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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Dec 22. 2023

라면 연대기– 부제: L 씨의 라면 역사에 대한 보고서

1.

라면 연대기 – 부제: L 씨의 라면 역사에 대한  보고서     

1.     


‘라’씨가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라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건 순전히 역사적인 장난 같은 것이었다.

어린아이의 별명 따위에 굳이 ‘역사적’이라는 거창한 관형사가 붙게 된 이유는 사실은 단순했다.


가족관계등록법상 그의 성은 ‘라’였다.

나라에서는 두음법칙을 이유로 그의 일가에게 ‘나’ 씨로 표기를 하도록 강요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특유의 고집으로, 그들의 성씨는 ‘라’라고 강조하곤 했다.

그의 선친이 3대 독자인 아들의 이름을 ‘라미온’이라 지은 것은 여느 부모들이 그러하듯 좋은 뜻에서 시작되었다.

라(羅) 미온(米溫)이라고 그의 선친이 이름을 지었을 때 의미는,

툭하면 배를 곯던 당신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능력도 재력도 없던 그의 아버지가 3대 독자를 낳고서 제일 크게 고민이 되었던 것은 굶주림이었고, 

이름이라도 따뜻한 밥을 풍족하게 먹고살라는 의미를 두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이란 나라에는 ‘라면’이라는 음식이 없었던 시절이니,

나중에 아이가 크면서 ‘라면’이라는 간편식이 등장했을 때도, 

그의 선친은 아들에게 뭔가 배고픔, 식량과 관련된 제품이 등장한 것에 나름의 작명법에 대해 만족하곤 했다.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라미온 군의 처지에서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별명이 되어버렸다는 소소한 불행 같은 것이었으나,

그걸 이유로 아버지에게 대들다가 호되게 혼나고 나서야, 

라미온 군은 선친 앞에서 이름에 대해 투덜거리는 일은 않기로 결심했었다.     

라 군이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에 라면이라는 신기한 식품이 등장했는데,

그때만 해도 라면의 값이 꽤 비싸서 서민들이 쉽게 사서 먹을 수 있지 않았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솥에 밥을 해 먹거나 국수를 끓여 먹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라면이란 뭔가 이질적이며 이국적인 신기한 음식에 불과했으니까.


이름에 얽힌 숙명인지 운명인지 라 군은 무척이나 라면을 좋아했다.

그것은 라면의 맛을 잘 알아서라기보다는,

늘 집에서 먹는 거친 보리밥에 멀건 된장국보다는 부드럽고, 

어딘가 고깃국물 맛이 은은한 라면의 중독성 있는 맛에 반한 이유도 있었고,

그것을 먹기 위해서는 구멍가게에 가서 돈을 내고 사 와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어린 라 군에게 구멍가게에 가서 돈을 내고 사 오는 것들은 대개 맛있고, 

드물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게다가 당시 라면의 포장지에는 슈퍼맨 비슷한 만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내용물에 사은품으로 풍선껌이 들어 있는 일도 있어서 더 그랬다.


가끔 라면을 먹는 날이면 집안이 온통 들뜨곤 했다.

물론 집안이라고 해봐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삼대독자인 라 군이 전부이긴 했지만.

라면을 끓이는 날은 대체로 아버지가 월급을 받아오는 날이곤 했는데.

그런 날이면 어머니 심부름으로 구멍가게에 달려간 라 군은 

자랑스럽게 돈을 내고 라면 세 봉지를 사 들고 돌아오곤 했다.

이따금 어머니 몰래,

끓이기 위해 열어놓은 라면 봉지 속에서, 

라면 부스러기를 털어내어 입에 몰래 넣는 것은 라 군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즐거움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라 군의 이름은 졸지에 ‘라면’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의 이름을 빠르게 부르기만 해도 ‘라면’이 돼버리곤 하니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어느 집이나 라면이라는 식품이 귀한 때였으니,

그런 별명으로 불리더라도 크게 나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라 군이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나라에서 ‘혼분식 장려운동’이라는 것을 열심히 시행하게 되면서 ‘라면’에 대한 가격을 통제하게 되자, 

 라면은 이전보다 매우 흔하고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변해갔다.

초등학교 시절 라 군의 별명이 그래도 나름 귀한 음식에 대한 선망 비슷한 것이었다면,

중학교 시절에 ‘라면’이라 불리는 것은 경우가 크게 달랐다.

‘라면’이라고 친구들이 그를 부르면 어쩐지 라 군은 값싼 한 끼니로 전락이 되고 만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괜찮았다.

목재소에서 노동일을 하던 아버지가 원목에 다리가 깔려 부러져버렸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던 아버지가 다리를 못 쓰고 몇 달 동안 드러눕게 되면서 그의 보잘것없던 집안은 더더욱 힘들어져 갔다.     


- 미온아. 우리 아무래도 영세민 신청을 해야겠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그를 앉혀놓고 우물쭈물하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라 군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일단 그는 영세민이 뭔지 알지 못했다.     


- 엄마. 영세민이 뭔데?     


라 군의 물음에 그의 어머니는 매우 복잡하고도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어머니는 혈혈단신 남쪽으로 넘어온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 간신히 한글을 읽을 정도의 교육 수준을 가졌었기 때문에, 

아들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기가 어려웠다.     


- 어…. 나도 잘은 모르지만, 

동사무소에 가서 영세민 신청을 하면 쌀과 라면이 매달 나오고, 

엄마가 일할 수 있는 것도 찾아주고 그런다던데…….     


말을 흐리는 어머니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라 군은 문득, 

앞으로는 라면을 많이 먹을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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