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이
오래전 군대 생활을 했을 때 이야기다.
일반 모집병과는 달리 그 두 배에 해당하는 기간 복무를 했으니 의무복무 병사들보다는 조금 오래 생활을 해서 군대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안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어렴풋하긴 하지만,
실제로 위관급으로 근무를 하면서 네 번 정도는 ‘항명’을 한 적이 있었다.
겁 없던 소위 시절에 기억도 잘 안 나는 무슨 부재자 투표가 있었다.
느닷없이 상급부대에서 위관급 장교들을 모아놓고 회식을 한다고 했었다.
동계훈련으로 춥디 추운 눈벌판에서 훈련 지휘를 하던 터라 얼씨구나 하고 사령부에 가니 우글우글 위관들이 모여 있었고 뜬금없는 회식이 시작되고.
뭔 소린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여당에 투표하도록 은근히 교육 아닌 교육을 하는 거였다.
그러려니 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니까.
뭐 일단 춥던 곳에서 뜨뜻한 사령부에 들어가 푸짐한 저녁을 먹는 게 어딘가.
그런데 동계훈련이 끝나고 나서 중대장이 불러서 왈, 병사들에게 회식 때 받은 교육을 똑같이 하라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소위 말하는 ‘쏘위’였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서울 게 없던. 타인들에게는 '돌아버린' 쏘위.
- 장교는 병사를 올바르게 살라고 가르쳐야 하는데 제가 그런 정치적 교육을 할 수는 없습니다
내 어이없는 항명? 에 중대장은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더니 우물쭈물했었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얼굴을 보니 한 대 때릴까? 아니면 이 밥통 같은 소위를 교육해야 하나? 싶은 표정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군사우편'으로 사회와 유일하게 연락을 취할 수 있던 시기인데, 그 우편물조차 X ray로 투사해서 검열을 하니 헛소리 적어 보내면 안 된다던 풍문이 진지하게 돌던 때였다.
그런 마당에 선거를 앞두고 '쏘위'가 소위 정의, 정치 따위를 입에 올리다니.
당시는 철책선을 앞에 두고 있던 최전방이라 간부라 해도 퇴근 없이 행정반 옆에 붙은 조그만 방에서 지내던 상황인데, 저녁에 보니 뜬금없이 중대장이 중대원들을 비좁은 내무반에 모아놓고 그 ‘교육’을 하는 것이다.
내용은 뻔했다.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반드시 '1번'을 찍어야 한다 뭐 이런.
당시 분위기상 미혼의 위관급 장교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당직사관을 하는 때라서, 그다음 날 일석점호 시간에 나는 이른바 정치 교육을 하였다.
-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간에, 선거는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걸로 너희들이 영창에 가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물론 그걸 장담할 근거라곤 전혀 없었다.)나 빽 있어! 걱정말고 소신대로 찍어! (물론 빽이라곤 군용 더플빽 밖에 없었다)
부재자 투표를 하던 날 나는 그냥 아무것도 찍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 투표를 받을 당사자들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므로.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 없던 세상이고 최전방이라는 곳에서 받는 정보란 국방일보 정도밖에 없고 외출도 되지 않던 부대였으니까.
아무튼, 그 건으로 영창에 간 군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두 번째 역시 같은 철책 앞에 근무하던 시기의 이야기인데, 이건 뭐 지금 생각해도 '항명'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는 생각이었지만, 당시에 이 사건으로 여러 가지 질책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그때 군대는 보안사령부라는 조직이 있었고, 각 군단, 사단, 연대까지 보안사 대원들이 파견되어 있었다.
인터넷이 있는 세상에는 유언비어도 많고 근거 없는 정보라는 것도 흔하지만,
전혀 그런 정보가 없었던 당시에도 군대 내에 유언비어는 많았다.
보통 사단에 파견된 보안대장은 소령 계급이지만, 투 스타인 사단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여 상급 보안대에 이첩하는 게 임무라는.
