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다 적이네
평화로운 초딩생활 7
아빠와 나는 아직 한 방에서 잔다.
실은 ‘아빠방’에 내가 빌붙어 자는 거다.
내 기억으로 아빠와 떨어져서 잔 적은 이 년 전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 말곤 없다.
내 방은 낮에는 내 놀이터고 공부방이니 뭐 낯설진 않지만, 그래도 그때를 생각하면 넘나 싫다.
안 그래도 병에 걸려 아픈데 열도 나는데 어디 말할 데도 없이 혼자 침대에서 자니까, 넘나 겁이 나서 밤새 불을 환하게 켜놓고 자고, 밥도 방에 가져다주시면 혼자 먹었다.
혼자 먹고 자고, 챙겨주는 옷 갈아입고, 매일 이불 세탁을 하고, 가족끼리도 마스크 쓰고 비닐장갑을 껴야 말을 할 수 있고, 너무나 지겹고 무섭다.
그 이후로 나는 아직은 혼자서 잠들기가 무섭다.
그래도 3학년때는 아빠와 잠을 자도 늘 여기저기 불을 켜놔야 해서 아빠가 좀 역정을 냈지만, 이제 4학년이 되어서는 불을 켜고 자진 않는다.
게다가, 아빠와 잔다고는 해도 단지 ‘한 방’에서 자는 것이지 붙어 자는 것도 원래 아니다.
아빠 침대와 내 침대는 내가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로 멀다.
아빤 뻑하면 나보고 '너 언제부터 혼자 잘 거냐. 이제 혼자 자야 할 나이야. '하신다.
하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직은 무섭다.
잠들기 전에는 늘 비슷하다.
아빠는 아빠책을, 나는 내 책을 꺼내 읽다가 아빠가 '이제 자자~' 하면 물을 한잔 마시고 불을 끈다.
아빠와 내 침대 근처에는 자기 전에 늘 아빠컵, 내 컵에 물이 들어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빠가 내가 두 컵에 알아서 ‘자리끼’ (그게 뭔지 알게 뭐람. 옛날아빠!)를 떠놓으면 다음날 아침 500원을 주신다고 하셨다.
난 신이 나서 물을 열심히 떠다 놓고 다음날 아침 아빠로부터 500원 동전을 받곤 했다!
아이 씐나.
근데, 문제가 생겼다.
아침에 동전을 받고 분명히 침대옆 내 옷장 위에 올려놓은 거 같은데, 늘 없었다.
기억이 안나는 거다.
뭐, 오늘 밤 지나면 아빠가 또 줄 테니까.
혹시 아빠 동전 못 봤냐고 물으면 거꾸로 네가 어디에 놨는데? 하고 뭐라 신다.
그런데.
한 두 번도 아니고 이게 매일 반복되는 거다.
정말 정말 끝없이 반복돼서 도무지 아빠에게 받은 500원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난 집 어딘가에 혹시 쥐가 있는 거 아닌가 겁이 나서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아빤 ' 콘크리트 집에서는 쥐가 못살아! 아빠가 건축박사 라니까?' 하며 짜증을 낸다.
뭐야 이게. 아빠가 뭘 공부했든 쥐가 그걸 알 바가 아니잖아.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에 나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세수를 하고 나오는데 아빠가 옷장 위에 있는 500원을 슬그머니 바지 주머니에 넣는 거다.
- 아빠! 뭐 해?
내 외침에 아빠는 흠칫하더니 징그럽게 미소를 짓는다.
- 어? 어. 여기 동전이 굴러다니더구나?
- 아빠! 지금까지 아빠가 매일 동전 주고 도로 가져간 거였어?
다그치자 아빠가 두 손을 허리에 척 올리곤 뻔뻔하게 근엄 모드를 한다.
- 너. 아빠가 네 돈 관리 잘하라고 했지? 받으면 즉시 동전지갑에 넣고 용돈 기입장에 올려야 하잖아? 네가 그냥 놔두고 잊고 가길래 아빠가 챙긴 건데 왜? 돈에 대해서는 아빠도 믿지 마!
세상에.
이런 거였어? 그럼 나는 2주 동안 같은 동전을 매일 받고 다시 아빠가 훔쳐가고.
뭐 이래.
아 진짜 세상에 믿을 게 없네.
무튼 그다음부터 ‘자리끼?’ 인지 뭔지를 갖다놓긴 한다.
500원 받는 건 아빠도 나도 서로 말도 않고 주지도 않는다.
뭐야. 아빠도 실천력이 떨어진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