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얼리어답터라 쓰곤 이상하게 다른 이야기들을 나누었으니 오늘은 제대로 제품 후기를 써볼까 한다. design이란 뭘까?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지시하다 · 표현하다 · 성취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의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파생(유래)되었다고 하는 어원설이 있고. 또는 프랑스어 데생(dessin) 즉 어떤 대상을 그린다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는 어원설이 있다.
건축을 배울 때는 sign 즉 표시하거나 표기하기 위한 그림을 말한다라고도 들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위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옷차림부터 평소 사용하는 물건, 또는 일상의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뭔가 artist 스러워야 한다고 선입견을 가진다.
그런데 그건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아서, 개중엔 괴팍하거나 기이할 정도로 튀는 패션감각이나 기괴한 가구들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다.
보통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애플사의 노트북이나 맥 같은 PC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고, 특히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런데, 맥의 가격은 일반 PC 대비 거의 곱절이다. 성능이 좋은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고 운영체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용도 높은 윈도와도 다르니 사용법도 어려울 수 있다. 매킨토시라 불리는 애플사 컴퓨터가 범용의 IBM PC와 달리 디자이;너들의 선택을 받은 건, 디스플레이와 애플 특유의 하드웨어들이 색감을 잘 나타내고 어쩌고…. 도 있긴 하지만 특별히 색상 출력과 같은 일을 하는 디자이너가 아닐 경우에는 애써 맥을 사서 굳이 윈도 프로그램을 별도로 설치해서 쓰니 첫 번째 선택기준은 ‘예뻐서’ 일게다.
발뮤다 역시 그런 관점에서 시작된 회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가전제품군과는 다르게 확실한 디자인 성향과 다른 구조의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가 열광하게 만든 건 분명하다.
발뮤다의 제품을 가전업계의 애플이라고 부르는 미디어들도 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발뮤다의 제품들은 어딘지 모르게 애플과 결이 비슷하다.
미니멀리즘. 흑 혹은 백의 단조로운 색상. 반짝이지 않는 무광, 또는 반광의 재질들.
작고, 기능적이며, 사용자에게 편리한 충전식 기능들.
그런 맛에 나도 어지간한 발뮤다 제품군은 갖추고 있는 편이다.
물론 디자인도 예쁘지만 ‘편리한 기능’ 이 내겐 주된 이유였다.
개인적으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디자인론을 지지하는 편이니까.
일단 발뮤다의 그린팬. 즉 선풍기 이야기를 하겠다.
선풍기가 무척 조용하다는 리뷰와 가전용 선풍기로는 아마 처음일 듯싶은데 DC 모터를 사용한다는 점이 좋았고 충전식의 선택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가격은 사악하다. 정말 사악하다.
그래서 다음에 선풍기를 살 때는 국내에서 선풍기로 유명한 회사의 선풍기. 사실은 거의 발뮤다 그린팬의 오마쥬? 혹은 베끼기? 같은 형식으로 역시 같은 DC 모터를 장착한 선풍기를 2 마트에서 샀었다.
뭐 어쨌거나 발뮤다 보다 훨씬 저렴하니까.
근데… 뭔가 모자라다. 유사한 조립방식. 유사한 구동체계. 유사한 충전 기능. 유사한 팬의 형태.
그런데 뭔가 좀… 모자라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발뮤다 그린팬을 두 종류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가장 보편적인 모델인데, 좀 쓰다 보면 충전지를 교체해야 한다는 점 빼고는 만족한다.
선풍기 망과 팬을 닦기가 번거로운 건 기존의 일반 선풍기와 같다.
최대 장점은 3단계 까지는 소음이 거의 없어서 어린아이들 재우기 좋다는 점.
모터에서 열이 거의 안 나서 밤새 틀어도 뜨거워지지 않는다는 점.
단점은 가격이 사악하고 충전 배터리를 자주 갈아야 한다는 점.
그래도 만족한다.
두 번째 모델은 일종의 송풍기인데 이것도 DC 모터이지만 소음은 적지 않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던 보네이도에 비하면 약과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또한 충전방식이라 어디든 급히 바람을 강하게 보내기에 좋고, 거실이 넓은 경우에는 꽤 멀리 송풍이 가능하니 만족한다.
단점은 역시 사악한 가격이지만.
발뮤다의 창업주는 엉뚱하게도 일본의 록스타였다고 한다.
아니 스타는 아니고 록스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열일곱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어머니의 사망보험금으로 1년 간 스페인 여행을 하고,
돌아와 10여 년간 밴드를 하다가 정말 우연히, 여자 친구의 집에서 본 디자인 잡지를 보고 필이 ‘꽂혀서’ 가전제품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근데 이 내러티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와 아주아주 흡사하다.
우리나라에도 건물이 여럿 있는 안도 타다오라는 일본 건축가 이야기.
(개인적으로 건축에 ‘작품’ 운운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작품’ 이란 팔리건 안 팔리건 본인 의지로 만드는 것이지 남의 큰돈으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교시절 아마추어 복싱선수를 하고, 공고를 졸업 후 트럭운전도 잠깐 하고는 세계를 돌며 외국 현대건축을 돌아보며 스스로 건축을 공부해서 오사카로 돌아와 건축설계 회사를 만들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 압도적인 인기 건축가이다. 물론 정식 면허는 없어서 건축사무소 인턴시절 사귄 아내의 건축사 면허로 활동한다고 한다.
뭔가 일본인들 중에는 무모한 듯 보이는 일에 대한 개척정신이 있는 부류가 있나 보다.
내가 아는 단편적 일본에 대한 지식 (비즈니스로 알게 된 경우) 은 대개의 일본인 특히 건축 관련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이상으로 학연과 지연에 강하고, 무척 보수적인 편이며 관료사회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곳에서….라고 생각하면 정말 신화가 아닐 수 없다.
어찌 되었건, 그 우연히도 발뮤다의 창업자는 록밴드 출신이지만 아내는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는 것도 같고, 디자인이 예쁘고 성능도 좋은 편이라는 점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