그러다 보니 보통 연대급 부대에는 보안대 중사급이 파견되어 장교와 부사관의 동태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중대급이지만 철책선 근접지역이라 주둔지 앞에 초소가 있었고,
GP(최전방 초소)에 가려면 우리 부대의 초소에서 검문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날도 말뚝 당직사관으로 행정반에서 무료하게, 새벽까지도 멀리서 들려오는 대북 방송과 대남 방송의 불협화음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따라락하고 전화가 왔다. ( 당시 군대 전화는 태엽을 감듯 돌려서 신호를 보내는 전화기였다 )
- 통일! 1 소초병 000 임다.
- 뭐? 무슨 일 났나?
- 그... 보안대 부관님 말임다. 전방에 오토바이가 오기에 암구어 수하를 했더니 갑자기 내려서 때립니다.
- 뭐라고? 뭔 소리야?
- 옆 전초대대 보안대 부관님이 전방에서 야밤에 오토바이 타고 다는 게 자기밖에 없는 거 알면서 감히 수하를 했다고...
" 암구호는 야간이나 전시 상황 같은 피아식별이 용이치 않은 상황에서 상대가 아군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암호. 과거에는 '암구어'라 불렀으나 용어가 변경되어 현재는 암구호라는 용어로 통일되었다. 문어와 답어로 이루어져 있다. 수하 하는 쪽에서 문어를 물으면 답어를 답해야 하는 방식인데, 훈련소에서 처음 배울 때 문어/답어라는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어리바리한 훈련병이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암구호!"라고 수하 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
암구호의 특수성 때문에, 대통령이 와도 알려주면 안 된다고 엄포성 교육을 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무궁화 두 개 대대장도 쩔쩔매며 눈치를 보는 보안대 부관 (중사)에게 감히 초병이 암구호를 대라고 했으니 사달이 난 거다.
- 야, 닥치고 그냥 쏴버려.
- 네? 잘못 들었습니다?
- 야, 쏴버리라니까? 초병 (초소 경계병)은 장군도 못 건드리는 임무야. 그놈 쏘면 휴가 보내줄게.
- 어.... 아무리 그래도...
- 너! 당장 노리쇠 후퇴 전진! 반복해!
- 엇... 넵
수화기를 통해 철거덕 노리쇠 후퇴 전진 소리가 들렸다.
전화기 너머 '어어어... 이 새끼가' 하는 소리도.
잠시 후에 누군가가 행정반 문을 두드리고, 불침번이 암구호를 댄 이후에 그 '보안대 부관'이 들어섰다.
군인 같지 않은 장발머리에 항공잠바 (예전에 간부급들이 입던 나일론 점퍼를 왜 항공잠바라고 통칭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를 걸치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빛이 사나운 사내. 물론 군복에는 아무 표식도 없다.
- 지금, 당직사관이 나를 쏘라고 했소?
나는 모른 척 시침을 떼고 물었다.
- 근데 누구셔?
내 너스레에 보안대 부관은 무척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연병장 너머 도로로 가끔 오토바이 오가는 것만 본 적 있어서 그 오토바이 주인이 보안대 부관이란 말만 들었지 서로 얼굴을 마주한건 그때가 처음이니까.
- 나, 나 모르쇼? 여기 옆 전초대대 부관아뇨?
- 아, 그래요? 그런데 초면인 것 같은데 계급이 어떻게 되시죠?
내 말에 보안대 부관의 까무잡잡한 얼굴색은 거의 흙빛이 되었었다.
- 아, 그.... 중사.. 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장황한 몸짓을 보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야! 너 중사가 소위를 보고 먼저 경례를 하고 용무를 말해야 하는 거 아냐?
이거 진짜 군기가 x 같네. 이거. 보안대면 계급도 없어?
초병을 건드리고 수하에 불응하면 즉결처분해도 되는 거 몰라?
어디서 우리 초병을 건드리고 감히 장교 앞에서 경례도 안 해!
계급장도 없는 군복 입고, 여기 전방이라 밤에 차량통행도 안되는 거 알아 몰라?
내 삿대질에 약간 얼이 나간듯한 놈은 뭐 이런 게 있나 하는 얼굴로 잠시 당황하더니 구시렁대며 나가려고 했다.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 경례! 경례! 너 안 하고 나가면 정문 초병에게 총 맞을 줄 알아!
