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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n 22. 2024

아직, 복약 중입니다 7

낙인이 찍히다

아직 복약 중입니다 7     


2주에 한 번 의원을 간다.

이번에 약이 거의 다 떨어졌기에 의원에 갔더니 뜬금없이 ‘공사 중이라 휴진합니다’라고 문 앞에 A4 용지 한 장이 압류경고장처럼 붙어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싶어 기웃거리자 근무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얼굴 익은 카운터 직원이 ‘죄송합니다. 오늘은 내부 공사가 있어서 진료가 안되니 내일 와주세요.’ 한다. 그런데 얼핏 보니 안에 원장이 있는데?

원장도 골프셔츠를 입고 의사 아닌 척 앉아있었다.

‘ 아, 여기도 파업에 동참하는 건가’ 깨달았다.

뭐 환자가 힘이 있나. 돌아설 수밖에.

그러고 보니 나는 환자인가? 아닌가? 헷갈린다.

그렇게 약통에 긁어모은? 남은 약으로 하룻밤을 견뎌내고 다음날.

공사는 무슨. 뭐 하나 달라진 것 없이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의원이 돌아가고 있다.

그래. 원장도 공연히 하루 공쳐야 했으니 속상하겠지.

자영업자가 다 그렇지 뭐 싶다.     


다음날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진료실에 들어섰다.

어제 공치고 돌아갔다고 특별히 카운터에서 우선 진료를 해준다.

백색의 천정과 역시 순백의 벽. 그리고 순백의 문. 또 하얀 방.

그리고 의사의 하얀 가운.

정신적으로 멀쩡한 사람도 이런 분위기에 들어서면 어쩐지 긴장을 해야 할 것 같네.     


- 좀 어떠세요?

- 여전합니다. 잠들고 6시간 전에 깹니다.

- 음... 기분은 어떠세요?

좋지도 딱히 나쁘지도 않고 일상적인 일에 대한, 아이에 대한 고민들이죠.

- 네 그건 평범한 거니까요.

- 네

- 그러면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이 처방을 드리겠습니다.

- 네     

거의 3분 각.

이러면 그냥 의원도 키오스크 처방전으로 해도 될 것 같은데.

전에 의사인 동창 녀석이 의대 중에서 정신과는 아주 성적이 좋아야 간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하긴, 종일 정신이 나간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도 피곤은 하겠지.

정신과 의원의 약은 대부분 약국에서 처방전으로 받아가는 게 아니다.

항정신성, 마약류, 이런 법적 문제 때문에 의원에서 직접 조제한다.

그러면 또 수입이 더 쏠쏠하겠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정신과 의원에서 포장해 주는 약봉투는 대개 진료과목이 안 쓰여있다.

그냥 00 의원이라고 쓰여있다. 이건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방송매체나 여기저기서 정신과 질환은 그냥 감기로 내과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니 숨길 병도 아니고, 숨길만큼 창피한 것도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예외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인식도 그렇다.     


- 불면증 약을 먹고 있어요

- 아이고 잠을 잘 못 주무시는구나

- 네

- 어떡해요. 잘 주무셔야 하는데     


- 우울증이 있어서 불안장애 약을 먹고 있어요

- 네? 정신과 다녀요?

- 네

- 저런 어쩌나.... 근데 그 약 드시면 일은 괜찮겠어요?     

- 괜찮은데요. 왜요?

- 아니 뭐... 아무래도 판단이나 감각이.... 흐리흐리


같은 사람의 두 가지 반응이다.     

2년 전에 발단이 되어서, 당시에 두 가지 증상이 심해서 정신과 의원을 몇 번 갔었다.

그리고 또 불안감이 심해져 생명보험을 추가로 가입하려고 했다.

보험 설계사가 안된단다.

정신과 진료 흔적이 나와서 얼마동안은 가입이 안된다고 한다.

헐.

이런데 뭔....


- 저 잠이 안 와서 그냥 수면제 처방받는 건데요?

- 아뇨. 보험사에서는 잠재적인 위험군으로 분류하거든요.

- 아니, 나라에서도 괜찮다는데 그게 뭐죠?

- 약관이 그렇습니다. 죄송해요.     


아, 우울증 돋네.

뭐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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