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를 기억하며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까뮈의 페스트 중 의사 리유의 말.
아주 오래전, 고등학교 시절에 닥치는 대로 방향성 없이 소설책을 읽던 시절.
아마 그때가 지금의 시대와 같았다면 책을 읽기보다는 쇼츠나 웹툰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늦은 사춘기와 암울한 현실에서 도피하기에 소설이라는 상상의 바다는 잠시라도 현실을 망각하기 좋은 수단이었으니까.
그때만 해도 페스트라는 소설의 내용을 그저 지나간 한 시대의 군상을 그린 것으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였다.
막연하게 페스트라는 질병은 중세기 때 유럽을 휩쓸었던 전염병 정도였으니까.
그러다가 군대에 가서 최전방에 근무할 때 우스갯소리처럼 돌던 이야기를 듣고 또 막연하게 ‘그런 건가’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별로 영광스러운 학명은 아니지만 한강 이북 지역에서 발생하는 유행성 출혈열의 바이러스 명이 ‘한타바이러스’ 다. 한탄강 유역에서 나타난다고 하여 지어진 학명이다.
군대에서 돌던 우스갯소리로, 최전방에서 헬기가 뜨는 경우는 두 가지다라고 했었다.
첫 번째는 군단장 급이 등장한다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전방 어느 부대에 유행성출혈열 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라고.
호흡기로 감염이 된다는 점, 들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페스트와 유사하다.
치명률도 페스트만큼이나 높다.
그렇게 잊히던 페스트라는 책을 코로나의 중심에서 겪어가면서 다시 떠올렸었다.
아이 학교의 독서토론회에서 페스트를 다시 읽게 되니 지나간 시절들이 떠올랐고, 다시 읽은 페스트는 책명을 코로나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생생하게 집단 전염병에 빠져버린 군상들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맞서 싸우는 자, 도망치려는 자, 믿지 않으려는 자, 음모론을 들고 나오는 자.
이 모든 시작은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떼에서 시작하여 책의 말미에서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쥐들이 출몰하는 것으로 이제 페스트가 끝났구나 하는 상징적 의미로 맺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오래도록 겪었고 아직도 존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였다.
맞서 싸우는 자, 도망치려는 자, 믿지 않으려는 자, 음모론을 들고 나오는 자.
그러나 그 모든 것을 ‘ with corona ’라는 단어로 바꾸게 된 원인을 우리는 모른다.
백신이 개발되었고 다수의 인류가 접종을 해서 코로나를 이겨냈다,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백신의 부작용, 혹은 변형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질병에 대한 사투로 인하여 어느 정도 매개적 전염성을 줄인 것은 맞겠다.
하지만 극도의 사회적 제한과, 소설 페스트에 나오는 것과 같은 엄격한 차단방역 때문에 충분히 치료할 수 있었던 일반 질병의 환자를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르게 한 예도 충분히 많다.
나 또한 그런 피해를 입은 사례에 속하니까.
인간은 예측이 불가능한 자연재해에 노출되었을 때 소수를 희생하더라도 다수를 위한 선택을 정치적으로 하게 된다.
범람하는 해일과 같이 거의 저항이 무의미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엄청난 폭우로 대도시를 지나는 강물이 범람할 지경이 되면, 그 상류 쪽 제방을 터뜨려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더라도 그렇게 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애’라든가 ‘정의’ 같은 단어는 무의미하다.
실제로 그랬었던 일들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무지막지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들이 결과론 만을 본다면 근거도 부족하고 결과도 예측했던 대로 안 되는 경우도 많았고.
카뮈는 이 페스트라는 소설 속에서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분투와 온갖 군상을 그리면서도, 마지막에는 제각기 다른 행동으로 역병에 맞섰던 사람들 조차 허무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추가했다.
재앙에는 정의 나 원인이나 개연성 혹은 필연성 따윈 없다는 시니컬한 시각이었을까.
누구나가 갖고 있던 ‘페스트’가 왔고, 그 페스트가 뚜렷한 인과관계없이 다시 군중 속으로 숨었다.
이런 재앙은 ‘불가항력’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예측할 수 없고 불가항력적인 미래를 고민하지 말고 현재의 건강함을 성실하게 즐기며 살아라 라는 의미였을까.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 왔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페스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