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야 한다
건축이 말을 거네
건축. 인류 대부분이 살고 있고 이용하는 구조물.
의식주라는 인간이 최소한으로 가져야 살 수 있는 삼요소중 하나.
건축의 변방에서 꾸준히 수박 겉핥기로 건축을 맛보며 그것으로 생업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따금 건축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하여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보니 ‘자연’이 보인다.
대자연의 세월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최소 2억 년~25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암석들.
인류의 문명시기라는 게 길어봐야 6천 년 전.
그리고 인류는 무자비하게 자연의 암석들을 채취하여 대공사들을 벌여왔었다.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
그 시대에는 극소수 지배충만 암석을 이용한 대공사를 할 수 있었지만, 농경이 본격화하면서 자본가가 등장을 하게 되니 부를 축적한 개인들도 석재를 이용한 건축들을 했었다.
산업혁명 이후로는 콘크리트가 발명되면서 석회암 광산이 세계적으로 건축의 기반으로 자리 잡았고.
그러니까 인류는 암석이 생성된 오랜 기간의 아주 티끌만 한 기간 동안을 살아오면서 지구를 엄청나게 파헤치고 채굴하여 지구의 암석들을 없애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연상태의 암석도 순환한다.
지하에 있는 마그마가 분출하여 지속적으로 암석을 생성하는 과정을 하와이나 아이슬란드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기작들은 아주 오랜 시간의 과정을 거쳐야 현대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암석으로 진화한다.
고대의 건축들은 당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견고하고 가장 구조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형태의 물질을 이용한 것이다.
석재구조가 대표적이다.
석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흙벽돌을 이용하여 장대한 지구라트 같은 구조물을 축조했다.
비가 거의 없는 지역이라 가능했던 부분일 것이다.
대개의 다른 지역에서는 종교적 혹은 왕정제에 필요한 구조물 외에 일반 평민들은 가공이 쉽고 비교적 구하기 쉬운 목재 건축물아 주를 이루었었다.
그러다가 콘크리트가 발명되면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들은 모조리 시멘트광산으로 변질이 되어 현재도 꾸준히 산을 없애는 중이다.
건축의 변방이긴 하지만, 건축계에 오래도록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모든 석재 사용을 없애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석유가 그러하고 모든 자원이 그러하듯 석재도 언젠가는 찾기 힘들게 될 것이다.
환경보호라는 프레임에서 보면 이처럼 수십억 년을 거쳐 만들어진 자연을 인간이 마구잡이식으로 훼손한다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오래전에 충북 단양을 가본 적이 있었다.
도로에서 보이는 단양의 산세들은 ‘단양 팔경’을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로 수려했다.
어쩌다가 그 도로 이면의 산 뒤로 돌아가는 길에 충격적인 산의 이면을 보았었다.
엄청난 깊이로 산의 후사면이 파헤쳐져 있고, 거대한 덤프트럭들이 부지런히 산을 파먹고 있었다.
외부 도로에서 보이는 산은 마치 병풍처럼 남겨진 것이다.
도시에 있는 대형 건물들의 외벽에 흔히 대리석이라 부르는 (사실은 대개 화강석이다) 판석재들이 붙어있는 모습이 흔하다.
고대 성당처럼 돌을 쌓아서 만든 게 아닌, 콘크리트 건물의 외벽을 석판으로 붙여서 외장을 하는 것이다.
그건 석재 건물도 아닌 그저 치장을 하기 위한 목적인데, 그렇게 석재판을 만들기 위해 수억 년 이상 만들어진 암석들이 채취되고 가공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파편들이 버려지는 것이다.
일부는 잔골재로 만들어져 콘크리트의 자갈 대용으로 쓰이거나 도로포장에 쓰이기는 한다.
하지만 결국 재사용에도 한계가 있으니, 버려지는 것이 많다.
인간이 지구의 대표적인 지배종이 되었다고 해서 지구를 마음대로 훼손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목재는 다시 심고 키울 수나 있다.
하지만 석재는 그렇지 않다. 또한 석유에서 만들어져 심각한 쓰레기 섬을 만들어내는 플라스틱도 다르지 않다.
인류는 지금 황폐화되어 가는 지구를 떠나 화성에 식민지를 만들려고 애를 써서는 안 된다.
그런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수많은 비용들로 현재 지구를 망치고 있는 인류의 산업체계를 바꾸는 게 비용대비 효율이 훨씬 좋고, 인류의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건축은 변해야 한다.
특히 건축재료와 공법, 자원의 활용방식을 바꿔야 한다.
현재도 지구는 온난화와 대기온실가스 등으로 몸살을 치른다고 하는데,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산업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넓고, 높고, 크고, 창대하게 보이는 건축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인간이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공간은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다.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정치를 위해서, 또는 종교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건축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그게 지구와 인류의 후손을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