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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01. 2024

평화로운 초딩생활 6

사라진 가방을 찾아서

평화로운 초딩생활 6     

 

주말이었다. 아이 씐나.

물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만나고 수다 떨고 운동장에서 뛰고 그런 거 다 잼있다.

그치만 요새는 잠시 잠잠했던 남자애들이 마치 주인이 버린 들개처럼 날뛰어서 교실이 싫다.

그냥 여자애들끼리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모여 이야기하고 있음 지네들 끼리 놀면 되는데.

굳이 껴들어서 말꼬리를 잡고 놀리거나 반박하거나, 공연히 주변에서 휘휘 주먹을 휘두르거나 헛발질을 하다가 재섭게 거기 걸린 여자애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그러면 담임샘은 또 서로 화해하라고 하고.

이게 무한반복이라 지겨워.     


무튼 금요일 오후에 학교 끝나고 바로 정문 맞은편에 있는 피아노 학원 가서 땡까땡까 하고, 재민이와 만나서 학원이 있는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놀다가 저녁시간이 되어 집에 와서 맛나게 저녁을 먹고, 다시 재민이와 핸펀으로 영상통화를 하면서 놀았다,

토욜은 오전엔 영어샘이 오시니까 영어샘과 함께 공부... 라기보다는 서로 대화를 하는 거다.

물론 영어로 하는 건데 영어 유치원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잼난다.

그리곤 오후에 라니 라는 친구를 불러 집에서 놀았다.


게다가 일요일은 둑흔둑흔.

초등 들어와서 진짜 첨으로!

나 혼자 재민이네 집으로 놀러 가기로 한 거다!

재민이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어서 나를 초대한 건데, 게다가 점심은 냉면을 시켜 먹기로 했다!     


대망의 일요일.

처음으로 친구네 집에 가서 좀 걱정이 되었지만,

등교 때마다 재민이 아빠 엄마와 동생들을 봤어서 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재민이와 점심부터 저녁까지 실컷 수다 떨며 놀다가 집에 와서, 맛나게 저녁을 먹고 아빠가 받아놓은 목욕물에 ( 물에 향이 넘나 좋은 핑크색 오일도 넣어주신다!) 척 담그고 있으니 최고의 주말이었다....

라고 생각하는데.     


아빠가 묻는다.

‘너 알림장에 내일 숙제 제출 있던데 했니? 그리고 주말에 실내화 빨아야 하는데 어디 있어? ’

당연히 내 책가방에 다 있으니까 ‘책가방에!’라고 소리 지르곤 욕조에서 애들패드를 켜서 즐겨보는 쇼츠를 틀었다.

아빠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 너 책가방 네 방에도 없고 안방 책상에도 없는데 어디 있어? ’     

음.... 갑자기 머리가 하얘진다.

어리둥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욕실에 머리를 디밀고 묻는다.

‘ 너 금요일에 책가방 가져왔을 거 아니니. 금요일 하교 후에 안 갖고 왔어? ’

생각을 해보니 금요일 오후부터 지금까지.

전혀 가방은 기억에 없다. 헐.

아빠가 금요일 하교 후 뭐뭐 했냐고 물어서 사실대로 말했다.

아빠가 인상을 팍 쓰며 갑자기 현관문으로 뛰쳐나갔다.

아, 이런 일이.

뭐 아빠가 나갔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아빤 ‘해결사’ 니까.     

좀 있다가 아빠가 다시 씩씩대며 얼굴이 벌게져서 들어왔다.

‘ 야! 너 가방 찾으러 아빠가 허리 다칠 뻔했는데 넌 태평하게 쇼츠나 보고 있어? 아빠가 숙제 얘기 안 했으면 내일 아침에 어쩌려고 했어? ’


음.... 뭐 아빠가 다 해결해 줄거라 생각했었지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다. 내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거든.

아빠가 저리 화를 내지만 그래봤자 5분. 그담에는 알아서 풀어지니 뭐.     

씻고 나와서 베란다를 보니 책가방도 물통가방도 모두 거꾸로 널려있고, 책과 노트는 물이 뚝뚝 떨어지게 펼쳐있고, 구데타마 필통은 캐릭터 모양대로 축 쳐져 매달렸는데 연필까지 폭삭 젖었네.

아, 토요일에 비가 엄청 왔었지.

아빠가 학원 아파트 놀이터가 어쩌고 저쩌고.

아파트 경비원이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학교 정문까지 넘어가서 다시 넘어오느라 힘들었다고 어쩌고 저쩌고,

뭐래.


돌아오면 된 거지 뭐.

그리고 알림장에 있는 영어숙제 단어장은 갖고 오지도 않았다고. 어차피 가방 있었어도 숙제 못한다능.     

욕실에 쭈그리고 앉아 투덜대며 저녁 늦게 실내화를 빨고 있는 아빠를 보니 좀 미안하긴 했다.

아빠. 미안해~~

아빠 늙으면 내가 보살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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