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 위의 단상

동굴이 필요해

by 능선오름

나만의 동굴을 찾아서.


어쩌다 보니, 어린 시절에는 나 홀로의 공간이라곤 누리지 못했다.

머리가 훌쩍 크도록 늘 형제, 누이들, 부모님과 함께. 때론 모두가 함께 지낸 공간은 그저 잠만 잘 수 있는 그런 의미였다.


내게 나만의 공간이 생긴 건 어처구니없게도 군에 가서 최전방에 배치된 상황에서 일어났다.

최전방 철책 앞 막사.

간부도 출퇴근이 안 되는 곳이라 간부숙소는 영내에 있는데, 초임 소위는 행정반 바로 옆에 붙어있는 딱 고시원 크기의 방에서 지내야 했다.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즉응태세를 지휘해야 하므로 머리맡에는 늘 장전된 총기가 놓여있고 방탄모와 탄입대와 방독면이 놓인 상태였으니 휴식의 방이 아닌 늘 팽팽한 긴장감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고. 침대가 아닌 침상. 난방은 행정반과 공유되는 30년은 넘었을 페치카.

한겨울이면 페치카의 열판에 손을 얹어도 미적지근하고, 숨 쉬면 입김이 하얗게 떠돌던 그런 방.

행정반과 칸막이라야 합판 한 장이라 밤새 근무하는 당직사관과 당직병사들의 소리가 다 들려오는. 그래도 생애 최초로 생긴 나만의 공간이 좋았다.

그곳에서 침투 방어 상황도 두어 번 했었고 밤이면 거친 바람에 대북, 대남방송이 휘감겨 귀곡성이 은은히 퍼져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던 그곳을 나만의 공간이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그나마도 좋았다.


그러다 영외거주를 하게 되면서는 자취방이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운동기구도 들여놓고 책장과 개인전화와 PX발 오디오(미니스테레오) 정도로도 꽉 차버리는.

그곳이 진정한 의미의 나만의 공간 이라고는 할 수 있겠으나

하지만 제한된 공간이니- 부개에서 걸어 5분 거리- 진정한 독립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되니 그 또한 나만의 공간은 없었다.

방에 여유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온전히 나만을 위한,

내 취향이나 취미나 모든 것을 나만 오롯이 숨어들어 잠길 그런 공간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새로 한 해를 시작하면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게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될지 모르니까.

가족과 공유하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면 그건 오롯한 나만의 공간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들을 채우고,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걸고, 나만을 위한 오디오를 놓고, 내 취향의 책들이 꽂힌 책장이 있는. 진짜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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