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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11. 2024

평화로운 초딩생활 9

살인 미수 사건

평화로운 초딩생활 9     

  

오늘은 학교에서 아주 큰 사건이 있었다.

먼저 말썽쟁이 영준이 이야기로 시작해야 하는데, 걔는 2주 전에 갑자기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고 온 거다.

주말에 어디서 놀다가 다쳤다는데, 하필 가운데 손가락이 빳빳하게, 게다가 붕대로 하얗게 감겨있으니 뭔가.... 미국식 퍽큐를 날리는 거 같아서 여자애들끼리는 아무래도 엄살에 일부러 저렇게 하고 온 거 아니야? 하는 말이 돌았다.

뭐 그 정도라면 깁스를 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저렇게 수업 내내 퍽큐를 날리고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다음날 체육시간에 그건 사실임이 드러났다.


보통 그 정도로 아프면 체육활동을 하지 말아야는데, 그 정신머리 없는 애가 그럴 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지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하필 왼손으로 바닥을 짚은 거다!

영준이는 데굴데굴 구르고 체육샘이 일으켜 보니 붕대에서 피가 흘러서 양호샘에게 고고고~

많이 다쳤는가 싶어서 살짝 걱정도 되는데 다른 여자애들은 꼬소하다고 킥킥.     

그다음 날도 체육활동이 있었는데 일종의 피구였다.

공.. 은 없지만 몸을 터치하면 아웃이라 나도 숨이 찰 정도로 뛰었으니 뭐.

애들이 정말, 넓은 강당이 꽉 찰 정도로 미친 듯 돌았다!


그 와중에 내 친구 우영이와 영준이가 부딪쳐버렸다.

우영이는 여자지만 우리 반에서 몸집이 제일 크고 키도 제일 크다.

자기 말로는 자기는 중국서 와서 2년 있다가 학교를 들어와서 실제로는 6학년이라나.

그러거나 말거나 걔도 하는 짓은 가끔 2학년 같으니까 뭐.

근데 6학년 언니들도 오빠들도 우영이와 몸집이 비슷하긴 한데 몸무게는 아마  우영이가 전교 최고? 같음.


암튼!

영준이 보다 몸집도 크고 무겁고 한데, 영준이가 바닥에 넘어지고 우영이는 뛰던 바람에 하필 영준이의 퍽큐를 밟고 지나간 거다.

‘악’ 소리가 나더니 손가락을 밟은 것도 모르고 지나간 우영이가 소리에 놀라 멍청히 서있는데,

영중이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갑자기 뒤로 슬슬 뒷걸음질을 친다.

그렇게 강당 벽에 영중이 등이 닿자마자 마치 피구공이 던져지듯 영중이가 우영이를 향해 엄청나게 빠르게 만화처럼 돌진을 했다!

멍청히 서 있었던 우영이는 갑자기 달려온 영중이를 피하지도 못했는데 영중이의 어깨가 우영이 가슴에 팍! 꽂힌 거다.

몸무게도 무거운 우영이가 갑자기 공중에 붕 뜨더니 뒤통수로 냅다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꽝!’     


밤에 아빠에게 저녁에 이 사건을 전달했더니 연두부를 떠먹은 사람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 충격량은 물체에 작용한 힘(F)과 시간(t)의 곱으로 표현되는 물리량이고 뉴턴의 운동 제2법칙(가속도의 법칙)에 의하여 F=ma 이고, 가속도(a)는 단위 시간에 속도변화량이므로 결국 충격량의 크기는 운동량의 변화량(ΔP=mΔV)과 같다."


헐. 재미없어라.     

여튼, 우영이는 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고, 이리저리 날뛰던 애들은 모두 입을 헤벌리고 음소거.

쓰러진 우영이 앞에 우뚝 선 영중이 놈만 혼자 씩씩거리며 화가 덜 풀린 모양.

쓰러져 아무 움직임이 없던 우영이가 갑자기 ‘우와앙!’ 엄청난 소리로 비명+울음을 터뜨렸다.

난 그 아픔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안다.

나도 전에 부엌에서 폴짝폴짝 맨발로 뛰다가 휙 미끄러져 뒤통수부터 타일바닥에 부딪힌 적 있었거든.

아빠가 놀라서 뛰어올 때까지도 머리가 깨진 고통에 아무 소리도 못 내다가, 아빠가 나를 안아서 들어 올리자마자 ‘우왁!’ 하고 울었으니까.


근데! 우영이가 울건 말건 영준이 놈 얼굴은 여전히 분이 안 풀린 씩씨익이다.

아무래도 갸는 분노조절장애 같다니까.     

울음소리에 담임샘이 달려와 영중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 영중이 너! 너 방금 살인미수 한 거야! 머리로 넘어지면 죽을 수 있어! 너 어떻게 하려고 이래?"

샘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영중이가 제자리에 털썩 앉더니 발버둥 치며 통곡한다.

"우영이가~아앙. 먼저 다친 손가락을 ~아아악 먼저 밟았는데~ 아앙 우영이 보곤 뭐라고 안 하고 아악~ 나 보고만 뭐라고 하고 아앙 ~~ 아빠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아아악"

     

헐.

아마도 나는 오늘을 ‘살인미수의 날’로 기억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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