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디지털 단지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디자인 회사는 드물고 IT 관련업체들이 주변에 많은 편이다.
아니, 정확히는 '많은 편'이었다.
15년 전에는 우리만 주변의 타업종과 달라서 뻘쭘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승강기를 타도 이른바 '너드족' 같아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복작거렸었다.
부정적인 의미의 '너드'가 아니라, 뭔가 일에 몰두하느라 꾸미기 같은 것도 않고 공부를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친구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좀 다른 행색의 젊은이들이 바글대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에 근처에서 보기 드문 고가의 외제차가 주차장에 들어서고, 젊은데 복장도 제각 기인 젊은이들이 우르르 내리는 걸 보고 처음에는 성공한 IT 스타트업 사장들인가 했었다.
그러나 떼 지어 주차장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우며 제각기 거의 온종일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다단계' 업체가 실체였다.
그렇게 한동안 우글대다 몇 달 있다가는 어느 날은 갑자기 사라지곤 한다.
대개 고객층은 극단적으로 분류된다.
이십 대 초반이거나, 아니면 육십 대는 훌쩍 넘어 보이는 어르신들.
물론 고객 연령층이 어떠하든 해당 회사의 실제직원들은 대체로 젊다.
이따금 승강기에 가득한 노인들끼리 수군수군 나누는 얘기를 귀동냥하면 거의 그렇게 보인다.
" 이런 사업이니까 그렇게 젊은 친구가 수백억 자산가가 되었다잖아 "
" 이런 좋은 사업을 남들이 알기 전에 해야 하는 거여. 그러니까 빨리 가까운 사람부터 알려줘야지. "
어쩌다 휴일에 출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회사들은 휴일에도 쉬지 않고 북적거린다.
헌데, 또 어떤 주말에는 멀쩡해 보이는 사무가구들이 가득 쓰레기 처리장으로 가득하게 채워지고,
마치 야반도주하듯 해당 회사는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한동안 비어있던 사무실은 한두어 달 지나면 또 유사한 업종의 회사가 들어오고, 또 엇비슷한 비즈니스가 시작된다.
이 루틴은 그간 10년을 넘게 바라본 것이니 그다지 틀리지 않는 예상이자 현실이다.
옥상이나 흡연장에서 들리는 무리들의 소리는 한결같이 또 엇비슷하다.
가상자산. 혹은 부동산. 혹은 외국회사 증권투자 등등.
드나드는 20대는 한결같이 진짜로는 안 보이는 소위 명품옷들을 걸치고, 앳되다.
노령층도 한결같이 온몸에 최대한 부티? 나 보이려는 복장에 온갖 액세서리류를 주렁주렁 걸쳤다.
노소를 구분하고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눈빛이 형형하다.
피곤에 절어있는 IT계통 회사 직원들과도 다르고, 회사 점퍼를 나눠 입은 오래된 무리들의 구부정한 자세와도 다르다.
뭔가 확고한 신념과 기대와 희망에 번뜩이는 눈빛들인 것이다.
십여 년을 크게 다르지 않은 그 루틴들을 바라보면서, 회의감이 들기도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아주 가끔씩은 젊은이건 노령층이건 빌딩 앞 광장에서 멱살잡이하듯 큰소리로 다투다가 서로 쌍욕을 하면서 헤어지는 경우도 보았다.
한편으로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부른 쪽이나 거부한쪽이나 혹은 동화된 쪽이나 할 것 없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정말 횡재라고 부를만한 좋은 돈벌이가 있으면 당연히 자신과 가장 친분이 좋은 사람들을 부르지 않을까.
그리고 정말 친분이 좋은 사람이라 믿고 왔는데 뭔가 온전치 못한 상황으로 보여 거부하게 되는 사람이 느낄 배신감과 당혹감은 또 어떨까.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좋은 돈벌이, 거의 불로소득에 가까운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나에게 정보로 온다면 그건 거의 세상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을까.
게다가 자본주의 시장의 흐름상, 주인 없이 허공에 맴도는 공돈이 과연 있을까.
큰돈을 뭐가 뭔지도 모르고 지인의 말만 믿고 어딘가에 던진다는 건 거의 로또당첨 확률에 수렴하는 게 아닐까.
모든 발단은 결국 '물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