멈칫대던 놈은 한심한 표정으로 장발머리에 손을 무겁게 갖다 댔다.
나도 정확한 경례 자세로 맞경례를 하고.
뭐 그날 이후에 난 중대장에게도 좀 욕을 먹고, 대대장이 그 보안대 부관에게 달려가 빌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 부관이 우리 초소를 지날 때면 반드시 암구호를 제대로 하게 되었으니까.
세 번째는 다시 또 최전방 사단의 예비사단.
이른바 악명이 자자하던 훈련사단에서 복무할 때였는데, 군수검열이라는 것을 받을 때였다.
실제 보유 군수품을 연병장에 늘어놓고 수기로 작성된 군수품 일지와 비교하며 분실되거나 훼손된 장비가 있는지를 검수하는 것인데, 당시 검열 단장의 계급은 중령이었다.
문제가 하나 발생했는데, 측량 장비 중 한 개가 없는 거였다.
나는 그 부대로 전입된 지 삼 개월쯤 되었던 시기였다.
검열 단장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잃어버린 장비를 물어내야 한다고 준엄? 하게 명령을 했었다.
나는 일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 단장님. 이 일자를 보시면, 제가 고등학교 때 장비가 이미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걸 왜 제가 책임져야 합니까?
당돌한 질문에 검열 단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 아니! 그래도 지금 네가 그 직책에 있으니 책임져야지!
- 단장님. 그러면 6.25 전쟁 때 후퇴 책임도 제게 있습니까?
동문서답 같은 질문에 단장은 씩씩거리며 대대장실로 발길을 돌렸다.
뒤에 늘어선 군수 담당 병사들은 웃음을 참느라 연신 움찔거리고.
운 좋게 조인트를 까이지는 않았었다.
네 번째는 같은 부대에서 또 일어났다.
당시 훈련사단이었던 만큼 미군들과 연합훈련 계획이 잡혀있었는데,
불과 한 달 전에 들어온 소위들에게 훈련에 대한 준비와 숙지를 시키는데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갑자기 대대장이 나를 호출했다.
요약하면, 사단장이 훈련 준비상황을 보러 올 텐데 우리 부서에서도 훈련준비 현황을 브리핑할 수 있도록 ‘차트’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대대급 본부에도 수동식 타자기 한 대 정도가 전부였고, 차트라는 것을 만들려면 작전병이 며칠간 날밤을 세워가며 순전히 손으로 전지 크기 종이를 채워야 했었다.
- 대대장님. 지금 훈련 시작이 다음 주라 차트 만들 시간이 없습니다. 신임 소위들 교육하는 것도 빠듯합니다. 3분짜리 보고용 차트보다 훈련이 더 시급합니다.
- 뭐야? 이 개새끼가. 군대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 에이 XX 저 그냥 보직해임 해주십쇼.
난 그냥 대대장실을 나와 숙소로 가버렸다. 항명에 군무이탈.
심각한 문제 이긴 한데, 훈련 절차에도 없는, 그저 대대장 개인적으로 뭔가 돋보일 욕심으로 사적인 업무를 시킨 셈이라 될 대로 돼라 하는 결기가 없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큰 걸음으로 위병소를 나서는데 위병중사가 뛰쳐나와 나를 붙잡으려고 했다.
- 저기, 과장님. 대대장님이 못 나가게 막으라고 하시....
- 너, 나한테 죽고 싶니?
그러고는 나와서 목욕탕에 드러누워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니 이제 와서 그걸로 뭘 어쩌지는 않겠지.
군인은 군법밖에 모른다.
일반 헌법에서 아는 것이라고는 헌법 제1조 1항뿐이다.
즉, 국가방위와 국민 보호. 이게 보편적 군인이 알고 지키려고 애쓰는 최고이자 최후다.
국민의 군대라는 것이 전·현직 군인들의 자부심이자 충성심이다.
법은 무식자이지만 그런 마음으로 군대 생활에 임했었고,
아마도 그런 마음이라서 더는 직업으로 군 생활을 선택하지 못하였나 싶다.
속되게 표현하여 ‘겁대가리’ 상실한 위관급 장교를 곱게 봐줄 상관들이 있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