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건축이 말을 건네 46

건축은 권력이다

by 능선오름

건축이 말을 거네 46

건축은 권력이다

우리네에게 가장 친근한 – 현재, 현시대를 기준으로- 건물은 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아닌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 현대인, 도시인이라면 늘 마주하며 늘 좀 더 좋고 높고 시설 인프라가 좋은 아파트를 선호하며 다가서기 어려운 가격에 또 좌절한다.

그리고 어떤 아파트에 갈 기회가 된다면 가능한 한 높고, 가능한 조망이 좋으며 최대한 넓고 단지 출입구부터 경비가 삼엄하면서 단지 내부에는 작은 숲이 조성된 것을 선호한다.

그런 조건이 갖춰진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사는 곳’을 누군가 물을 때 매우 자랑스럽고 조금은 허세를 부리듯 아파트의 ‘브랜드’를 읊는다.

함축된, 그리고 이상야릇해서 정작 외국인들은 그 뜻을 알지도 못할 정도로 왜곡되며 엘레강스? 한 아파트단지와 위치를 말하면 그 즉시 그 사람의 경제적 지위가 드러난다.

그게 어떤 소소한 모임이었다면 더더욱 모임의 핵심인물이 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 사람이 특정한 어떤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나타내며, 그만큼 사회적으로도 괜찮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괜찮은’이라는 표현은 실제 best, good의 뜻이 아닌, rich를 의미한다.

극단적으로 압축하면, 특정 지역 특정 아파트의 명칭은 그 사람의 명함이자, 잠재적인 권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고대의 불가사의로 불리는 건축물들, 근현대에 이르러 우리나라에 들어선 공공건축물이나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거대한 빌딩, 이른바 메가시티, 랜드마크, 이런 것들은 위에 서술한 건축의 권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특별히 인지도가 높은 이른바 세계적인 건축가의 이름을 앞에 붙인 건축물도 있다.

즉 건축에 ‘브랜드’를 부여하여 건축물 자체를 차별화하고 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시계 하면 무조건 메이드인 스위스를 최고의 브랜드로 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권력의 정점에 올랐거나, 혹은 그 언저리라도 도달했던 인물들은 예외 없이 자신의 ‘업적’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건축을 선택했었다.

과거 방송 매체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는 더욱더 그러했다.

인간은 시각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동물이고, 그런 이유로 시야각을 벗어날 정도로 광대한 자연이나,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건축물에는 먼저 압도를 당하게 마련이다.

인류의 진화는 약 230~250만 년으로 알려져 있고,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출현은 13만 년 전이라 알려졌다. 이런 고대의 역사는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발견 때문에 달라질 수는 있지만 말이다.

거기에 소위 ‘문명’이라 부를만한 시기는 기원전 3000~5000년 전이라고 하니 장대한 인류의 역사에서는 그야말로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문명의 기준은 대개 인간이 의, 식, 주를 집단을 이루어 도시를 형성하면서부터 라고 본다.

그런데, 최근에 알려진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탄소연대측정법으로 기원전 1만 1700년, 구석기~신석기시대의 경계 즈음에 건축되었다고 하니, 인류 문명의 시점이 교과서에서 바뀔 수 있겠다.

고고학자들은 이 말이 안 될 것 같은 고대유적이, 도시화를 이루어 살던 석기 인들이 만들었다기보다는 신전 혹은 무덤으로 유추하는 이 건물들을 만들기 위하여 모여 살면서, 근방에서 농사를 지어 끼니를 해결하면서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이 건축물과 문명의 발상지라고 여기는 곳들에서 발견되는 고대 건축 간의 간극이 거의 수천 년에 가깝게 차이가 나는데 그 중간에 해당하는 시기의 건축은 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추측하면, 아마도 석기시대에 이 정도로 집단을 모아서 특정한 건축행위를 하게 한 설계자는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대하여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지는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질학자들은 현대를 기준으로 마지막 빙하기는 약 1만 년 전에 끝나고 그 이후부터는 간빙기(interglacial)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인류의 구석기시대와 겹쳐진다.

즉 대부분의 구석기인은 먹고살기에도 꽤 팍팍한 삶이었다고 유추한다.

개중에 지역적으로 빙하기의 영향이 적고, 대량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구석기인들이 있어서 나름 번창했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종교적인 이유이건 다른 이유이건, 과거 시대는 제정일치의 사회였을 것이므로,

즉 권력으로, 권력이 가진 강력한 리더십 혹은 공포, 또는 존엄, 이런 것들로 실생활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거대한 건축을 축조하였을 것이다.

즉 권력이 먼저이고 그 권력으로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며,

까마득히 먼 후손들인 현생 인류들조차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실제 건축물을 계획하고 설계하며 만들어내는 기술자들이 권력자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것이 주변에 이상하고 납득이 어렵고 흉한 건축물들이 횡행하는 이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건축이 말을 거네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