 했고,

기자 씨도 평소답지 않게 남의 방에 들어가 비위도 좋게 밥을 먹고,

거기서 술을 더 오래 마시다가 그냥 잠들어 버린 것은 어쩌면 빈 속에 마신 소주 탓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날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진애 씨와의 대화에서 많은 충격적인 진리를 알게 되어서 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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