²두 바퀴 위의 단상
종말의 날 1
덥다. 이제 6월 중순이니 더운 게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해도 좀 덥다.
너무 여름 날씨가 갑자기 되어 버리니 적응이 잘 안 된다.
오전 10시 정도만 되어도 흡사 자카르타의 아침 날씨처럼 습도 높은 더위가 달라붙으니 대체 에어컨이 없었던 과거에도 이랬었나 싶다.
그래봐야 불과 수십 년 전도 아닌데 말이다.
원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이른바 ‘연속극’ 말이다.
과거 티브이를 가진 한국인의 65.8%가 시청했다는 드라마부터, 공식집계 역대순위에 오른 드라마를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태조 왕건은 고려사를 읽었으니 패스. 여명의 눈동자도 소설로 읽어서 패스다. 여명의 눈동자는 일간스포츠에 오랜 기간 신문소설로 연재를 했었고 시리즈로도 출간되었었으니 이미 다 읽어서 패스.
최근년도에 시청률이 좋았던 드라마들은 웹툰 원작이 많으나 로맨틱 달달 웹툰은 잘 안 보므로 패스.
솔직히 드라마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원작이 분명히 있다 해도 대부분 드라마는 원작과 별개로 진행이 될 것이니 별로이고, 드라마 자체 원작이라고 해도 텍스트로 느껴지는 상상의 스케일보다 화면은 항상 덜 떨어지는 편이라서 안 보려고 한다.
드라마를 즐기시는 분들을 폄하하거나 그런 의미가 절대 아니다.
단지 내 취향이 그러하고, 눈으로 보게 되는 영상은 인간에게 일방적인 감정 강요를 많이 한다거나, 시대물을 보면 고증이 형편이 없거나, 애정물은 비현실적인 막장이 너무 넘쳐나는데 또 어떤 분들은 ‘막장’이 드라마의 백미라고 하니 뭐, 개인 취향이다.
그랬던 내가 요즘 드라마에 빠졌다.
게다가 원래 흥미라곤 없던 “미드‘에 말이다.
나 자신이 골수 국수주의자는 아니지만, 미국 영화 대부분이 항상 미국을 세계의 위기를 구하는 히어로거나 마지막 장면에 성조기가 나부낀다거나, 인종차별로 욕먹을까 봐 흑인과 동양인을 양념처럼 끼워 넣는다거나, 어떨 때는 아예 대놓고 인종차별 대사를 막 날리는 꼴이 가소로워서 다.
정정한다. 절대 가소롭지는 않다. 감히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기간을 인류의 지배자적 위치에 있는 국가를 가소롭다고 생각하겠는가.
단지 ’ 가소롭고 싶은 ‘ 소망일 뿐이다.
안 보던 미드를 보게 된 건 좋아했었던 하드보일드 소설이 드라마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 잭 리처‘라는 하드보일드 시리즈물로 우리나라에서도 출간이 되었었는데 작가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Lee Child (1954년 10월 29일~ ) 직장에서 해고당한 후 그는 뒤늦게 소설을 쓰기로 결정한다. 1997년, 43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그의 첫 소설 추격자를 발간하였으며 1998년에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의 필명인 Lee는 Le Car를 잘못 발음한 농담에서 나왔으며 Child는 그가 자신의 소설들을 놓고 싶었던 서점 코너의 위치를 나타낸다. Raymond Chandler와 Agatha Christie 사이에 자신의 책이 놓이기를 바란 것. 주인공의 이름을 Reacher로 정한 것은 그가 소설을 쓰기로 결정했을 때 그의 아내가 그에게 '당신이 소설 쓰는 거 실패하면 언제든 슈퍼마켓 직원( Reacher) 하면 돼'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름은 지금도 만족한다고 한다.』
토종 영국인, 그것도 군 출신도 아닌 사람이 엉뚱하게 미군 특수부대 전역자를 대상으로 소설을 쓴 것도 엉뚱한데, 그야말로 막장급으로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내용들도 재미가 있었다. 톰 클랜시의 소설들이 대전쟁을 테마로 한다면 리 차일드는 그냥 미국판 마석도 형사 같은 인물을 내세운다. 그야말로 B급 막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뭐. 범죄도시라는 영화가 예술점수로 메가 히트를 한 건 아니지 않나?
