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이나 좀 잡으시지
무슨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아빠에게 인라인을 타러 가자고 했는지 모르겠다.
인라인을 좋아하진 않는데.
아빠 성화로 한 3일 정도 교습을 받긴 했었지만, 인라인 부츠는 워낙 딱딱해서 발이 아프다.
그랬는데 주말이 되니 어쩐지 심심하고, 자전거 타기는 좀 귀찮고, 그래서 아빠에게 한강공원에 인라인 타러 가고 싶다고 한 게 문제였다.
아빠는 밖은 너무 추우니 목동 아이스링크에 가자고 한다.
음……. 아이스스케이트는 작년에 딱 한 번 타봤는데 너무 엉덩방아를 찧어서 좀 그런데.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단 나을 거 같아서 가자고! 나섰다.
아빤 얼음판이니 물에 젖지 않는 천의 패딩 바지를 입으라고 했지만,
그건 좀 너무 폼이 안 나잖아.
부득부득 고집해서 엊그제 산 파란색 츄리닝 바지를 입었다.
일 년 만에, 태어나 두 번째로 신은 스케이트 (빌려주는 거)는 역시 딱딱해서 무릎 구부리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얼음판에 올라섰는데, 바짝 쫄았는데 어라? 의외로 슬슬 나가는 게 잼있네.
‘왕년’에 군대에서 연대 대표선수까지 했다는 아빠도 영 자세가 나와 별다르지 않다.
부들부들.
그러면서도 잔소리를 시전 한다.
- 균형을 잡아야 해. 균형을 잡도록 주의해야 해.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는데 아빠가 꽈당 엉덩방아를 찧는다.
저런, 겁이 덜컥 났다. 안 그래도 아빠가 가끔 허리 아프다고 했는데.
아빠보고 타지 말고 그냥 밖에서 보고 있으라고 했다.
아빠는 어른인데 말로만 균형을 잡지 균형을 잘 못 잡으면서.
아빤 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타는 법은 잊지 않았는데 30년 만에 타보니 몸이 따라주질 않네.
그야 당연하지.
아빠가 군대에서 뭘했건 간에 그게 언제 적 일 인데.
아직도 군인인 줄 착각하는 아빠라니까.
어쨌든 아빠가 다치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타다 보니 신이 났다.
사람들에게 밀리기도 하고 뒤뚱대는 어른들에게 치여서 넘어지기도 하고.
아프긴 하지만 점점 얼음을 지치는 게 잼난다.
그러다가 아빠가 인제 그만 타라고 말렸다.
자꾸 넘어지니 면으로 된 츄리닝이 젖어 버린 거다.
음…. 더 타고 싶었는데.
그러고 집에 오니 헐.
양 무릎에 시커멓게 멍이 들었다.
아빠는 ‘다 그렇게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야’ 한다.
근데 스케이트장에서 영 균형을 못 잡는 건 다 어른들이던데.
집에 오는 길에 아빠에게 ‘ 나 방학 때 매주마다 스케이트 타러 올 거야!’라고 큰소리친 게 괜히 후회되네.
아……. 귀찮아짐.
요새 티브이를 틀어도 영 재미가 없다.
무슨 방송을 켜도 티브이 아래에 계속 빨간빛 바탕의 자막이 뜬다.
특보 어쩌고 저쩌고. 비상 어쩌고 저쩌고.
근데, 스케이트 장 가니까 군인 아저씨들도 다들 나보다 더 엉거주춤하게 삐거덕삐거덕 스케이트 타고 있던데??
암튼 어른들의 세상은 알 수가 없어.
곧 크리스마스고 곧 겨울방학인데 뭐가 그렇게 복잡해?
아빤 뭐 그런 뉴스를 계속 들여다보고.
재미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