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필요해?
딸아,
너는 혼자 자라서 그런지 친구들을 무척 좋아하지?
좋아하나? 가끔은 이게 좀 헷갈릴 때가 있어.
네가 친구들을 사귀려고 애쓰는 걸로 보이긴 하는데,
이게 부모로부터 친구들과 지내는 법을 보며 배운 게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빠의 눈에는 네가 ‘친구’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너에게 그리 친절해 보이지는 않아서 말이야.
너는 도리 없는 코로나 세대라서 유치원 때부터 마스크를 끼고 살았고,
그 여파로 학교도 가다 말다 하는 날이 많았는 데다가
혹시라도 모를 전염 문제 때문에 아이 들과 어울리며 놀 수 있는 분위기가 아예 없긴 했지.
처음에 코로나가 유행할 때만 해도,
과거 다른 유행병처럼 한 계절 지나가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벌써 삼 년을 이대로 겪고 있는데 앞으로도 얼마나 걸려야 상황이 좋아질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훌쩍 벌써 삼 년이 지나고 보니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 것 같구나.
너희 세대는 앞으로 코로나가 끝난다고 해도 아빠의,
그리고 네 윗 세대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익혔던 것들을
너희가 똑같이는 절대로 익히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너희들은 또래끼리 손을 잡고 놀거나 함께 부대끼며 노는 법을 아예 차단당했었으니까.
아마 네가 좀 더 자라서도 유아기 때 하지 못했던 다른 아이들과의 공동 활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을까?
아빤 사회학자가 아니라서 알 수 없지만,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되지는 않네.
늘 상대방을 경계하며 자란 너희들이 아무렇지 않게 과거 세대들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친구 집에 놀러 가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일단 주변의 어른들부터, 나부터도 아이들과 네가 놀이터에서 놀 때도 늘 경계심을 갖게 되니까 말이야.
철 모르는 너희들이 마스크를 조금만 내려도 야단을 치는 풍경이 드물지 않지.
그렇게 성장한 너희들이 윗세대와 같은 정도의 친구관계가 형성될지 아빤 잘 모르겠어.
그리고 사실 아빠도 엄마도 어릴 적에 그리 사교적이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보니,
과연 너는 다를 수 있나 에 대한 의구심도 있어.
아빠가 엄마의 어릴 적 시절을 온전히 알지 못하니 아빠 이야기를 할게,
아빠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성인이 되어 아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요즘을 기준으로 본다면 아마도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 아닌 왕따가 아니었나 싶어.
반 친구들 사이에서 튀지도 활발하지도 않았어서,
그 시절의 반 아이들은 아빠를 조용하고 얌전했던 아이로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너는 아빠와 달라서 처음 보는 또래들에게도 지나칠 정도로 활발하게 다가서곤 하니 다를지도 모르지.
아빠가 말하고 싶은 것은,
친구가 세상을 살아가며 당연히 필요한 존재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란 것이야.
어릴 때부터 초. 중. 고 시절을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라 해도,
그래서 서로 헤아릴 수 없이 서로의 집을 드나들고 부모님을 다 알고
그 집의 사정을 빤히 다 알고 있던 관계라고 해도,
서로의 성장과정에서 못 볼 것까지 다 보고 어울린 허물없는 사이라고 해도,
그것으로 평생의 친구가 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야.
어쩌면 아빠가 사람을 사귀는데 소질이 좀 없거나 지나치게 따지는 게 많아서거나,
아니면 그들이 아빠를 멀리 하는 게 인생이 도움이 될 정도로 민폐족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빠가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빠는 그 친구들이 어려울 때 먼저 나서기도 했었고,
그 친구들 집에 대소사가 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서 돕는걸 당연하게 여기곤 했었다는 거야.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고 사는 지역이 너무 다르고 만남의 기회들도 적다 보니,
정작 만나더라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며 추억하는 것 외에는 말이 통할 부분들이 극히 적어졌었어.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그 친구들은 과거의 친구들이지 현재의 친구는 아닌 거지.
아빠가 더 적극적으로 그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도 없진 않아.
하지만 다 각자마다의 이유는 있겠지.
반백년을 살아오면서도 아빠가 아직 모르는 게 사람 속이란다.
내 나름으론 최선을 다해서,
어떨 때는 좀 지나칠 만큼 상대 마음을 헤아리고 헤아려 조심스럽게 한다고 해도 무엇으로 상대방이 어깃장을 놓을지는 모르거든.
오늘 아침에도 네가 아빠에게 한 이야기가 있지.
반에서 친구랑 쉬는 시간에 종이접기 놀이를 한다고.
그 종이접기는 늘 그 친구의 사물함에 있다고.
그리고 종이를 가져올 때나 종이접기 한 것을 갖다 놓거나 그 친구가 너에게 늘 시킨다고 툴툴댔었지?
그 아이에게 갖다 놓으라면 늘 네게 ‘ 아 그냥, 네가 좀 갖다 놔’라고 한다고.
그건 사실 친구사이라고 말하기가 좀 애매한 관계야.
물론 아직 한참 어린 너희들 또래라고 하지만 말이야.
어던 계기였을지는 몰라도 네가 그 아이에겐 ‘만만힌’ 친구 이면서,
자기가 귀찮은 일을 시킬 수 있는 존재가 돼버린 거지.
어른들의 친구관계에서도 보면 늘 그렇게 일방적인 관계들이 있어.
물론 그 ‘일방적 부림’을 당하는 당사자가 아무렇지도 않고 그렇다면
그거야 뭐라 할 수 없겠지만 아빠는 그런 사람을 ‘무수리 증후군’이라고 부른단다.
‘ 무수리는 고려 및 조선시대 궁중에서 청소 등 허드렛일을 맡은 여자 종을 말한다. ’ 사전적 의미.
누군가가 타인으로부터 늘 심부름이라던가 사소한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자존감을 상하지 않거나 즐겁게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마냥 착해서만은 아니야.
어린아이들도 본능적으로 그걸 안단다.
이 상대방이 만만하게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인지 아닌지.
상대가 어른이건 아이이건 상관없이.
아빠가 생각하는 친구란.
서로 대등한 존재여야 해.
경제적 배경, 학벌, 나이 등등 외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나와 다르지 않다
라는 평등함이 있어야 친구인 거야.
그리고 그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런 게 없다면, 그저 즐거울 때는 늘 함께하고 슬프거나 힘들 때는 안 보이는 친구라면 그건 친구가 아니야. 그저 놀이 상대일 뿐인지.
딸아.
단 한 명이라도 네게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은 거야.
설사 그런 존재가 없다고 해도, 그게 네 삶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아.
왜냐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깊이 있게 오랜 친구보다,
엇비슷한 환경 속에서 얇게 알고 있는 친구들이 오히려 네게는 더 도움이 될 거니까.
네가 너의 진심을 다해서 상대를 대한다고 해서 상대에게 같은걸 기대하긴 어려워.
그게 어려운 인간관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