그 잭 리처를 영화로 찍는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영화관에 자주 안 가는 나 이지만, 이건 봐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주연으로 톰 크루즈가 내정되었다고 해서 안 봤다.
일단 소설상 캐릭터가 190이 넘는 육중한 인물인데, 톰 크루즈를 앞에 두고 상대방이 ’ 어이, 거인 친구‘라는 대사를 친다고 상상만 해도 오글거려서.
그러나 얼마 전에 우연히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잭 리처를 미드로 만들었다는 걸 알았고, 이미 방영이 되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응이 그닥...인 것 같았지만, 맛보기 영상을 보고 나는 그 주인공 역할에게 빠졌다. 실제로 그 배우는 잭 리처 소설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으니까.
넷플릭스고 뭐고 그런 건 구독을 아예 안 하는데, 보니까 이 미드는 아마존에서 방영했던 모양이었다.
그 길로 아마존에 가입해서 시리즈를 주말에 몰아서 다 시청하고 다시 아마존을 해지해버렸다.
아마 시즌3가 나오면 다시 가입할 거다.
아, 서설이 길었다.
그렇게 미드를 갑자기 보게 되니 영화에 비교해도 떨어지지는 않을 스케일과 아낌없는 액션씬이 좋아서 다른 미드는 어떤가 들여다보았다.
물론 원작소설을 읽은 게 아닌 이상, 미드를 몇 시간씩 들여다볼 생각은 없어서 유튜브에 넘쳐나는 미드 압축본(시리즈를 시즌별로 영상과 포인트 장면들로 1시간~2시간으로 압축해 놓았다. 저작권 관계는.. 모르지만)이 많아서 흥미롭게 짧은 시간 안에 핵심적인 장면과 내용이해가 가능하니 더 좋고.
뭔가 서설을 늘어놓지 않고 핵심만 쪽집개 과외를 받는 기분이랄까.
대부분 그런 유투버들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원 제목 보다 좀 더 자극적인 문구를 앞세워 영상 섬네일에 붙이곤 하는데, 그게 또 약간 코믹한 워드가 많아서 나름의 재미가 있다.
대충 기억하자면 ’ 다 죽일 거야 ‘ ’ 다 죽여버린다 ‘뭐 이런 식.
한국넷플릭스 드라마 이건 미드 이건을 막론하고 어그로 (어그로 : 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기 위하여 인터넷 게시판 따위에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일.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troll, trolling, [축약] aggravation, 다음 사전 인용)
를 끌기 위해 온갖 자극적 문구가 난무하는데, 가장 많은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 인류멸망‘ ’ 지구멸망‘’ 마지막 생존자‘ 뭐 이런 것들이었다.
좀 더 극단적으로 편향성을 가미하여 생각한다면 현재 미드를 배포하고 시청하는 전 세계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택하고 보는 장르가 ’ 멸망‘에 대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대강 축약본을 살펴보면 늘 시작이 비슷하다.
미래 혹은 근현대 어느 시점을 놓고 어느 평화롭던 날. 악몽이 시작되었다. 거나, 대형 재난으로 인류의 대부분이 사라진 미래 어느 날. 이런 식으로 도입부가 시작된다는 공통점.
그리고 예전의 디스토피아 dystopia 적인 시놉시스 synopsis로 시작하여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아닌 모호한 결말을 둬서 늘 후속 시즌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로 맺음. 이렇다.
해당 드라마가 잘 되었다면 당연히 시즌2를 찍을 거고, 잘되었다고 해도 제작사의 문제 혹은 배우나 스태프의 문제로 판이 깨지거나, 어찌 되더라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현명하니까.
어떤 경우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웃지 못할 드라마도 있지 않은가? 대장금이 히트를 치자 원래 제작분을 넘겨 내용을 끌고 끌다가, 주연배우가 못하겠다고 드러눕고서야 종영을 했다는 것 아닌가.
서설이 길었다.
다음 편에서는 드라마 이야기가 아닌, 실제의 멸망에 대하여 좀 생각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