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떼는 말이야 11

아군이 중요한 이유

by 능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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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무엇을 잘 모르는데 막연하게 피상적인 외피만 보고 우리는 단정 짓는 경향이 있어.

아주 막연하고, 실은 그 ‘일’의 실체를 보거나 겪지 않은 일에도 말이야.

물론 과거에도 그랬지만 온갖 정보가 너무 지나칠 만큼 흘러 다니는 인터넷 시대에는 더욱더 그래.

뉴스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처음 쓴 내용을 여기저기서 베끼다시피 올리고,

그걸 보는 독자들은 반복된 이야기들을 읽으며 대체로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예를 들자면 이런 얘기야.

어떤 사람이 일찌감치 고등학교 때부터 꿈을 품고 프랑스 대학으로 진학했어.

자신이 원하던 건축을 전공으로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들어봄 직한 대학에 진학하여 석사 박사 과정을 다 마쳤지.

게다가 오랜 프랑스 생활로 프랑스어도 능숙하게 익혔던 거야.

거기 더해서 프랑스 건축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고.

그렇다면 객관적인 우리나라의 상식으론 그 사람이 최소한 국내대학의 건축학부 교수가 되었다거나 대기업에 취업했다거나, 뭐 이런 식으로 추측하지?

보통 생각할 때 그 정도의 학벌에 그 정도의 능력이면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막연한 상식이야.

그리고 아빠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에 업무차 방문했을 때 많은 동양인 중에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어떤 젊은 친구가 한국말을 걸더라고.

반가우면서도 뭔가 경계심을 드러내는 내게 그 친구가 말했어.

자기가 자가용으로 파리 시내에 데려다주겠다.

그리고 원하는 방문 장소들이 있다면 여행도 가능하다.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비 보다 훨씬 저렴하고 복잡한 교통망을 이용하지 않아도 좋다. 뭐 이런 내용.

흔히 관광지에 등장하는 한국계 ‘호객꾼’ 같은 역할이긴 해도 그 사내가 젊고 착해 보여서, 그리고 아빠 혼자가 아닌 일행이 있었으니 비용적으로도 매력이 있어서 그 친구의 자가용을 탔지.

파리 시내로 오는 동안 우린 택시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그게 아빠가 위에서 예를 든 그 친구의 ‘이력’이었지.

실례인 줄 알지만 대놓고 물어보기도 했어.

그만큼 공부를 했으면 프랑스에 취업하거나 아니면 한국에 가서 강단에 서는데 좋지 않으냐고.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어.

외국 유학생 출신이 프랑스에 정식 취업하기는 정말 어렵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석박사 과정을 마친 부분이 전혀 없으니 한국대학에 학연이 없어서 그쪽으로 가기도 어렵더라.

영어계통이 아닌 곳에서 유학을 하고 보니 한국의 대기업에서 원하는 인물이 못되더라.

그렇다고 나이가 들어서 한국의 소기업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하기도 그렇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간혹 주변에 생기는 한국기업의 건축 프로젝트에 통역 겸 가이드로 일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렇게 자가용으로 택시 영업을 하는 게 불법이지만 이것도 생활 수단의 일부다.

뭐 이런 내용이었어.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모든 말이 다 진실이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진 않아.

누구나 자기 입장을 말할 때는 여러 가지로 합리화를 하게 마련이니까.

그렇지만 그 친구가 모든 말을 거짓으로 한 건 아닐 거야.

내가 한국에서 늦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거든.

같은 과정으로 석박사를 마친다고 해도,

좀 더 젊은 친구들에게는 학교에 관련한 일을 줘도 나이 든 사람에겐 어려워.

기회를 줄 수 있는 교수님들이 그렇게 평가하는 거지.

아직 장래가 밝은 후배 교수들을 키우는 게 여러 가지로 편하니까.

아빠가 말하려고 하는 건 외적인 이력이나 경력이 화려하다고 반드시 밝은 미래,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는 거야.

곰곰이 생각해보면 프랑스 유명대학이라고는 해도 그 학교에서 한 해에 졸업하고 학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니. 것도 매년 그 정도 사람들이 배출될 거야.

내가 프랑스 현지인이라고 해도 굳이,

같은 이력의 프랑스인을 고용하는 게 쉬운 길일 것 같아.

자국민 중에도 흔한데 굳이 출생도 성장 배경도 문화도 다른 동양인을 굳이 채용할 이유가 없지.

또 한국에서도 그래.

새로운 교수직을 판단하는 기존의 교수들이 최소한 자신의 연구실에서 석사든 박사든 과정을 마친 친구들이 수두룩한데 굳이,

알지도 못하고 그저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았을 뿐 성격도 인성도 능력도 모르는, 게다가 한국의 건축 실상에 대해 학부생만큼도 모르는 친구를 굳이 임명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어떤 사람의 이력과 배경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사람을 채용하거나 뽑아줄 사람들과의 인연 – 사실은 혈연 지연 학연 –을 무시할 순 없다는 말이야.

나라가 구태의연하고 낙후돼서 그렇다고?

글쎄.

아빠가 대충 업무로 만난 외국인들도 대개 그렇던데?

인연을 맺은 직원과 오래 근무하면 그 보스가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대개 따라가더라고.

채용관 계도 학연에서 이어진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져서 연결되는 경우도 많고.

아빠 생각엔 그건 비난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자신이 잘 알고, 그래서 어느 정도 신뢰감이 있고, 업무적으로도 서로 연관성이 있어서 이해도가 높고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생판 모르는 사람을 뽑아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을 굳이 할 이유가 없거든.

즉, 학벌과 이력은 수단에 불과해.

거기서 맺어질 수 있는 인간관계가 훨씬 중요하다는 거지.

앞서 예를 든 그 친구도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지도교수나 주변 동료들에게 좀 더 좋고 깊은 관계를 맺었더라면 아마 좀 더 편한 길을 걸을 수 있었을 거야.

아빤 유학파가 아니라서 깊은 건 모르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할 거라는 짐작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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