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현상
약을 끊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불안증을 낮춰주는 약의 투여량이 5 mmg으로 줄었을 뿐이었다.
그래봐야 같은 용량의 알약 2개가 1개로 줄어든 것뿐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된 상태로 느껴져 내가 먼저 의사에게 얘기했고 의사가 동의해서 타오는 약은 그대로 복용했다.
평소와 같이 약을 먹고 삼십여분 지나 잠이 들었다. 약의 기운에 의지해.
그리고 평소와 똑 같이 몇 번의 뒤척임 끝에 잠이 깨었다.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전신의 힘이 빠져버렸다.
귀신은커녕 신도 믿지 않는 나였지만, 관용적인 표현으로 ‘물귀신이 뒷덜미를 당기는’ 딱 그런 느낌.
과장된 표현이 아닌, 문자 그대로 내 머리부터 상하체 모두를 땅바닥이 강하게 끌어당기는 느낌.
처음에 당황하고, 이후에는 무력하였으며 저도 모르게 인근의 어디든 앉을 곳을 찾는 모습이 마치 풍맞은 노인처럼 되어버렸다.
그렇게 이틀여를 고생하면서, 내가 가야 하는 곳이 내과일까 진단방사선과 일까 대체 어디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힘겨워 간신히 하루를 버텼는데 가까운 거리를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것조차 두려울 지경이 되었다.
그러고서야 문득 생각이 들어 정신과를 찾아갔는데, 마침 전담 의원은 쉬는 날이라 해서, 무조건 아무 원장이나 상관없다 하며 대기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힘없는 시선으로 대기실에 앉아있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 보다 노인, 혹은 훨씬 젊어서 왜 여기 앉아있는지 모를 사람들.
노인들은 오랜 단골인지 카운터의 접수원들에게 시답잖은 농담도 하고, 진료실을 들락날락하고서는 뭔 약을 큰 뭉치로 받아서 나간다.
젊은이들은 대개 초진인지 지난해에 내가 받았던 질문지를 받아서 인상을 찡그리며 뭔가 체크를 한다.
아마도 ‘ 당신은 죽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 ‘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일주일에 며칠 생깁니까? ’ ‘ 매일 생각이 난다면 언제부터 그런 증상이 있었습니까? ’ 등등.
처음 마주하는 원장은 컴퓨터로 내 진료기록을 훑어내리며 말한다.
- 아직 처방약이 남으셨는데 무슨 문제가 있으세요?
- 이유는 모르겠는데, 지난주 목요일에 처방을 받은 후 지금까지 갑자기 뒷덜미를 잡아다니는 느낌이 생겨서요.
- 그러시군요. 어떤 느낌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원장의 말에 앞서 내가 느꼈던 기분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 애썼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의자엔 앉아있지만 누군가 있지도 않은 머리 끄덩이를 당기는 기분입니다.
- 아, 그러시군요. 아무래도 불안증 완화를 위한 약을 갑자기 줄여서 나타나는 증상 같습니다.
- 네? 그러면 앞으로도 이 약을 줄이거나 끊기가 힘들다는 말인가요?
- 아니요. 아직은 증상이 완화된 게 아니라 그렇고, 천천히 투약량을 줄여가면서 상태를 보는 겁니다. 아마 이 약을 추가로 원래 양만큼 복용하시면 그 증상이 완화될 겁니다. 하지만 임의로 양을 늘리지는 마시고, 별로 나아지지 않으시면 꼭 재방문해주세요.
말을 마친 의사는 키보드로 처방전을 툭툭 입력하고, 나는 기운 없이 목례를 하며 진료실을 나서서 다시 대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그리고, 밤에 약을 먹고 잠이 들고나서 다음날은 이전처럼 멀쩡한 정신상태로 돌아왔다.
물론 늘 그렇듯 약간의 어지러움은 있었지만.
그다음 주 정기 진료 때 나의 담당원장에게 물었다.
- 지난주에 이러저러해서 방문했었습니다.
- 네. 진료기록이 있군요. 지금은 어떠세요?
- 지금은 나았습니다. 오전 중에 늘 조금 어지러운 것 빼고는.
- 그러시군요. 당분간 지켜보시죠.
- 선생님. 여쭤볼 게 있는데 솔직히 저는 몸에 좋다는 비타민 하나 먹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약에 뭔가 의지 한다는 것이 너무나 싫거든요. 감기약도 증상이 나아지면 더 안 먹어요. 이런 약에 의지해서 제가 견뎌야 하는 게 너무나 싫습니다.
- 그러실 수 있어요. 하지만 이 계통의 약들은 중독이 되는 게 아닌 약제들이고, 임상시험이 끝난 제재라서 괜찮습니다. 사실 평생 이 약을 드시고 평범하게 사시는 분들이 많고, 의사들 중에도 많습니다. 차차 좋아지면 줄여가는 거죠.
글쎄요, 이게 맞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