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무지경(學無止境)
건축이 말을 거네 45
학무지경(學無止境)
작년 말부터 우연한 기회로 기술교육을 가르치는 이론강의를 맡게 되었다.
늦공부로 석·박사과정을 지나오긴 했지만, 실제 수업을 맡은 경우가 처음이라 고사하였으나,
해당 기술원에서 이따금 초빙 강연을 해온 인연이 있기도 하고, 나 역시 늦공부를 했던 사람이라 그곳에서 열공 하시는 大器晩成대기만성형 수강생분들에게 동질감 내지는 전우? (혼자 생각이지만)이라는 마음에 어떻든 열심히 해보리라 애를 쓰긴 했다.
해당 과정의 강사로 등록하기 위한 절차와 인증과 기타 여러 가지 사항들이 꽤 까다로워서 나름의 고생이라면 고생도 했고, 교재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하려고 자료 수집도 많이 하며 다시 공부한 셈인데 정작 과정을 평가하는 기관의 까탈스러움 때문에 한도가 정해져 있었었다.
게다가 이전 교재라는 게 전혀 없는 과정이었고, 역사가 짧아서 그 이전 시험내용에 대한 자료조차 전혀 없는 상황이라 부담스럽기는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해당 과정을 공부해야 하는 수강생분들은 어찌 보면 이상스럽고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의 희생양이자 일종의 표본이기도 했고 어떤 관점에서는 대단한 혜택을 보는 운 좋은 분들이기도 하니, 이 또한 복불복인 셈이었다.
생각해보면, 정작 돈을 쏟아붓고도 (대개는 부모님의 돈이지만) 오늘 휴강 안 하나, 혹은 대리 출결을 하던 학생들보다도 더 열중하시는 모습들에서 나 또한 꺼져가던 마음의 잿더미에서 불씨가 서서히 올라오는 도움도 받았다.
얼마 전에 수강생분 중에서 자격시험에 합격하셨다는 낭보를 받고 진심으로 기뻤다.
부족한 자료와 강의로 충당은 어려우셨을 것인데도 교재를 열심히 공부하신 스스로 노력으로 이룬 성취이니 대견하고 한편 큰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하기도 했다.
전공자들도 실제로 자격 취득률이 30%에 이르지 못하는 현실이니 더욱 가치가 크다.
이번 달에는 1달 단기 자격증 취득반 강의를 하고 있다.
앞서 단계보단 낮고, 이미 십 년 이상 문제은행의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과정의 시간이 너무 짧아서 이론 해설보단 문제 족집게 학원식으로 우격다짐 강의를 해야 하니, 거꾸로 수강생분들이 비전공자 비율이 높아서 외계어 같아 이해가 불가하다 질문을 하셔도. 이건 그냥 문제와 정답을 외우는 것밖에는 현재 강의 분량으론 도리 없다는 무책임한 말을 반복할 뿐이다.
그중에 팔순은 넘어 보이시는 어르신이 계셨고, 게다가 야간반이라 주간에 일하시는 거로 보여서 궁금했었다.
고령이신데도 총총한 눈빛으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라보시며 고개를 끄덕이셔서, 왕 부담이 이었다.
야간 강의가 끝난 후 갑자기 다가오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부담이 될까 봐 첫 시간에 얘기를 못 하고 주저하셨는데, 그래도 세 번째 시간이 지났으니 이야기하신다고 하며 내가 확부와 석사과정을 마친 학교의 무려 1기생 졸업자라 하신다.
뜨악하고 당황스러웠다.
현업도 하고 계신다며.
예전에 교육을 받은 것이다 보니 컴퓨터로 업무 처리가 부족하여 주간에 일을 보시고 야간에 강의를 듣는다고 하셨다.
송구하고,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학무지경(學無止境)’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역시 학문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典據 :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에 이름을 떨쳤던 가수 설담(薛譚)이 노래를 진청(秦青)에 배울 때의 일이다..
설담은 노래를 배우고자 간절히 열망하던 터라 정신을 집중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熱心)히 배워 나갔다.
진보가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담은 은근히 자신감이 생겼다. 스승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정신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점점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서 전혀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설담은 마음속으로 “이제는 내가 스승보다 나아. 더 머물러 봤자 배울 게 없어. 괜히 시간 낭비(浪費)일 뿐이지. 빨리 내 고향으로 돌아가 나도 제자(弟子)를 길러야 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설담은 용기를 내어 스승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인제 그만 돌아가야겠습니다”.
설담은 말을 마친 뒤 스승의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꾸짖음이나 아니면 차분한 설득(說得)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스승 진청은 “그래. 알았다”라고 말할 뿐 조금도 만류하지 않았다.
짐을 꾸려 설담이 떠나던 날, 진청은 설담을 교외(郊外)에까지 전송하러 따라갔다가 주막에서 술자리를 마련하였고, 그 자리서 전송하는 뜻으로 노래를 한 곡 불러 주었다. 그 노랫소리에 하늘에 떠가던 구름이 멈추고 주변 수풀의 나뭇가지가 떨렸다(알운곡/遏雲之曲).
이에 설담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며 다시 제자로 받아 주기를 부탁하고는 평생토록 그의 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