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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11. 2024

인테리어 알려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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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알려줄게요 3     


인테리어를 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압축한다면....이라는 문장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저마다의 이유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초적 이유를 찾아본다면 딱 한 마디로 가능하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라는 말이다.


보통 철학적으로 이 말을 최초로 (우리들이 아는 한) 말한 사람이 플라톤이라고도 하는데,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인간의 타고난 결핍을 언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공간적 환경도 물론 포함되어 있지만 사회구조, 태어난 계급, 교육의 정도 등 전반적인 분야를 말하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는 순전히 건축적인 환경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 속이라는 공간에서 자라기에 본능적으로 따스하고 포근하며 안전한 작은 공간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건 기억도 하지 못하는 의식 저변의 문제이고 태어나 자라난 환경과,  그 환경이 어떤 방식의 환경이냐에 따라서 후천적으로 ’ 학습‘ 된 기억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궁궐 중에서 왕이 동침을 하는 강녕전의 경우, 베르사유 궁전의 마리 앙트와네트가 기거했다는 방을 보면 과연 저렇게 넓고 높고 화려하다 못해 현란한 방에서 편히 잠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반면에 조선시대 강녕전 같은 경우는 프랑스왕에 비해 무척 소박한? 모습이긴 하지만 평균 연령 60~70대 궁녀 8명이 창호문 주변에 둘러싸서 왕이 너무 흥분하면 ’ 자중하소서. 전하‘라고 했다고 하니 숙면을 했다면 왕이 지나치게 호방한 거 아닌가 아니면 후안무치 인가 싶다.   

군왕무치(君王無恥)라는 말이 비교적 최근에 한동안 정치판을 떠돈 적이 있다.

대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왕이 있긴 한가 하는 의문이 드는 웃긴 소리지만 어찌 보면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 계급사회 ' 의 민낯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 같아서 뭐, 인정.

과거 왕들은 수치심이 없다는 의미로 쓰였다는데 출처는 확실하지 않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것이던지.

서양에서도 왕권신수설. 혹은 제왕신권설(帝王神權說)이라고도 번역되어 부르는 ’ 군주는 신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말이 있었다. 근대 이전 왕권의 근거다.

유럽의 왕가들은 왕권신수설을 근거로 시민계층의 혁명을 제압했으며, 20세기 군주인 빌헬름 2세나 니콜라이 2세조차도 왕권신수설에 심취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L’ Ètat, c’est moi 짐은 곧 국가니라 ‘라는 황당한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보다 멀리 이집트의 유명한 왕인 람세스 2세의 왕묘 같은 경우에도 람세스 2세의 석상 좌우로 그 시대 신이었던 존재들의 석상이 놓여있다.

즉 이집트의 왕은 이미 그들이 숭배하던 태양신 ‘라’의 분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도록 스스로도 그렇고 국민들도 교육받아왔던 것이다.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면 고종의 을사늑약 또한 일제의 압력과 배신한 신하들 탓이 있다고는 하나, 내용상으로 백성이라는 존재는 일체 배제하고 천황 대 조선왕으로 계약을 체결한 셈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외국 문서에 조선왕이 일본에게서 돈 받았다는 게 공식문서로 남아있으니 실드 금지!! ㅎㅎ)


왕은 창피한 게 없다는 사고방식은 태어나 길러지고 자라온 환경이 수치심을 누른 셈이다.

루이 14세도 모든 신하를 앞에 두고 접견하는 왕좌 옆에서 바지 벗고 볼일을 보면서 집무를 했다고 하니, 모든 신하가 왕이 똥 누는 풍경을 본 셈이다.

그건 조선왕도 다르지 않아서 일거수일투족을 환관과 궁녀들이 온종일 따라다니며 배변 뒤처리까지 해주었다니 뭐.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

만약 태어나서부터 아기의 방이 300m2 (약 100평)이라면 그 아기에겐 모든 주거형 침실이 다 그 정도라고 인지하며 자랄 것이다.     


학사 때는 공업계 고등학교의 실별 색채적용을 주제로 실제 학교에 색채학에서 말하는 색채별 교육영향평가를 했고, 아파트 실내마감재의 친환경적 적용 사례로 논문상을 받기도 했었다. 석사시절에는 상업공간의 내부 배치와 형태별 고객에 미치는 영향으로 공간분석에 대한 논문으로 졸업했고, 박사에서도 공간론에 대한 주제로 연구를 했었으니 공간구조와 색채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좀 오랜 기간 연구하고 사례조사와 실험을 해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간은 내가 좀 알죠' 따위 자부심 같은 게 있어서 '굳이' 내미는 건 아니다.

오랜 기간을 어쨌든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결과, 내가 완벽하게 깨달은 사실은 나라는 존재는 정말로 건축이라는 분야의 모래알 정도 지식수준 준밖에 없다는 자각이었으니까.

겸양도 겸손도 아닌 현실 인정이다.


인간은 타고난 기질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태어나 자라난 공간, 또래집단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생기는 교육공간, 다른 공간에 대한 체험 유무와 빈도수, 재료의 물성이 가지는 다양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통 미래를 그리는 SF 소설이나 영화들은 대체로 지나치리만큼 기술 유토피아인 세계를 그리거나 그와는 정반대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그린다.

하긴, 지금 당대와 같은 배경이라면 누가 그게 미래라고 이해할까 싶긴 하다.

개인적으로 질릴 정도로 배워온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것에 반감이 깊다.

그리 따지면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볼 때 우리 당 대의 인류는 현대인인가 아니면 근세기 인인가?

마치 오만하게도 스스로를 ‘슬기로운 인간’이라 작명했던 바보들처럼 누구나 당대에는 자신들이 역사상 최고의 어려운 시점이라 생각하고, 미래는 늘 암담하다고 여겼었다.

어느 한 시대, 한 부류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생인류는 1999년에 멸망했어야 하니까.   


  

서설이 길었으나 인간은, 그리고 동물들도 물리적 환경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게 공간을 굳이 ‘디자인’ 하고 ‘설계’ 하는 이유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특정한 색채에 대해 호감 혹은 비호감이 있고 색을 구별하는 동물들도 그러하다.

왜 꽃과 같은  종자식물은 그토록 현란하게 꽃을 피울까? 태양과 토양으로부터 거둔 에너지를 굳이.

결국 이유는 종자의 번식을 위하여 아닌가.

또 보통 식물을 먹는 채식동물에게 일종의 경고색을 줘서 '먹으면 안 돼'라고 경고하는 이유가 아닌가.

꽃 자체가 맛이 있지도 않고 심지어 쓰기까지 하니까.

인간은 대체로 꽃향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꽃향기 그득한 음식을 즐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누 냄새난다며 질색하기에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더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대부분은 즐기지 않고 질색한다.

새들이 꽃 주변에서 꽃 먹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암술 아래 꿀을 먹는 것이고, 아래의 좀 이상한 동물 말고는 꽃, 잘 안 먹는다.


색채에 대한 선호도도 비슷한데, 그건 또 사회적인 제도와 종교, 오랜 기간 익숙해진 색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확연히 달라지기도 한다.

보통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색상이란 전 세계가 통일하여 적용하는 신호등 색상 같은 것이 되겠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색상이 있고,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끼는 색상이 있으며 차분하게 되는 색상도 있다는 것이다.

가끔 그런 시험과 사례를 보다가 갸오뚱 할 때가 있기는 하다.

드문 표본이긴 하지만 색맹, 색약으로 구분되는 사람의 경우에는 색채가 주는 심리적 반응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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