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능선오름 Jul 05. 2024

평화로운 초딩생활 8

옛날이야기

평화로운 초딩생활 8     


아빠와 나는 아직 한 방에서 잔다.

실은 ‘아빠방’에 내가 빌붙어 자는 거다.     

보통은 아빠도 나도 각자의 책을 읽다가, 아빠가 ‘자 자~’하면 화장실 다녀오고 불을 끄고 수면모드.

이랬는데 이상하게 학년이 올라갈수록 잠이 잘 안 온다.

그래서 요새는 아빠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아빠의 높낮이 없는 잼없는 말투를 듣고 있으면 잠이 잘 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빠에게 한국사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었다.

그러면 아빠는 처음 한반도 구석기가 어쩌고 저쩌고 뗀석기, 간석기.... 어쩌고 저쩌고를 하는데, 

문제는 다음날 내가 기억하는 것은 ‘구석기’ 밖에 없다.

그러면 마치 잃어버린 500원 동전처럼 또 뗀석기, 간석기... 하다가 또 잠이 들어버린다.     


그래서 좀 주제를 바꿔 달라고 했다.

학교서도 배우는 ‘삼국시대’ 같은 걸로 말이지.

근데! 아빠는 삼국시대 시작을 꼭 옛날 옛적 고조선이라는 나라가....로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또 다음 날 밤에 내 기억에 남은 건 ‘옛날옛적에... 뿐인 거다!

그러면 좀 다른 나라, 이를테면 중국이나 일본, 아니면 해외 나라들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바꿨다.


그러면 아빠는 또 이제 ’ 중국은 삼황오제가 어쩌고 저쩌고 여의와 복희, 황제가 어쩌고 저쩌고.

아... 도저히. 외우기도 힘들어.

일본으로 넘어가면 뭐 창조신 셋이 있는데 어쩌고 저쩌고, 현재 천황의 시조로 불리는 건 아마테라스 어쩌고 저쩌고. 하...

미친다. 미쳐.

이집트, 그리스, 유대, 힌두. 아 도저히 외지도 못하겠다.     

그래서 이제 외울 필요도 없고, 딱히 이름이 안 나오는 군대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아빠가 군대에서 오래 있었다고 하니까.

오, 요건 뭐 외울 필요가 없다. 어차피 다 못 알아들을 이야기다.

학교서 중국에서 온 애들끼리 서로 @#$%^&* 하는 거처럼 알아들을 게 없고 알아들을 수 없으니깐 그냥 잠이 온다.     

근데 이걸 아빠가 눈치를 채었는지, 어차피 네가 알 필요도 없고 안다고 뭐 쓸데도 없는 아빠 군대얘기를 그만하겠다고 했다.

아 놔.     


그러더니 갑자기 아빠가 다른 옛날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가 있는 지방이 메.. 뭐라고 있었는데 거기 사람들이 땅에 선을 그어서 서로 땅따먹기를 해야 하다 보니 땅을 나누는 법이 생겼네,

그러다 보니 방향을 알아야 해서 360도로 나눈 게 지금까지 쓰인 다는 둥,.

그렇게 땅을 정확히 나누려고 하다 보니 기하 방정식과 삼각함수가.....

오. 이건 신박하다! 대박이야!    


이건 뭐 오 분 안에 꿀잠 각이지.

별로....

가 아니라 진짜로 잼있는 얘기가 아닌 덕분에 나는 요즘 아주 달게 잔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화로운 초딩생활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