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다오는......
건축이 말을 거네 47
안도 다다오는....(제주 특집)
“ 안도 다다오는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이다. 안도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았는데, 건축가가 되기 전에 트럭 운전사와 권투선수로 일했고, 건축에 대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일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1969년에 그는 회사를 설립했고, 1995년에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위키백과
출생: 1941년 9월 13일 (82세),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미나토구
배우자: Yumiko Ando
수상: 프리츠커상, 로열 골드 메달, UIA Gold Medal, AIA 금메달, Alvar Aalto Medal, 제임스 비어드 재단상 최우수 레스토랑 디자인
영화: 안도 타다오, Tadao Ando: From Emptiness to Infinity, 외 개”
구글링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안도 다다오 건축가에 대한 설명이다.
“ 안도 다다오(安藤忠雄)는 1941년 오사카 출신으로 젊은 시절 프로권투선수를 거쳐 1962-69년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면서 독학으로 건축을 배웠다. 1969년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건축연구소를 설립, 다수의 건축을 설계, 다수의 상을 획득했다. 예일, 콜롬비아, 하버드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동경대학교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자세한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이력은 아래를 참조(일본어 사이트)
http://tokino.lib.net/editiong/1ando.html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건축에 대해 한마디로 해석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사람에 따라 유럽의 유명 건축가를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하고, 철학적인 그의 사상에서도 찾기도 한다. 시대적인 조류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그의 독특한 개인적인 이력에서 건축의 특징과 그 해석을 찾기도 한다. 심지어, 그를 무식하다고 칭하는 평론가마저 존재하고 있으니, 이는 그가 얼마나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
사진 출처
http://design.web.infoseek.co.jp/1-ando/ando.html
http://www.andotadao.org/index.htm
위는 design db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안도에 대한 글이다.
우리나라에도 꽤 여러 개의 작품을 설계한 이력이 있다.
건축이라는 거대한 은하의 한 모퉁이를 떠도는, 떠돌이 행성 정도의 위치인 내가 감히 언급하기는 어려운 대가이자, 대단한 건축가임은 객관적인 수상 이력과 작품들이 증명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건축이라는 험난한 길을 오래도록 걷고 공부하는 내 처지에서 보면 대개의 건축전공자나 건축계에 몸담은 많은 사람의 ‘안도 다다오’에 대한 입장은 극명하게 나뉜다고 생각한다.
극도로 찬양하거나, 극도로 싫어하거나.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굳이 양분하자면 그렇게 보인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안도라는 사람은 현대건축의 시조로 알려진 르코르뷔지에와 많이 닮아있고, 안도 자신도 그 영향을 받아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노라 고백한 바 있다.
정식으로 건축교육을 받은 바가 없고, 고졸의 학력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 명의 건축가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이 없었다.
처음에 건축에 입문하여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나도 안도 다다오를 좋아했다.
안도의 작품을 보고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드라마틱한 건축 인생과 학벌 중시사회에 반전을 일으킨 그의 행보에 먼저 반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문교육을 안 받아도 스스로 처절한 노력을 한다면 해낼 수 있다’라는 극복의 아이콘으로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안도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던 것은 제주 섭지코지의 Genius Loci 와 Glass House 였다.
당시에는 생전 처음, 그것도 우리나라의 땅에서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본다는 것에 열중하여 꽤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란, 내가 막 건축에 발을 들여놓아 이유식 기? 정도나 되었던 시절이다.
그렇게 발을 들여놓은 Genius Loci는 무척이나 좋았었다.
일단 거대한 노출콘크리트 구조물이 언덕의 땅속에 스며든 모습이 좋았고,
그 상태로 내부에 진입하면 어두운 조명과 슬래브 처마 아래로 길고 좁게 갈라진 높은 채광창에서 스며드는 자연의 빛, 은은하고 몽상적인 음악, 그리고 바닥에 깔린 멍석? 비슷한 매트가 조화로워서 잠시 관광지의 번거로운 소음을 잊고 명상 비슷한 체험이 되는 것이 좋았다.
점점 경사가 낮아지는 진입로 끝 갈림길에 콘크리트와 제주화산석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에 가로로 길게 펼쳐진 성산 일출봉이 보여서 좋았다.
나중에 무슨 사연인지 두 번째 방문 했을 때는 유민 미술관으로 바뀌면서 내부도 더 밝아지고 뭔가 좀 최초 건축의 느낌이 많이 사라져서 아쉬웠던 기억이다.
당시에도, 건축 초짜인 내 시선에도, Glass House는 무척 못마땅해 보였다.
네 눈이 낮아서, 라고 누가 말한다 해도 할 수 없다.
섭지코지의 고요한 풍광이 비스듬한 언덕 위에 콘크리트 덩어리와 높다란 유리 벽이라.
매우, 몹시, 아주 언짢아 보이는 매스 덩어리였다.
일단 내부 1층은 리셉션과 승강기홀 정도의 느낌이고, 2층은 레스토랑이었는데 그곳에서 바라본 바다와 성산은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내 시각에는 몇 안 되는 소수의 멋들어진 식사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공간을 독점? 하는 건축공간이 좀 마뜩잖았었다.
안도 다다오를 대변하는 건축 철학이 아래의 다섯 가지라고 하는데,
1. 자연과 인간, 자연과 건축, 건축과 인간과의 관계성
2. 장소의 의미, 주변과 고유의 관계, 지역적 특성
3.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 추상적 형태, 수학적인 명쾌함, 단순 미학
4. 비, 바람, 빛, 물, 자연의 감각, 자연에 대한 해석
5. 노출콘크리트, 철, 유리
적어도 Glass House에서는 3, 5 정도만 고려된 것 같아서 매우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그도 건축주의 주장을 수용해야 하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건축주였던 보광휘닉스파크 측의 의견이 다수 개입되어 있을 여지도 없진 않다.
하지만 건축주를 설득하여 불편하기 짝이 없을 공간으로 만들었고,
건축주에게 ‘ 건축은 다소 불편해야 한다.’라는 궤변으로 이루어진 곳이 안도 다다오를 유명하게 만든 최초의 건축인 ‘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이었다는 전설 아닌 궤변을 읽어보면,
그런 사람이 건축주에게 굴복? 하여 보기 싫은 건물을 설계한 것이라면 그 또한 강대 약, 약대 강의 생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으로 보여서 싫었다.
그런 선입견이 있어서였을까.
한 번 가기도 쉽지 않은 강원도 원주 골짜기의 뮤지엄 ‘산’을 세 번은 가본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대다수 건축가가 경탄하는 그 건물에서 나는 그다지 감흥을 못 느껴서 일게다.
외려 제임스 터렐관 내부의 작품들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고나 할까.
안도 다다오 특유의 메타포 라는 게 뭐냐는 의문이 생겼다.
안도 다다오가 일본에서 서서히 명성을 쌓아가는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학벌 중심, 학연, 지연 상태의 사회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현재도 선대의 정치인들의 후계자들이 대부분 정계에 진출한 것에서 보이듯,
일본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 뚜렷하게 자리 잡아 온 국가이다.
그런데 아무 학벌도 관계도 없을 안도 다다오가 일본과 세계 건축계에서 그토록 특별한 자리를 옹립하고 유지해온 것은 일반적으로는 모르는 그만의 자리매김과 강력한 협력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니 그가 사무소에서 설계만 몰두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에는 제주에서 보이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