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뱃길 특파원 뉘우스

오해

by 능선오름

재작년과는 다르게, 아이가 자라니 먹는 것 챙겨주는 것 외에는 아빠가 아닌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이 친구 저 친구를 불러 놀거나, 밖에 나가서 한참을 놀고 오니 시간이 생기네요.

오랜만에 정서진을 향해 나섭니다.

익숙한 길을 달리는데 문득 이정표를 바라보니 그간 무심히 지나치던 것이 문득 눈에 들어오네요.

국토종주 도착점. 응? 그러면 그간 정서진이라고 늘 점찍고 돌아오던 거긴 뭐지? 하는 생각에 이정표를 따라가 봅니다.

가고 오는 라이더가 많은 걸 보니 그 방향이 맞나 봅니다.

뭐지? 하는 생각에 계속 가보니 FINISH라고 쓰여있는 아치가 있는데 뒷면에는 START라고 쓰여있네요.

세상에.

늘 점찍고 돌아오던 곳에서 멀지도 않네요.

왼편으로 영종대교 휴게소 곰인형이 보입니다.

보아하니 그간 제가 점찍고 편의점 들러 음료 한잔하곤 돌아오던 곳도 정서진은 맞지만, 자전거쟁이들이 부르는 정서진은 아니었던 겁니다.

이런. 늘 홀로 자전거를 타다 보니 오해를 했던 거네요. 무려 거의 4년간.

바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내친김에 그곳에서 판다는 국토종주 수첩을 사려하니 음?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는군요.

수첩을 샀다고 국토종주까지 할 거창함은 없는데.


아무튼 오늘은 하늘이 열일한 것 같네요.

'하늘색'이라는 색명칭이 실감 나는 하늘.

거기에 솜사탕처럼 몽글거리는 흰구름.

이따금 스쳐내리는 비행기들.

피크닉 돗자리를 펼치고 도란거리는 가족들.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한다는 영국제 가죽안장은 어떤 분들은 너무 편하다고도 하고, 길들여 엉덩이에 착 맞게 되면 좋다곤 하는데 저렴한 제 좌골과는 상극입니다.

계속 좌골을 비틀어 고문당하는 기분에 안장을 길들이기도 전에 좌골에 멍이 들겠습니다.

엉금엉금 돌아와 자전거를 놓고 나서니 무슨 고문기계에서 사면받은 느낌이군요.

그래도. 해방감은 좋았습니다.


어제 병원을 가던 길에 다이소에 잠시 들리려다 보니, 대로변 인도에 80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 앉아있는 게 보였습니다.

뒤에는 접힌 박스들이 쌓인 핸드캐리어가 있고, 노인의 앞에는 작은 폐박스가 있더군요.

그분이 과거 살아오며 난봉꾼이었는지 아니면 파렴치한이었기에 그런 노후가 된 건지,

아니면 열심히 살았으나 사기를 당했는지 그도 아니면 IMF 직격탄을 맞은 개인사업자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죄를 지었든 상관없이 길바닥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게 마음 쓰여 마침 주머니에 현금이 있어 박스에 넣고 돌아섰습니다.

근원 없는 미안함과 죄송함 같은 기분이었지요.

병원에서 한 시간 정도를 보내고 전철역을 향하는데, 그 노인은 주섬주섬 자리를 접고 있고,

그 앞에 많아 봐야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통통한? 사지 멀쩡한 청년이 스티로폼 박스를 놓고 앉아있습니다.

이게 임무 교대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자리마저도 젊은이에게 빼앗긴 것인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안 좋더군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평화롭고, 유람선에서 관광객들이 꺅꺅거리는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고, 단란한 가족들은 피크닉을 즐기는 목가적인 정경을 바라보다 보니 공연히 착잡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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