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알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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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아빠가 늘 실패사례 위주로 너에게 조언을 남기는데,
그렇다고 아빠가 어릴 때부터 늘 뒤져있는 사람은 아니었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한글을 다 읽을 줄 알았고
요즘에야 너무 당연한 거지만, 아빠 때는 유치원에 다닌 아이가 거의 없어서 1학년 입학해서부터 국어를 배웠으니 그땐 대단한 거였어 -
타고난 그림 재주가 있어서 딱히 배운 적도 없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전국 미술 공모전에서 특선도 했었거든?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줄곧 전교 석차에서도 늘 상위권에 있었고,
반장은 못 했지만 –그 시절에는 반장이란 반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 와야 해서 어느 정도 경제력 있는 집안의 아이들을 임명하곤 했거든. -
그래도 늘 부반장 같은 고위직? 도 자주 했었단다.
책을 잘 읽는다고 교과서에 있는 방송 시나리오 같은 걸 내 목소리로 녹음해서 – 지금은 상상도 못 하지만 거의 티브이 크기의 릴 테이프 녹음기로 – 전교에 돌아가며 수업 중에 들려주기도 했었어.
그랬으니 나름대로 어려운 집안에서 부모님의 기대도 적지 않았었어.
막내가 늘 학교에서 칭찬을 받고 상장도 수두룩하게 받아오곤 했었으니까.
아빠가 엇나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였어.
늘 얌전하고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소위 우등생에게 늦 사춘기가 찾아온 거야.
게다가 그때부터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계시게 되었으니 집에서 티를 안 낼뿐 밖에서는 완전히 좀 어긋난 학생이 되었었지.
몰래 담배도 피우고, 못 먹는 술도 마시고,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지.
그때는 지금 같은 국민건강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집안에 중병환자가 있으면,
그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건 너무 당연한 결과였기에 그런 상황에서 대학 진학 같은 건 사실 먼 나라 이야기 같았어.
지나서 생각하면 그건 아빠의 변명 아닌 변명에 불과했었다고 생각해.
학생 신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그렇다면 나중에 대학 진학을 하건 말건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를 악착같이 해야 했다는 생각을 군대에 가서야 느꼈었거든.
그게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야 현실적이었지.
아빠가 병석에 누운 아버지께 할 수 있는 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 그때는 통행금지라는 게 있어서 4시부터 통행할 수 있었었어 – 물통을 들고 남산을 가는 거야.
남산에 약수터가 여러 곳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약수터는 새벽 6시부터 입구의 문을 열고 오전 10시가 되면 굳게 문을 닫곤 했었어.
그 약수터가 지금도 유지되는지는 모르지만, 남산 순환로 아래에서 구불구불 계단을 백 개 넘게 올라가면 자그만 공터가 있었고 그 약수터를 관리하는 할아버지의 자그만 움막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서 올려다보면 남산타워가 바로 눈앞에 보이곤 했지.
어두운 새벽에 좁고 울퉁불퉁한 계단을 오르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나던 올빼미의 눈동자가 아직도 기억나.
기억으로 아마 거의 2년 정도를 그렇게 새벽에 약수를 떠 와서 아버지께 드리곤 했는데,
무슨 옛날 동화도 아니고 그런 거로 암에 걸린 아버지께 도움이 되진 않았을 거야.
그래도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정도라고 생각했었거든.
훗날 생각해보면 그 시간에 독하게 공부를 했었더라면 지금 아빠가 걷고 있는 길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
하긴, 그 결과일지 모르지만, 그 덕분에 군대에서 100킬로 행군을 다섯 번이나 하면서도 퍼진 적이 없으니 그때의 본의 아닌 체력단련 덕분이랄 수도 있겠지.
어쨌든. 아빠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야.
아빠는 방식은 좀 틀렸더라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뭐든 ‘열심히’ 했었다고 생각은 해.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회사에서 철야를 밥 먹듯 하던 시절 – 요즘 기준으로는 과장이 심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이야. 1년 365일 중에서 360일을 일하고 그중 태반이 야근이던 시절이 있었으니 -
에도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일만 했었다니까?
그런데, 그 결과로 따져보면 어쩌면 남산 약수터를 다닐 때처럼 나름 ‘열심히’ 한 결과로 현재도 뭔가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노력과 비교해 주어진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진 않더라고.
앞서 말했듯 가성비가 나쁘고, 방향성이 나쁘고, 또렷한 목표가 없는 그저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거야.
이게 좀 막연하다는 거지.
사람이 열심히 사는 건 누구나 그렇게 사는 건데 그 방향과 목표치가 중요한 거지.
그런데 아빠는 그 두 가지가 좀 모호했어.
환경과 상황에 맞춰 가장 손대기 쉬운 것에 열심이었던 거지 그게 옳은 거라고 볼 수는 없어.
막연한 ‘열심’이 좋은 결과로 올 거라는 신념은 마치 막연한 종교에 기대는 심리와 비슷해서 누군가가 막연히 알아줄 거라는 어긋난 믿음이거든.
내가 하는 일을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면 결과가 있어야 하고,
그 결과는 나는 인정 않더라도 뭔가 숫자와 문서와 증명서 자격증 같은 거로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야.
그런데도 아빠는 정말 미련하게 내가 마음을 다하면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걸 하며 살아온 것 같아.
아빠의 연애사 또한 그런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일방적으로 열심히, 성실하게 애정을 보이고 그 애정을 쌓으면 상대도 그럴 거라 막연한 기대치로 버티고 유지해왔던 거지.
뭔가 사랑은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말이다.
어쩌다 보니 아빠의 자랑 아닌 자랑으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론 또 다른 실패사례를 너에게 알려주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네.
네게 남기는 글을 쓰면서도 아빠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돼.
내 숱한 실패사례들이 과연 네게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인 거지.
정작 아빠도 정답을 모르는 처지에서 말이야.
그런데 이것 하나는 확실한 거 같아.
아빠의 많지 않은 혈육 친족을 살펴봐도 다 아빠처럼 그저 열심히는 하는 게 있는데 지혜롭게 방향성을 찾은 사람은 없어.
요즘 아빠가 생각하는 결과론.
즉 대부분 인생의 성공이란 경제력과 권력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보는데,
그걸 목표로 두고 열심히 하는 게 아닌 그저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으로는 평균 이상의 기댓값은 안 나온다는 거야.
좀 무책임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